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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는 엉덩이 싸움

by 김대영

아내의 수상 소감은 이렇게 시작된다.

“진작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없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등단 작가가 되었고 큰 동화상을 2번이나 타냈다.

아내는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거창한 대답을 들을 줄 알았던 나는 당황했다.

아내가 소질 없음을 극복하고 등단 작가가 된 것은 모두 엉덩이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라 했다.

아내는 소질 없음을 극복한 게 아니다.

어려워도 끝끝내 글을 써내는 것. 그게 소질이다.


'광고대행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떻게 좋은 아이디어를 내나요?' 다.

“아무리 천재적인 머리도 엉덩이 싸움 못 이겨.. 좋은 아이디어 안 나오면 시간 투자 안 한 거다"

회사 후배들이 일에 대한 고민을 물어올 때 아내의 이야기는 지시등이 된다.


사원, 대리, 과장 시절 나는 늘 '아이디어맨'이었다. 광고대행사에 다니지 않을 때도 그랬다.

늘 해당 업계에서는 해보지 않은 새로운 생각을 실천했고 그것이 동료들에겐 없던 능력이라 생각했던 듯 하다.

그 시절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은 어쩌면 타고난 것이 아닐까? 라는 어줍짢은 생각을 했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DNA의 영역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예술가도 아니고 발명가도 아니었다.


아내의 문학상 수상 소감을 들었던 나이는 50에 너무 많이 가까워진 나이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창의성은 엉덩이 싸움일 뿐이다.

내가 아이디어맨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들었던 건 남들은 하지 않는 새로운 생각에

남들보다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광고대행사에서 오니 모두 좋은 아이디어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PT에선 A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내고 어떤 PT에선 B의 아이디어가 선택을 받는다.

왜 그럴까?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거다.

아직 시간을 적게 투자한 거 같은데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아직도 내 아이폰에서 가장 많이 쓰는 기능은 메모 기능이다.

메모장에도 메모하고 스케쥴앱에도 생각을 메모한다.

침대에 누웠다가 갑자기 일어나 무언가를 적을 때 아내는 깜짝 깜짝 놀란다.


크리에이티브는 결국 엉덩이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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