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광고할 생각 없나?
1999년 1년 동안 지원한 모든 대행사에 낙방
맞다.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직장일을 한 지 17년 차가 되어서야 광고대행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지금은 광고대행사 8년 차가 되었고 대통령 때문에 40대를 1년간 더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만든 건 아들이다.
'아빠 나 광고해볼까?'
공부를 안 하는 아들에게 커서 뭐 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야 광고는 아무나 하는 줄 아니?'
목구멍을 넘어오려는 말이 나오지 않게 목울대에 힘을 주었다.
아들이 광고를 하고 싶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광고라는 업이 너와 맞을까?
-광고주에서 하는 게 좋을까? 대행사에서 하는 게 좋을까?
-AE가 좋을까? AP가 좋을까? 미디어가 좋을까? 제작이 좋을까?
-카피가 좋을까 AD가 좋을까?
-광고주가 되면 이것만은 하지 말아라
머릿속에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다. 그럼 쓰자.
자식이 브런치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아들처럼 광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나 취준생이 있다면 도움이 될 거란 생각도 동인이 됐다.
어떤 사람이 광고를 업으로 하면 좋을까? AE와 제작으로 나눠야 하지만 퉁쳐 보자.
'광고를 업으로 하면 좋은 사람의 특징 10가지'
이런 타이틀이 있어 보이니 10가지만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1. 새것에 끌리는 사람
편의점에서 못 보던 제품이 나오면 먹어봐야 하고 남들보다 새로운 제품은 먼저 써보고 싶은 사람들은 광고가 어울린다. 광고는 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와 브랜드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회사를 자주 바꾸지 않아도 흡사 여러 회사에 일하는 듯한 착각을 즐길 수 있다.
광고를 하다 보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제품을 만나는 일도 많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제품의 이름을 붙여주는 기회도 생긴다.
2.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
여권을 만들러 구청에 갔다가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공무원들은 인정받을 기회가 얼마나 될까?
공무원이라는 업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광고대행사는 상대적으로 인정받을 기회가 많다.
회사의 명운이 달린 PT만 해도 십수 차례, 그 모든 순간이 내 실력을 보여주고 잘했다 칭찬받을 기회다.
반대로 인정 못 받는 순간이 그만큼 많을 수 있다.
그래서 단단한 마음도 필요하다. 10번 중 9번을 실패해도 홈런 한 방으로 충분할 때가 있으니...
3. 남들과 늘 생각이 다른 사람
남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생각의 다름은 분쟁의 씨앗일 수 있다.
하지만 광고를 할 때는 다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달은 혹시 밤에만 나타나는 우주의 화이트 홀이 아닐까?'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광고 소재가 된다.
엉뚱하고 4차원적인 사람도 대접받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엉뚱함의 선은 광고주나 소비자의 생각을 많이 넘지 않아야 한다.
4. 사람의 말을 잘 이해하는 사람
기획이든 제작이든 광고주와 소비자들을 이해하는 일이 생명이다.
개를 이해하는 탁월한 능력은 강형욱을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 아이를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오은영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사람의 말을 이해한다는 능력은 사실 상대방이 A라고 말할 때 A-1을 이해하는 거다.
A라고 말한 것을 그냥 A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린아이도 가능하다.
A-1은 숨겨진 속 뜻이다. 말속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 알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면
광고대행사의 강현욱, 오은영이 될 수 있다.
5.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
4번과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지만 약간 다르다.
4번이 말한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5번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는 능력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이런 거다.
공감 능력은 깊은 역지사지의 마음과 비슷하다. 광고주가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할지를 아는 것,
AE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소비자의 마음에 빙의해 그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솔루션을 찾는 것 역시 제작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다.
이 모두는 내가 아닌 남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이다.
6. 호기심이 많은 사람
아이 때는 질문을 많이 한다. 모르는 게 잘 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성장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창피해진다. 남에게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많은 것에 끊임없이 궁금해야 한다.
그리고 질문해야 한다.
'왜 그런 거지?', '왜 안 하는 거지?', '왜 먹는 거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 '왜 그래야 하지?'
세상이 늘 궁금하고, 의아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광고에 어울린다.
7. 많고 다양한 경험이 좋은 사람
단적으로 광고대행사에서 일한다는 건, 여러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짧게는 피티를 준비하는 몇 주, 길게는 대행을 하는 1~2년.
본인의 마음가짐이 가능하다면 그 기간 동안 해당 제품의 직원 그 누구보다 브랜드를 고민하고 사랑할 수 있다. 흡사 내가 그 회사의 직원이 된 거 같다.
그렇다면 적어도 1년에 열 개 가까운 회사에서 근무한 것과 같은 경험이 가능하다.
하나에 빠지면 오래오래 사랑하는 사람보다 짧지만 강렬한 경험들을 좋아한다면 더 어울린다.
8.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AE로서도 제작으로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광고에 적합할 수 있다.
AE라면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사람과 만나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면 좋다. 사교성이 좋다면 더 어울린다. 제작이라면 사교성보다는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좋아하는 측면이 더 맞다. 박웅현 씨의 '인문학으로 광고하라'는 주장은 결국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여러 측면에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광고하기 좋은 자질이다.
9. 공평한 게 좋은 사람
나에게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가겠냐고 물어보면 답은 명확히 NO다.
대기업 근무 경험은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고 나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위로 갈수록 실력 이외의 것들이 필요하다. 점점 이것이 공평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기업이 사람의 능력을 무엇으로 평가를 하는가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광고대행사는 평가의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광고를 수주했는가? 수주 후 얼마의 이익이 났는가?
내 아이디어가 수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내 역할이 이익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좀 더 선명하다.
실력으로 평가받기 나름 좋은 시스템이라는 거다. 실력으로 말하겠다면 광고대행사에서 증명할 수 있다.
10. 광고가 좋은 사람
학생 때 광고가 좋았던 사람도 일을 하기 시작하면 '광고탈출'을 꿈꿀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오히려 광고를 오래 하려면 광고를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 동의되는 말이다.
그래도 간혹 미친 듯 광고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다.
광고를 좋아하지 않아도 광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광고를 너무 좋아하면 안 할 이유가 무엇이겠나
펜타클에 들어올 때, 그러니까 인생에 첫 광고대행사에 발을 들여놨을 때 나이가 마흔두 살이었다.
파릇파릇 광고 공모전에 도전하며 카피라이터를 꿈꾸던 20대 취준생은 돌아 돌아 결국 대행사에서 일한다.
그리고 오십이 되었다.
오늘 펜타클에 입사 지원자에게 불합격을 전하는 메일을 보냈다.
괜찮다. 나 같은 사람도 있지 않나. 광고업에 도전하는 모든 후배들이 힘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