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점 만들기
제자리 멀리뛰기를 해본 적이 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 처음이었다.
오래전 받았던 리더십 교육의 한 과정이었다.
강사는 교육생들에게 최대한의 힘닿는데 까지 멀리뛰기를 해보라고 주문했다.
교육생 모두 최선을 다해 뛰었다. 뛴 자리마다 각각 테이프로 마킹을 하라고 했다.
차례가 모두 돌아간 후 바닥은 제각각의 기록들이 표시되었다.
강사는 한 번 더 뛰어보라고 했다. 단, 개인들이 기록한 마킹을 넘어보라고 했다.
10명의 참가자 중 90%가 본인의 원래 기록을 가뿐하게 넘었다. 모두 놀랐다.
처음 멀리 뛰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는 모두 첫 번째 기록을 넘어섰다.
이유가 뭘까?
마킹해 놓은 기준점 때문이었다.
강사가 마흔이 넘은 팀장들에게 굳이 멀리뛰기를 시키면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무얼까?
'목표의 중요함'이었다.
목표가 없을 때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도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머릿속의 생각일 뿐이다.
정신과 몸을 모두 지배하는 최선의 도전은, 목표가 있을 때 나온다.
목표가 구체적일수록 도전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흔히 성과지표를 말하는 KPI는 Key Performance Indicator의 약자다.
indicator는 앞에서 말한 마킹테이프와 같은 기준점이다.
광고 회의 시간, 신입들이 가지고 오는 아이디어들은 팀장의 기준에 들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 나름 많은 고민과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런데 왜 아이디어가 별로일까?
신입들은 아직 좋은 크리에이티브의 기준점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대학생 광고 공모전에 내서 떨어질 수준'의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신입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기 시작하는 건, 기준점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팀장님의 피드백을 통해, 선배들이 갖고 오는 아이디어를 통해, 지적질을 당하며, 픽이 되지 않는 아이디어를 목도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지나며 기준점이 만들어진다. 기준점이 만들어지면, 그 기준점을 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마킹이 붙은 멀리 뛰기와 같은 것이다.
신입들이 조금 더 빨리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기준점을 만드는 것이다.
단, 어렵더라도 그 기준점을 매우 높게 가져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광고의 전략을 짤 때 이런 기준점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내가 광고 심사위원이라면 이 광고 전략은 상을 줄만한 탁월함이 있는가?'
'내가 심사위원장이면 심사평 한 줄로 정리될 탁월함이 있는 전략인가?'
이 기준점은 내가 긴 시간 고민한 많은 전략들을 한 없이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기준점을 높이는 일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이다.
많은 전략들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만큼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 좋은 전략을 내기 위해 이 보다 좋은 것은 없다.
'내 아이디어는 칸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인가?'
책상에 이 한 줄을 적어 놓으면 불 보듯 뻔하게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 죽을 만큼 싫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높게 잡아 놓으면 그 목표의 중간 지점 정도 아이디어는 가져올 수 있다.
칸에서 상을 받을 수 없지만 그 정도면 팀장님에게 칭찬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 위해선
본인이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함에 대한 정의와 좋음과 나쁨의 기준점을 고민해 보는 선행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