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딩철, 광고주가 좋은 대행사를 만나는 방법
'여보 다음 주에 김장하는 거 알지?'
김창철이 왔다.
맞다. 최근 들어 김치찜과 김치찌개가 상에 자주 올라왔다.
시어 꼬부라진 김치를 처리해야 하는 시기.
다시 새로운 김치를 담그는 시기.
김창철과 함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또 하나의 철이 온다.
'비딩철'
기업의 마케팅 부서는 다음 해의 광고 계획을 짜고 새로운 대행사를 찾는 철이다.
대행사도 내년 먹거리를 위해 기업의 비딩에 참여하는 고난의 행군 시기다.
비딩철에는 동료 들에게 늘 거짓말쟁이가 된다.
'12월에는 OO PT만 하고 쉬자'
공약이 무색하게 1월 중순쯤 나올 줄 알았던 PT가 1월 초에 잡혔다.
꼼짝없이 나와 동료들은 PT와 함께 연말 연시를 보내게 되었다.
어쩌랴, 이 철에 농사를 지어야 1년을 먹고 사니 말이다.
솔직히 나 역시 광고주 시절, 대행사를 고려해 일정을 짠 적이 없다.
연말 연시, 설날, 추석, 휴가를 보내야 하는 대행사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았다.
언제나 프로젝트의 일정만을 고민했다.
하물며 월요일에 PT를 잡으면 주말 하루라도 시간을 주니 좋겠지?
라는 되도 않는 생각을 했었다.
대행사에 와서 알았다. 광고주가 쉴 때, 우리도 쉬어야 한다는 걸.
대행사에서 일한다는 건,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나, 우리의 스케쥴을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다.
비딩도 마찬가지다.
어떤 PT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 매번 비슷하게 나오던 PT도 일정이 바뀐다.
그러다 보니 대행사 입장에선 비딩철의 PT를 잘 선택해야 한다.
하기 싫은 PT를 선택했는데 원했던 PT가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광고주일 때는 몰랐다.
비딩철에 많은 일이 몰리지만 모든 비딩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비딩에 들어가는 인건비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그 기회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는 것.
그래서 대행사들은 어떤 비딩에 들어갈지 심사 숙고해 선택한다는 것.
11월과 12월 펜타클에 들어온 비딩 인바이팅의 숫자는 꽤 많았다.
어떤 비딩은 내정이 되었다는 소문으로, 어떤 비딩은 광고주가 너무 힘들다는 소문으로,
비용 집행이 부풀려진 거 같거나 예산 대비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핑계로
자연스럽게 들어가지 않는 비딩들이 선택되었다.
비딩철엔 비딩을 원하는 기업의 수는 많은 반면 소문난 광고대행사의 숫자는 적다.
수요와 공급의 간단한 법칙 때문에 유명 대행사들은 비딩을 선택할 수 있다.
광고대행사들은 어떤 기준으로 비딩에 들어갈 기업을 선택할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것들을 고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예산 금액이 크거나
장기 계약 조건이 붙는 비딩이 인기가 좋다.
그러다 보니 금액을 부풀리는 기업도 있지만 전년도 실 집행비용을 보면 대략 예산의 적정성이 파악된다.
기업이 대행사 선정에 경쟁을 붙이는 이유는 여러 대행사들의 다양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보고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광고주 시절, 나도 이런 이유로 많은 대행사를 인바이팅했다.
하지만 늘 마음에 드는 안이 있던 건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많았다.
대행사를 선정해도 PT에 있던 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행사에 와보니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업이 진짜 필요한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주는 것이 경쟁 PT의 핵심이지만
진정성을 담은 그 전략과 크리가 반드시 경쟁 PT의 승리를 담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경쟁 PT에 참여한 다수가 좋아할 만한 경쟁 PT용 전략과 크리가 만들어 진다.
이 사실을 광고 대행사 8년차가 되어야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 PT용 전략과 크리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덕분에 떨어지는 PT도 많지만 승리한 PT의 전략과 크리는 거의 그대로 온에어 된다.
지금까지 비딩에서 제안한 크리에이티브의 90% 이상이 그대로 실행되었다.
광고주일 때 관성적으로 매년 PT를 했고 그것이 좋은 대행사를 뽑은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절대 평가가 아니다보니 마음에 드는 안이 없어도 상대적으로 좋은 대행사를 뽑아야만 했다.
오히려 경쟁 비딩만이 광고대행사를 뽑는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대행사에 와서 알게 되었다.
실력과 진정성을 인정해주며 비딩 없는 계약 연장을 하는 기업도 있었고
비딩 없이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어하는 기업의 연락도 종종 온다.
광고주 입장에선 좋은 대행사와 일해서 좋은 캠페인으로 탁월한 성과를 얻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요즘 잘 나가는 대행사를 찾고 경쟁 비딩에 초대한다.
하지만 비딩철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기업이 같은 시기에 비딩 인바이팅을 보내다 보니
대행사는 브랜드가 유명하고 예산이 많으며 일이 적을 거 같은 기업을 선택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을 가진 광고주들은 생각보다 적은 참여 대행사의 수를 보며 한탄을 할 수 있다.
때문에 오히려 비딩철을 피해 대행사를 초대하는 게 좋을 수 있다.
다른 방법은 비딩 없이 사전 미팅을 통해 몇 개의 대행사를 만나고 수의 계약을 하는 방법이다.
펜타클도 최근에 이런 방식을 통해 미팅을 진행하고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2~30%의 수주 가능성에 수천만원의 기회 비용을 투입하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비딩 참여가 없다면 예산이 많지 않더라도 확실한 수익이 나오므로 대부분 일을 진행할 수 있다.
비딩철엔 인바이팅을 하면 광고대행사들이 알아서 참여하겠지? 라는 생각이 안 통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을 가진 기업이 좋은 광고 대행사를 만나고 싶다면
11월에서 3월까지의 비딩철을 피하거나 사전 미팅 과정을 통해 대행사를 선정하는 것을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