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찾아준다는 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이다.
지금도 교과서에 이 시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에 나와서 한 참 지나 이 시를 다시 읽은 적이 있다.
배움으로의 시에서 감상으로의 시로 바뀌자, 이 시가 너무 좋았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
누구나 아는 표면적 가치가 아닌 숨겨진 가치가 있기도 하다.
숨겨진 가치는 누군가 그 가치를 알아봐 줘야 비로소 가치가 살아난다.
구본창에 사진 예술이 된, 다 쓴 '비누'가 그렇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지만 비누는 거품을 내어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 주고, 그만큼 제 몸은 닳죠. 누군가의 시간이 축적될수록 작아지고 상처만 남는 모습이 자신의 역할에 가장 충실했던 존재의 흔적 같아서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구본창 인터뷰 중)
사직작가 구본창은 버리기 직전의 다 써버린 비누를 모야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쓰레기 통에 가야 할 비누는 구본창에 의해 예술작품 되었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아는 제품의 USP를 '크리에이티브화' 하는 일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치를 찾아내는 광고로 만드는 일은 어렵다.
누구나 아는 가치도 누구에게나 동일한 크기를 갖지 않는다.
가치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면 타겟마다 주어야 할 제품의 가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어린이 홍삼제품, 홍이장군 광고를 만들 때 아이의 나이에 따라 엄마들의 걱정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취학 전 자녀의 부모는 감기등의 질병 면역력에, 취학 후 자녀의 부모는 학업 스트레스를 걱정했다.
이 걱정을 그냥 퉁쳐서 면역력으로 소구 하면 엄마들의 공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의 나이에 따라 질병 면역력, 스트레스 면역력을 소구 했다.
광고가 집행되자 정체되었던 매출이 가파르게 올랐다.
더 어려운 일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제품의 가치를 찾아내 주는 일이다.
표면적 가치 속에 숨겨진, 광고주도 생각하지 못했던 가치를 찾는 일.
이 것이 Finding value다.
광고를 Finding value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면 광고주가 준 과제를 벗어나야 한다.
광고주도 생각하지 못한 가치를 찾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어려운 일일 뿐이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광고주는 해당 산업 안에 매몰되어 소비자 시선의 다른 그림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통신사에서 광고주로 일할 때 늘 고민했던 건 경쟁사 대비 차별적 우위였다.
그래서 늘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이라는 것에 집착했다.
소비자가 되어 보니 전혀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런 메시지에 전혀 감흥이 오지 않았다.
광고주에서 일반 소비자가 되자, 하고 싶은 이야기와 소비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다르다는 걸
확실히 체감하게 되었다.
광고주에 따라서는 기업이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는 일이 최선일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광고주가 생각 못한 기업, 브랜드, 제품, 서비스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 주는 일이
어쩌면 광고대행사의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