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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일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_5

돈을 깎는 일보다 중요한 일

by 김대영

"광고제작비가 너무 과다 청구된 거 아닌가요?"

"왜 기획비를 이렇게 많이 청구했어요?"

“예산 증액 안되니까. 어떻게든 맞춰주세요 “


광고주일 때 당연히 이런 말을 대행사에게 했을 것이다.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뿐, 아니 어쩌면 일부러 기억에서 삭제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광고주 생활을 하면서 견지하고 있던 광고 예산에 대한 생각은 명확했다.


‘난 구매팀이 아니라 마케팅 팀이다’

'내가 칭찬받을 수 있는 일은 광고대행사에게 줄 돈을 깎는 것이 아니다'

'내가 칭찬받는 일은 결국 광고대행사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이런 생각은 광고주일 때 후배들에게도 누누이 알려주었다.

회사에서 나의 능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줄 때, 일할 맛이 난다. 광고대행사도 마찬가지.

광고대행사가 좋은 마케팅 전략이나 크리에이티브를 잘 갖고 오게 하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다.


광고주일 때, 대행사가 청구한 돈을 깎는 것보다, 좋은 캠페인을 만들 수 있는 적정한 대가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았다.

늘 청구한 견적을 의심하며 조금이라도 깎으려 혈안이 돼 있는 동료, 후배들이 존재했다.


그 동료, 후배들이 오늘도 여전히 견적서를 갖고 대행사와 씨름하고 있다.

광고주 입장에서 광고대행사들이 주는 무형의 가치를 일일이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이디어마다, 크리에이티브마다 좋고 나쁨에 따라 비용의 책정이 달라질 수도 없다.

불만족스러운 아웃풋과 서비스를 받았다면 당연, 청구비용을 깎고 싶을 것이다. 그런 경우엔 당연히 비용을 깎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생긴다 해도 기획비가 늘어나는 일은 없다.


광고주 시절엔 대행사의 공을 그저 나의 성과로만 챙기기에 급했다.

광고대행사에 와 보니, 광고주가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전략과 크리에이티브의 가치가 합당하게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리하나 저리하나 똑같은 돈을 받는다고 덜 크리에이티브하거나 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다.


결국 광고대행사의 가치를 알아주는 일은 광고주 담당자의 몫이다.

광고주가 갑의 위치에서 일 못하는 광고 대행사를 채근질하고 욕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너무 쉬운 일이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은 광고대행사의 가치를 알아주고 그에 대한 적당한 대가와 보상을 챙겨 주는 일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통신사에 근무할 때 일 잘하는 대행사에게 회사에서 감사 트로피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좋은 성과를 낸 적이 꽤 있지만 아직 그런 광고주를 만나지는 못했다.


광고대행사에 와 보니 광고주가 광고대행사를 잘 다루는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갑의 위치에서 잘 못 한 것을 지적하는 광고주가 아니라 잘한 것을 잘한다고 말해주는 광고주만 되면 된다.

잘하는 것에 합당한 대가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국 본인의 좋은 성과를 위해 대행사가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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