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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Dec 31. 2023

광고의 색깔론

광고에 대한 새로운 시선_1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굳이 뜻을 해석해 보자면 자신의 재주를 믿고 설치다가 자신의 재주 때문에 망한다는 이야기다.


오래전 나의 첫 책은, 신입사원들이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조언을 모은 것이었다.

그 책의 한 챕터엔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책은 1 쇄도 팔리지 않았고 따라서 개정판이 나올 리 만무하다.

하지만 만약 개정한다면, 경력이 쌓여 갈수록 자신만의 뚜렷한 한 가지 색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조언을 추가하고 싶다.


최근 들어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뽐내는 광고대행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광고대행사도 결국 광고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상품이라면, 대행사만의 뚜렷한 개성과 포지셔닝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광고대행사가 있지만 소위 잘 나가는 대행사는 일부다.
그중 늘 업계 탑을 유지하는 몇몇 종합광고대행사는 대기업 계열사로 몸집을 불려 왔다.

대기업의 물량지원과 브랜드 파워는 좋은 광고주와 좋은 인재들을 흡수하는 조건이 되어 주었다.

반면 독립광고대행사들이 광고 업계에서 좋은 광고주를 영입하고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군분투하며 자신만의 색을 뽐내는 여러 독립 광고대행사들이 대기업 종대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대단함과 동시에 반가운 일이다.


'요즘 A대행사 광고는 딱 보면 그 대행사가 만든 느낌이 나잖아요. 그들만의 스타일이 부러워요. 우리 회사만의 색은 뭘까요?‘


몇 해 전 회사 동료의 말을 듣고 몇 날을 고민했다. 우리 만의 색깔은 무엇이며 없다면 무엇이 되어야 할까?


캠페인 부문의 책임자로 오랜 고민 끝에 낸 결론은 펜타클만의 색이 있는 광고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만의 장르를 만들고 그 장르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남들이 인정하는 자신들만의 스타일과 장르를 만드는 일은 너무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고유한 크리에이티브  레거시를 격하하고 싶지 않다.


소수의 동료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난 우리 회사가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영속하는 광고대행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내년이면 펜타클은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한다.

20년 사이에도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던, 하지만 지금은 사라진 광고 회사들이 많다.


승자만 살아남는 광고계의 비딩 시장에서 살아남는 일이란 여간 힘들지 않다.

광고주들이 펜타클 하면, 떠오르는 광고의 색깔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결국 오랜 영속을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 단 어떤 색의 광고를 만들더라도 그

뒤에 숨겨진 성과만큼은 양보해선 안될 일이다.


크리에이티브 실에서 몇 동료들은 자신 만의 색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어떤 색을 만들어 낼지 모르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색을 만들지 말라 할 순 없다. 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광고와 잘하는 광고가 무엇인지 깨닫고 난 후엔 오히려 그 안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하는 건 예술이 아니다. 광고주의 돈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색 보다 우리가 가치를 찾아 주어야 하는 대상의 색에 맞춰 우리의 색을 능수능란하게, 카멜레온처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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