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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Jan 01. 2024

힘들다면서 광고를 하는이유_2

휴지기

‘이런 세상이 있었네요’


2016년 펜타클에 입사했다.

광고는 낯설지 않았지만 대행사는 모든 게 새로웠다.

그중 ‘비딩 참여’라는 새로운 일은 적응이 어려웠다.

초대-준비-PT-결과-환호 or실망

첫 1,2년은 환호와 실망에서 받는 심리적 기쁨이나 충격 강도가 강했다.


몇 년 일 하면서, 승리의 기쁨은 반나절, 실망의 충격은 1-2일로 정착되었다.


비딩 참여라는 광고대행사의 특이한 업무 영역은 15년 가까이 일반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한 내겐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와 같았다.


일반적인 대기업의 업무는 전형성이 있다. 큰 보고가 잡히거나 제품 런칭 같은 이벤트를 제외하면 평균적으로 적당히 계속 바쁘다.


광고대행사에서의 경험은 이와는 달랐다. 평균적 바쁨이 아닌 극단적 몰입기와 극단적 휴지기가 찾아왔다. 대행사 입사 후 이듬해인가는 거의 한 달 가까이 PT 없이 허송세월을 보낸 적도 있었다.

물론 그 게 마지막 극단의 휴지기였지만 PT를 끝내고 나면 단 며칠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이종종 찾아온다.


이전 직장 동료가 휴식이 길었던 그 즈음, 연락을 했을 때 나는 너무 달랐던 근무 환경을 한 문장으로 전해 주었다.


‘이런 세상이 있었네요 ‘


극단적 몰입기엔 진이 빠진다. 매일매일 회의를 하고 동료들의 아이디어에 피드백을 주고 전략방향을 다듬다 보면, 딱 방전 직전의 스마트 폰이 된 거 같다.


좋은 캠페인 덕에 회사가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되자 극단적 휴지기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비딩 제안의 간격도 짧아져야 했고 캠페인의 가지 수가 많아짐에 따라 운영 업무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제안과 제안 사이에 적절한 휴지기를 가지려 노력한다.

비딩마다 많게는 10번도 넘는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 뇌가 탈탈 털린 기분이 든다. 나도 이럴 진데 동료들은 당연히 더 힘들겠지.


비딩을 준비하는 일은 어릴 적 먹었던 비닐 우유를 떠오르게 한다. 빨때를 꽂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먹으면 비닐은 공기가 빠지며 완전히 쪼그라든다.

경쟁 PT날 마지막까지 ‘있는 아이디어’, ‘없는 전략’을 쥐어짜면 정신과 육체가 그 때 그 우유팩 마냥 쪼그라진 느낌이 든다.


휴지기에 돌입하면 한 없이 수축된 것만 같은 뇌를 새로운 것들로 채워 줘야 한다. 그간 못 읽은 아티클이나 책을 본다. 유튜브도 빼놓을 수 없다. 제목만 달아 놓고 쓰지 못했던 브런치의 저장글을 다듬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아무 것도 안해도 좋다. 무언가를 넣지 않고쉬는 것 만으로 수축된 정신은 제 상태로 돌아온다.


2024년,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작년처럼 쉽지 않을 한 해가 될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가능하면 나도 동료들도 이 휴지기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더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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