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광고가 세상을 조금이나마 변화시켜 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대학교 시절에 광고에 관심을 둔 것도 그 이유가 컸다.
광고주에 있을 때도 기회가 생기면 그런 광고를 만들어 보려 애썼다.
광고대행사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다소 거친 글의 제목에 미치지는 않으나상업 광고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며칠 전 회사의 기획 본부장과 점심시간에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광고주가 광고로 세상을 바꿔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죠"
하지만 영리적 목적을 가진 그 어떤 광고주도 광고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달라며 광고를 의뢰하지 않는다.
하물며 내가 만난 여러 NGO들은 세상을 따듯하게 할 캠페인 보다 소비자들의 기부를 끌어낼 수 있는 자극적 방법을 더 원했다. 그것이 비즈니스 세계의 현실이다.
지난 시절 조금이나마 사회적 책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팔기 위해 기업의 문을 두드렸을 때 흔쾌히 공익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해주었던 광고주는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광고의 본질은 무엇일까?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가장 대중적인 정의는 광고주가 타겟 청중을 설득하거나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매체를 이용하는 의사전달의 형태라 할 수 있다.
광고주는 광고제작, 매체 비용을 투자하고 이를 통해 인지, 선호도를 높이거나 직접적 매출, 이익을 높이는 목적으로 이용한다.
광고주는 기업의 브랜드 선호를 높이고 그 선호를 통해 자신의 제품을 많이 팔기 원할 뿐이다.
광고의 본질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광고를 선한 영향력의 발현과 그러한 가능성의 영역에서 평가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매년 발표되는 광고제의 수상작들이다. 모든 부문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공익적 주제를 다뤄야 유명한 국제광고제에서 좋은 상을 받을 확률이 높다. 한국의 광고제들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조금씩 트렌드가 바뀌지만 여전히 '환경' '기아' '다양성' '전쟁' '소수' '차별' '소외' 등의 공익적 주제를 다루는 광고 캠페인들이 많은 상을 받는다.
이런 경향성이 나타난 것은 현대 소비자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수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브랜드가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 또한 중요성이 없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광고 캠페인이 아니라 책임 있는 경영의 일환이 되어야 맞다. 환경 친화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는 대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 친환경 제품 출시 같은 조치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광고제 수상에 더 큰 목적성을 둔 광고대행사의 욕심과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선호라는 욕망의 결과로 광고 캠페인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을 양보하면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본질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보다 광고 캠페인의 일환으로라도 작은 공익적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펜타클에서도 공익 캠페인을 만들고자 광고주를 설득하고 실제 실행한 적이 있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는 것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인턴이나 신입사원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나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많은 광고제들이 공익적 주제와 그에 대한 창의성에 상을 주는 경향성으로 인해 취업을 준비하는 예비 광고인들 대부분이 공익성을 추구하는 광고 아이디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제광고제 수상을 도와주는 학원까지 등장했다. 광고 관련 학과와 이런 사설 학원들까지 가세해 해외 광고제 수상이라는 이력을 위해 공익적 주제의 광고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현실에서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공익 캠페인을 진행하자는 광고주는 찾을 수 없다. 물론 광고제 수상의 욕심을 갖는 대행사와 광고주가 만나면 공익 캠페인을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부터 마케팅의 일부로서 광고가 상품의 가치를 빛내, 궁극적으로 매출이나 이익을 늘리는 결과물로서 대접받는 것보다 공익적 주제를 다뤄야 대접받는 일이 많아졌다.
광고의 선한 영향력에 감화된 신입들에게 '그런 일은 꿈꾸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자본주의의 대변자가 된 듯 소심해지게 되었다.
광고제의 수상은 광고회사나 광고주 기업의 마케팅 역량을 돋보이게 해주는 좋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은 환경을 위한 탄소배출 감축에 노력하거나 공정한 노동환경에 힘쓰고 윤리적 경영과 지속가능 경영 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다.
더 큰 본질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기능적이며 감성적인 혜택의 가치를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광고대행사 역시 광고제의 상을 받고 싶다면 공익적 주제를 활용하여 수상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광고의 본질에 충실한 새로운 전략적 접근과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광고주가 원하는 결과를 얻게 하는 것이 본질이 되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광고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다. 광고대행사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광고제 수상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광고주의 돈을 이용해 공익 캠페인을 해서는 안된다. 광고대행사가 자신의 돈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사실 여러 광고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 되었다. 여러 광고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P&G의 CBO 마크 프리처드는 광고계에서 공익적 캠페인만이 주목받고 상을 받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광고가 공익적 요소를 내세우더라도 실제 기업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WPP의 전 CEO 마틴 소렐은 광고계에서 공익적 주제만을 다룬 캠페인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공익적 캠페인이 기업의 이미지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상업적 목표를 달성하는 광고 캠페인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 경우, 광고산업의 본질적 역할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Saatchi & Saatchi의 전략 책임자 리처드 헌팅턴 역시 광고제 심사 기준이 지나치게 공익적 주제에만 치우쳐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광고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핵심 목표와 가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어쩌면 이러한 흐름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광고제 심사 기준의 변화일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광고제인 대한민국광고대상에도 공익광고 부문은 마련되어 있지만 다른 부문에서도 이른바 착한 광고, 공익적 캠페인이 중복 수상을 한다. 공익적 목적의 캠페인은 해당 부문에서만 수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광고의 선한 영향력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그런 광고를 좋아할 것이다. 광고에 관심을 갖거나 광고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 역시 그러한 광고들이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예비 광고인들이 광고의 선한 영향력에 대한 기여를 목표로 광고업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광고의 본질도 아니며 그러한 광고를 만드는 일은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바라는 일은, 기업이 진정성 있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그렇게 추진한 일들을 소비자에게 잘 알리고 싶다며 광고대행사에 손을 내미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