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니애 Nov 29. 2023

어머니, 몹쓸 며느리가 되갚아드리겠어요

 해마다 가을이 오면 택배아저씨가 오는 게 제일 무서웠다.

 산들논밭 골고루 수확한 작물을 응축하여 20kg를 꽉 채운 박스가 하루가 멀게 집 앞에 놓여 있었다. 퇴직 후 고향으로 귀농하신 시부모님은 집 앞 텃밭을 시작으로 매해 농토를 늘리셨는데 작물도 그만큼 다양해져 이젠 택배수령이 가을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다. 덕분에 난 언제든 박스 해체작업을 집도할 준비가 된 베테랑 도시 며느리가 되었다.


 띠링, 쓰니애 고객님! 우체국입니다. 소포우편물을 오늘 배달할 예정입니다.

집도를 준비하자. 니트릴 장갑, 커터칼, 냉장고 속 빈자리, 해체 후 흙을 치울 청소도구 준비 완료. 메스로 박스의 배를 가르고 내부를 살펴본다. 꽝꽝 얼린 돼지국밥과 육개장, 호박과 가지 몇 개, 무 몇 개, 알밤 한 봉지, 새로 담으신 김치 한 뭉텅이, 밑반찬 몇 가지에 깐 마늘이며 떡까지. 주제가 분명하지 않은 박스 내용물 곳곳에서 어머니의 바지런한 시간과 공간들이 보인다. 무언가 가득히 담긴 대야를 옆구리에 끼고선 밭으로 부엌으로 창고로, 하루에도 몇 번씩 종종거리며 왔다 갔다 하셨을 다. 초저녁에 이미 잠드셨을 아버님을 행여나 깨울까 싶어 바깥주방으로 나가 희미한 불 아래 홀로 옹그려 앉으신 뒷모습이 그려진다. 낮동안 거둔 야채와 음식들을 다듬고 싸매시는 동안 시골의 밤은 더 컴컴하고 아득히 깊어졌겠지.   


 '아이고야 호박이 예쁘게도 생겼네, 이건 우리 먹지 말고 애들 보내줘야겠다.'

 '상추가 연한 것이 애들 먹기 딱이네.'

 '이거는 에미가 잘 먹는 건데, 애비는 파김치가 없으면 안 되는데.'


 갖은 이유들로 종이박스에 담겨 온 시골음식들은 단 한 번도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온 적이 없다. 마늘은 윗대를 다 잘라 큼지막한 알들만 골라 넣고 잎채소들은 들쑥날쑥하지 않도록 비슷한 크기의 고운 아이들을 가지런히 모아 보내주신다. 대파도 겉옷을 벗기고 뿌리를 잘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싱싱한 것들만 신문지로 돌돌 말아 넣어주신다. '맨날 뭐 해 먹지' 염려증이 있는 주부에게 일용할 식량이 올라오면 비록 해체작업이 번거롭긴 하여도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처음부터 어머니의 택배가 반가웠던 것은 아니다. 지금에서야 요령이 생겨 이웃들과의 나눔과 맞교환이라든가 냉동실에 저장하거나 하여 요리조리 다양한 시도로 재료를 소진하지만, 아직 새댁이란 말이 어울렸을 시절에는 퍽 곤란한 애물단지였다.


 "너희 물김치 안 필요하나? 밤도 아버지가 많이 주워다 놓으셨다."

 "고구마를 캤어, 한 상자 보내줄게 무봐라(먹어봐라-경상도사투리), 김치는 아직 있나?"


 이런 통화가 끝난 날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또 뭐가 한가득 덧붙여 오려나. 본품보다 부록이 많은 어머니표 박스는 명절에 차를 갖고 내려갈 때 갑절로 늘어났다. 갖가지 명절음식과 채소 과일 등을 싸고 계신 어머니 곁에 딱 붙어 좇아 다니면서 발을 동동 굴렀고 불안한 눈빛으로 간절히 외쳤다. '그만, 그만! 주여, 제가 감당을 못 하겠나이다.' 마음으론 기도를, 어머니껜 염불 외듯 계속 이 말을 되풀이했다.


 "어머니, 그만 싸세요, 애들이 안 먹어요."

 "어머니, 이건 안 가져갈게요, 애비가 손도 안 대요."


 어머니껜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비밀인데, 보내주신 음식을 도무지 가져간다는 이웃도 없고 먹는 가족도 없을 땐 냉장고 안에서 자리만 차지했다가 그대로 싱크대에 부어버리기도 일쑤였다. 원래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베란다 화초 정도만 정돈하던 깨끗했던 손이었으나 작금엔 종일 밭일 하느라 손톱 밑이 새까매지신 어머니. 측은하고 감사해하면서도 택배가 온다 하면 한숨부터 쉬었으니 나쁜 며느리였음을 스스로 안다. 그러다 몹쓸 며느리에 종지부를 찍었던 날이 있었으니. 감자와 양파가 한 무더기가 오고 난 한참 뒤였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야. 부엌 옆 다용도실에서 시큼하고 썩은 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디지? 어디서 나는 거지? 수채구에서 올라오는 아랫집 냄새인가? 이거 저거 들춰보다 드디어 범인을 찾았다. 양파다! 박스 안에 최대한 겹치지 않게 보관한다고 뒀지만 양파는 더 이상 황금빛의 제 본체를 잊고 달마시안이 되어 밑바닥 종이를 뚫을 정도로 물러져 상자 안 이곳저곳에 포진해 있었다. 이런 것들을 암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인가. 잠깐! 양파가 이 지경이면 감자는 어떻게 되었지? 급하게 감자 상자를 열었다. 본능적으로 코를 단단히 움켜쥐고 한 발짝 뒷걸음질을 친 자세로 조심스레 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보게 되었다.


동충하초를.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것은 감자인가 동충하초인가. 멍게인가 해삼인가.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작물재배라는 재능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귀농을 준비해야 하나. 아니지, 식구들을 죽이려 작정하고 독을 재배한 주부로 오인받아 수갑을 차기 전에 여기 이 동충하초, 아니 싹 난 감... 아니 뿌리 자란 감자를 신속하게 제거해야 한다. 이미 다용도실 내부에 글리코알칼로이드 분자가 뭉게뭉게 퍼진 것 같다. 이러다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몰라. 마스크를 다급히 찾아 쓰고 독감자 한 무더기를 종량제봉투에 와르르 담으며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아, 어머니! 그만 좀 많이 보내주시라니까요!'

언젠가는 어머니께 이 복에 겨워 배부른 비명을 그대로 되갚아드리리.




 독감자 사건이 있고 그로부터 3년 뒤, 드디어 어머니께도 복수할 기회가 왔다.

 여름의 끝자락 즈음, 아버님의 배에 혹이 만져져 찍은 초음파 상 악성종양이 의심된다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되었다. 시부모님은 시골의사의 소견서 한 장과 이틀 만에 부랴부랴 싼 짐을 들고 서울 소재 병원으로 오시게 되었다. 먼 길을 시외버스 타고 오시느라 보호자 이불 짐도 싸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훗, 전직 간호사 며느리의 진가를 보셔야 할 때가 왔군.'

병동생활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과 있으면 의외로 편하네? 하는 소품들을 바리바리 챙겼다. 공병에 주방세제를 담고 수세미와 비닐랩, 빨대 등을 챙길 땐 '이건 생각 못하셨겠지?' 하며 스스로 흐뭇해했다. 다음 날은 장을 봤다. 두유며 빵이며 과일과 김 등등. 시골에서 올라오는 짐보다 더 많은 장바구니를 양손 가득 차에 싣고 시부모님을 모시러 터미널로 나갔다.


 "아이고, 이래 나와 있는 며느리를 보니 달덩이처럼 예쁘다."

 늘 고운 말밖에 모르시는 어머님은 먼 길 끝에 마중 나온 며느리가 고맙고 반가우셨나 보다. 살이 쪄서 달덩이가 된 얼굴인데 당신 눈엔 이쁘셨나 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사랑의 손길을 제대로 갚아드려야겠네? 서울에 연고라곤 4형제 중 우리 집 밖에 없으니 이곳에서의 효도는 내가 독차지하겠어. 집으로 돌아온 뒤 또 온라인 장터를 뒤진다. 보호자가 병원에서 먹기 좋은 간편식이, 아버님이 금식 중이실 때 눈치 보이지 않게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대체 식이, 아버님 당뇨에 좋은 음료, 어른들이 좋아하실 만한 간식 등등. 반찬도 조금씩 쌌다. 병원식이는 입맛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오이지를 무치고 멸치고추 다대기를 조리고. 올림픽 대로에서 막히면 한 시간 반도 걸리는 사실 꽤 먼 거리였지만 내비게이션 도움 없이도 길을 외울 정도로 뻔질나게 병원을 오갔다.


 "어머니,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간식 좀 사다 드릴까요?"

 "아니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냥 오면 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절대 뭘 사 오지 말라는 어머님의 극구 만류에도 나는 몹쓸 며느리인지라 말을 듣지 않았다. 병원 입구를 지키는 야쿠르트 아줌마에게서 건강음료라도 기어코 몇 병 사들고 가야 마음이 놓였다. 조직검사, 수술, 항암치료로 이어지는 투병생활로 입퇴원을 반복하시다 보니 추석도 병원에서 쓸쓸히 맞이하게 되신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남편이 부탁한 것도 아니건만 전을 부치고 잡채를 볶고 나물을 무치고 혼자 주방에서 난리가 났다. 꼬치 전과 깻잎 전이라니, 하필 손도 많이 가는 걸 골라서 내 고생을 팠다. 하루종일 주방 원맨쇼를 펼치고 머리도 못 감은 채 부모님을 뵈러 갔다. 명절이랍시고 며느리 혼자 음식 장만해서 챙겨 오고, 자식과 손주들을 보시며 저리 기뻐하시는데 밀가루와 기름 묻은 머리 따위가 무슨 대수인가.


 그만 가져와라, 필요 없다, 사면된다 하시던 그 말씀. 어머니, 어디서 들어 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10년 넘게 제게 하시던 그 대사잖아요. 아무리 손을 내저어도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시려던 그 마음, 제가 다 알아버렸거든요. 아버님은 항암치료 잘 받고 예전처럼 정정한 모습으로 돌아오셔야 하고요, 곁에서 간병하시는 어머니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저희가 자꾸 살펴야 해요. 병동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서 죄송한 마음, 이렇게라도 달래야 하네요. 어머니, 제가 되갚아드릴 테니 계속 받기만 하세요. 항암치료 탓에 아버님 입맛 없어 버리게 되더라도 일단 이것저것 드시게 하는 시도를 해보세요.


 지난주 병원에 갔더니 이번엔 어머니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솔기가 뜯어져 허름하고 색도 바랜 크로스백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에 밟혔다. 며느리  하나 뻔질나게 왔다갔다 하더니 시어머니 가방도 한 번 못 봤나, 어디서 저런 걸 메고 다니나? 이런 흉을 듣고 계신 건 아니겠지? 속상해서 안 되겠네, 이번엔 가방이다.

 백화점으로 출발.


매거진의 이전글 첫눈이 오면, 임윤찬을 들어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