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고백하고 보니 아주 웃기고 기가 막힌 참회가 아닐 수 없다. 첫 문장으로 쪼르륵 뱉는 키보드 위의 시간, 고작 7초. 도망 다니는 애를 붙잡아 귀에 묵은 시컴한 귀지를 빼낸 것처럼 시원하다. 왜 이걸 가지고 그동안 끙끙댔는지 어이없는 실소가 나온다. 20개 쓰고 슬럼프라니.
몇 번의 에디터의 픽과 다음 메인 노출 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빼어난 글을 써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이전에 높은 조회수를 올렸던 글만큼 쓰지 않으면 독자를 사로잡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다음 글을 기대하는 마음 하나로 구독버튼을 눌러준 분들이 계시는데, 그들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나에게서 돌아설 것이라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더 사랑받고 싶었다.
10만 조회수를 겪고 나니 교만해진 것이었다. 더 이상 에디터의 픽을 받지 못한다면,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슬프고 우울해질 것이라 미리 예단했다. 쾌감을 한 번 맛보고 나면 다음은 그 이상의 극락을 바라게 된다는 연예인들의 우유주사가 나에겐 에디터의 픽이었다.
그러기엔 부족한 실력의 한계가 이미 아는 바였다.
매일 새벽, 글로 시작하여 다양한 회사의 신문을 정독한다는 작가님들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니 논리 정연함의 결여가 보였고 그녀의 글이 부러웠다. 서론 본론 결론의 짜임새를 자로 치수 잰 듯한 문단과 똑똑한 어휘들이 촘촘히 짜인 문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거기에 논증이 명확해야 좋은 글이라는 유시민 작가님의 한 마디가 꿇어 엎드린 내 등 위로 인디언 밥을 날렸다. 부족한 실력으로 섣부른 사견을 늘어놓았다가는 날카로운 시선의 어느 누군가로부터 얻어맞는 내 등짝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절필한 지 열흘 째, 브런치 작가로 이끌어 준 이은경 작가님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오후의 글쓰기」
글쓰기가 다이어트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요요'가 없다고 얘기해 준다. 성장만 있고 후퇴는 없을 거라고. 방심하는 순간이 와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달래준다. 적어도 우린 어릴 때보다 잘 쓰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냐고 다정한 농담도 곁들여준다.
달래고 어르지만 결국엔 쓰는 자리로 토끼몰이를 하는 결론이다. 글 쓰기 싫은 마음까지 글로 써보라고, 대신 힘을 빼도 되니 타인의 평가와 시선을 개의치 말고 최대한 멍청이같이 글을 써보라고. 한 마리의 토끼가 되어 코너로 몰리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키보드 위에서 다시 손가락이 깡충거릴 때가 왔다.
마침 정오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세상 최고의 똥멍청이 글을 쓰도록 해보지. 앉아 있던 카페에서 책과 함께 챙겨 온 노트북을 펼쳤다. 가볍지만 사양이 낮아 잘 쓰지 않는 세컨드 노트북인데 오늘은 어쩐 일로 패가 뒤집혔다. 하필 오늘의 시중들기로 간택된 만남에는 이유가 있었나 보다. 노트북을 열자, 브런치 작가가 되겠다며 욕망의 열차에 동승한 동기님들의 선물이 깜짝 이벤트처럼 터져 나왔다. 손 편지, 손수 그린 그림엽서, 뜨개 티코스터만으로 허전할까 봐 짧지만 꾹꾹 진심을 넣은 응원의 한 마디. 첫 대면모임 때 받은 소중한 마음들이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진부한 표현 좀 쓰겠습니다.
왈칵 눈물이 나왔다.
등단작가도 아닌 주제에 20개 글 쓰고 슬럼프 타령하는 무지렁이에게 등을 두들겨도 모자란데 따뜻한 응원이 웬 말인가. 글 쓰는 사람으로 살자고 시작하는 우리의 결의는 봄날의 향긋한 도원이 아니라 손 시린 겨울의 서울역 어디에서 였지만, 열정만큼은 그보다 더 따뜻하고 그녀들의 뺨은 도화보다 붉었다. 이래서 동기의 힘이 크다고, 꽉 붙잡고 가라 했나 보다. 수많은 읽을거리가 범람하는 거친 자기 어필 시대의 출간 물살에도, 단단히 묶인 뗏목이 되어 목적지까지 무사히 서로 데려다 주기를.
뗏목 위에 간신히 올라 타 키보드를 부여잡았다. 10일간의 절필에 안녕을 고할 반박거리를 단단히 쥐고서.
빼어난 글.
처음부터 그걸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무라카미인가 김영하인가. 유시민 작가님이 내 글을 검열하지도 않을 텐데 마음대로 써제껴보자.
사랑받고 싶은 마음.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복지도 없는 법, 내 글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어울려 이 판을 즐기면 된다. 에디터의 당근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의 무게를 키워볼 테다.
부족한 실력.
어차피 첫 번째 글을 쓸 때부터 실력이 대단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잖은가. 그때의 쓰니애보다 유의미한 변화를 지금 당장은 못 찾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20개 더 쓰고 나면 막둥이 손톱만큼은 발전이 보이는 쓰니애가 되어있겠지. 그리고 이 부분은 부지런한 독서를 통해 스스로 메워가면 일정 부분은 해결될 부분이 확실하다.
지금, 같은 고민을 하느라 혼자서 끙끙 시름하며 '내가 새로 쓴 글'만 없는 브런치에서 배회하고 있는 작가님들이 계신다면 건방진 도전장을 내민다. 이 세상 똥멍청이 글이 아니라 저 세상 똥멍청이 글이라도 양산해 보라고. 근심과 욕심을 내려놓으면 유명 작가의 글쓰기 잔소리도 잠시 볼륨을 낮출 수 있다. 쓰다 보면 시나브로 조앤 K. 롤링 같은 글로벌 작가가 되어 잭팟을 터뜨릴지도 모르는 일을, 누가 감히 아니라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