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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Feb 20. 2024

현망진창을 피하고 싶었어

<대문사진: SBS홈페이지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아줌마의 단합력을 높이는 몇 가지 키워드를 알고 있다. 출산, 사춘기, 잘생긴 오빠, 드라마.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그녀들은 한 주제에 머물지 않고 이 몇 가지 키워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학연, 지연, 혈연을 넘어서는 돈독한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 사춘기 자녀의 엄마를 위로하는 잘생긴 오빠가 나오는 드라마라면 더더욱 환영. 로망을 꿈꾸는 소녀의 마음이 허용되지 않으니 드라마를 통해 기꺼이 잠깐의 현망을 허락해 보는 수밖에.


 그날도 드라마는 우리를 단체 톡방으로 끈끈하게 끌어당기는 중이었다. 새벽에 기상하여 글을 쓰자고 모인 브런치 작가님들이 지성과 성실이 넘치는 톡방에서 왜 드라마로 대동단결했는고 하니, 마침 표현력과 어휘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고 도서 추천으로 물꼬를 튼 의식의 흐름이 필력, 잘 만들어진 대본, 주옥같은 대사로 유명한 드라마로 흘렀을 뿐이다.

 신이 났다. 저마다의 인생 드라마가 쏟아진다. 슬기롭고 멜로가 체질이고 눈이 부시게 나의 해방이 이루어지는 도깨비신화가 스물다섯 스물하나 대화창에 속속 올라온다. 어째, 글을 쓰실 때보다 더 흥분된 모습들이다. 대박을 쳤다는 드라마들은 작가가 천재인가 보다. 주옥같은 대사들은 어디서 퍼올릴 수 있는 것인가, 재능의 아둔함을 성토하는 그곳에 위험한 제목이 올라왔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애청자들에게는 '현망진창'이라 일컬어지는 2016작 드라마이며, 중국 원작이었던 걸 고려 광종 치세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현망진창은 현실과 엉망진창의 혼종어로 현실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져들었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보보경심은 작가가 여성 시청자들의 현망을 위해 작정하고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 8인의 꽃남들에게 둘러싸여 구애받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판타지 같으면서도 헤어 나올 수 없이 빠져드는 이유는 배우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노래도 잘하면서 연기도 해내고 마는 아이유의 아련한 고려여인을 어찌 외면하란 말인가. 다정한 이들에게 둘러싸인 여주인공이 나였으면 하는 감정이입, 서사의 완성을 장식하는 미모를 가진 남배우들이 하나씩 아스라지는 슬픔, 결국 새드엔딩인 주제에 열린 결말로 시청자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남겨놓은 작가의 잔망스러움 탓이다.

 

최애 왕자님들과 함께라면 현망 준비 완료



 첫 주행으로 현망을 처절히 경험한 뒤로는 회전문을 돌아 재탕을 시도할 때마다 단단히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눈을 최대한 무심히 떠서 화면과 거리 두기를 한다. 재생속도를 한 단계 높인다. 배경음악의 볼륨이 커지는 조짐이 보이면 건너뛰기를 마구 누른다. 의지적인 과몰입 방지였다. 심장의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철갑을 둘렀고, 아이유와 8인의 왕자들 앞에 성벽을 쌓은 뒤 벽 너머에서 철저히 시청자 본연의 자리를 지켰다. 스토리는 놓치지 않으면서 관망하는 자세가 현망을 멈추어주었다.


 그래서 글쓰기에도 관망하며 쓰면 되겠구나 싶었다. 에세이를 쓰는 과정에서 직면한 감정 들여다보기와 본질을 꿰뚫는 고찰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처음 한 두 편은 아마추어의 아량으로, 다음 몇 편은 요행으로 작문이 가능했다. 일필휘지의 가벼움은 아니었다만 고찰을 깊이 이어나갈 느린 손가락이 아니었다. 애써 도피성을 찾아도 마음속의 이야기를 쏟아내야 할 순간은 결국 들이닥치고야 말았다. 적당히 외면하던 감정을 다시 꺼내는 위험 앞에서 침잠하는 자신에게 실망하여 '나는 결국 지고 말았네'라는 생각이 들면 현망진창의 수렁에 발이 푹 빠지곤 했다.

 예전엔 문장 하나가 촌철이 되는 '잘 쓰는 이들'의 진득한 글을 읽거나, 문장 하나를 곱씹으며 전율하는 감상평을 들으면 '뭘 그렇게까지'의 시건방이 좀 들었었다. 그랬던 내게 브런치 작가 입성 3개월간의 두런두런 끄적인 글 발행은 이 건방을 빼는 작업이었다. 글 쓰니로 오래 살려면 삶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천천히 들여다보아 재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깊이와 이면, 저변을 이루게 된 이데아를 부지런히 마주해야 한다. 하나의 글감을 둘러싼 모든 관련자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본인의 감정에도 솔직해져야 한다. 감성의 촉수를 곧 세워 글 쓰니를 휘감고 도는 바람을 오롯이 견디며 그 감각에 온몸을 맡기고 하나하나 생경하게 느껴야 한다. 결국 관망이 아니라 조망이 필요하다.

 

 글을 쓰기 앞서 둘렀던 철갑을 끄러 놓고 대장장이의 망치질로 꽝꽝 두드려볼까. 인생은 해학이네 뭐네 하며 시건방 떨던 자세도 같이 좀 두드려 놓고. 두툼하고 투박했던 갑옷을 첨예한 촉수로 재단련하여 살아있고 솔직한 글 좀 써봐야지. 자조와 단어를 그럴듯하게 엮어 글을 짜집는 짓거리는 롱런하는 작가인생에 패망의 지름길 이리니. 현망 좀 하면 어때, 수렁에 박혔던 발을 관망하면 그대로 굳어 버릴 일이지만 조망하면 얼른 끄집어 올려야지 정신을 차릴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보보경심의 회전문으로 다시 들어가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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