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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 용미 Jun 11. 2024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미국 생존기

9. 1년을 버티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갔다

      

  미국에 들고 간 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대학교에서 학생가족에게 빌려주는 싱글하우스 렌트비가 당시 600-700달러 이쪽저쪽이라고 들었다. 높게만 느껴졌던 유학이,  모아둔 돈이 없었는데도, 대학원생 월급만으로,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던 남편 유학이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우리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메릴랜드 대학교로 가는 바람에 모든 것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가족을 동반한 남편유학은 그렇게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 

    

  1년을 살 수 있는 돈만 들고 갔었다. 그러나 정착비용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파트 계약을 할 때 보증금으로 한 달 치 월세가 이미 들어갔고 아파트 월세는 예상보다 두 배가 넘었다. 살림살이와 생필품 구입 등 초기정착에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갔다. 침대 등 덩치 큰 물건이나 새 제품을 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우선 1년을 버텨 보기로 했다. 

    

  남편 학교에서는 2주 간격으로 주급이 나왔다. 한 달이 28일, 30일, 31일로 매달 날짜가 다른데, 정확한 계산의 주급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4주 월급을 합쳐도 한 달 월세에 미치지 못했다. 들고 간 돈에서 매달 월세와 생활비가 조금씩 들어가고 있었다. 


  미국은 서비스 등 사람이 하는 일에 높은 가치를 쳐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음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공하지 않은 농산물은 아주 저렴했다. 거대한 땅에서 기계화된 시설을 갖춘 농부들이 생산하는 것이라 그랬을까. 어쨌든 원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이 사람들의 서비스가 더해지면 음식값은 비싸졌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거였다. 어쩌면 것은  기회였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만들었다. 한국마트에서 100달러 정도 장을 봐 3주 이상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한국마트에서는 100달러 정도 장을 보면 카트가 가득 찼다. 주로 김치와 관련된 장을 봐 각종 김치를 담갔다.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동치미, 파김치, 깻잎김치, 오이김치, 물김치 등. 사실 김치가 있으면 요리는 쉬워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리울 때, 두 손 걷어 부치고 인터넷을 뒤져 음식을 만들었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깐풍기, 잡채, 수육, 콩국수, 냉면, 초밥, 족발, 두부김치, 시래깃국, 감자탕, 팥칼국수, 호박죽, 떡, 꼬치 전, 갈비탕 등. 5년을 살면서 한 번도 한국 나들이를 나오지 못했다. 음식으로 달랬다. 


  깻잎과 오이, 고추, 토마토는 발코니에 화분을 두고 키워 먹었다. 주택에 사는 현지 교포들은 물값이 비싸 채소를 키워먹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우리는 월세라 따로 물값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들도 그 작은 텃밭에 물 주는 것을 좋아했다. 해바라기가 피던 해에는 새들이 수시로 놀러 왔다.


  코스트코에서 대용량 고기와 야채, 계란, 과일, 냉동식품들을 사 왔다. 대용량 생고기를 썰어 소분하는 것은 매번 곤혹스러웠지만 아끼고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외식 없이 매끼 음식을 만들고 남편 도시락까지. 그때는 하루 8컵의 쌀로 매일 밥을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셋이라도 어렸는데, 먹는 양은 참 어마어마했다.

      

  # 매일 도서관에 갔다    

 

  미국의 여름방학은 길었다.  하지만 여행은 생각도 못했다. 

   

  남편은 매일 출근했다. 그렇다고 우리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 도서관에 갔다. 운전을 못하는 내가 걸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도서관뿐이었다. 여름방학 동안에 도서관에서는 특별한 행사들이 있었다. 


  볼티모어 사이언스 센터에서 나와 신기한 과학 쇼를 보여 주었다. 로켓이 날고 신기한 과학의 원리들이 재미나게 춤을 추었다. 아이들은 배운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신이 났고 즐거워 보였다. 이날 사이언스 센터의 입장권인지 할인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볼티모어 사이언스 센터까지 활동반경을 넓힐 수 있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어린 왕자에 나왔던 그 보아뱀이 등장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긴 보아 뱀을 직접 보았다.  뱀은 희고 노랬다. 아이들 몇 명을 합친 것보다 굵은 뱀은 수 십 명의 아이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것보다 길었다. 아이들은 무서우면서도 만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뱀은 순한 양처럼 제 살갗을 아이들이 만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느 날은 마술사 같은 사람이 나와서 사람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버블을 만들었다. 보조 꼬마가 무대에 올라가 버블 속에 갇혔다 풀려나곤 했다. 그야말로 마술 같은 쇼들이 연일 펼쳐졌다. 특히 그해, 도서관 행사가 무지무지 좋았다. 

     

  40도가 넘는 여름 날씨였다. 유모차를 밀고 세 살, 다섯 살 된 아이를 걸려서 왕복 1시간을 걸어 다녔어도 신이 났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온몸이 다 젖어 있었고 한참 동안 땀을 닦아야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볼 쇼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났다. 며칠간의 방학 행사가 끝나도 우리는 매일 도서관에 갔다. 마음껏 책을 보고 DVD를 빌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DVD로 거의 다 빌려 봤다. 우리는 디즈니와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두루 섭렵했다. 라이트닝 맥퀸과 맥 그리고 메이터, 우디와 버즈, 히컵과 투슬리스, 니모와 도리, 토토로, 소스케와 포뇨, 마녀 키키 등....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도서관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아니 이웃마을 사람들도 그 도서관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새로운 한국 사람을 만났다.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미국사람과 결혼해 산다는 그녀. 그녀도 딸과 아들이 있어 우리는 더 빨리 가까워졌다.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집을 넘나들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남편이 집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얻었다. 도서관 옆으로.(1. 미국동부 메릴랜드에 입성! 편 참고)   

  

  그 친구가 알려 주었다. 도서관 자체 프로그램이 있는데, 책 세 권만 읽으면 선물이 쏟아진다고.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선물을 하나씩 고르게 했다. 두 권, 세 권. 모두 읽고 나면 또 선물을 주었다. 보위 베이삭스 야구관람권, 티셔츠, 문구류, 부채 그리고 메이저리그 관람권! 우리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선물은 곧 기회를 의미했다.   

   

  보위 베이삭스 경기는 프린스 조지 스테디움에서 열렸다. 마이너 리그 경기라서 야구를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면 원하는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나와 선수들이 뛰는 1루, 2루, 3루 베이스를 밟고 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선수들이 홈에서 기다리고 있다 신나는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투수 마운드에 올라서는 기분을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 


  그리고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팀의 캐릭터들이 걸어 다니고 밤하늘의 불꽃이 터지는 야구장이라니, 꿈의 무대에 서 볼 수 있다니! 아이들은 보고 만지고 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꿈을 맛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찍어 먹은 행복한 맛을 기억하며 아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또 메이저리그 관람권 때문에 메릴랜드 볼티모어 오리올스 팀을 알게 되었다. 메이저리그 경기장 ‘오리올 파크’에 갈 기회를 얻은 것이다. 가격으로 따지자면 9-10달러 정도 되는 좌석이었다. 경기장의 가장 바깥쪽 존에 자리한 티켓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우리가 그곳에 있고 함께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메이저리그 경기를 직관할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공짜 티켓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한 번도 그곳에 가볼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년 책 세 권을 읽었고 티켓을 받았고 그곳에 갔다. 티켓은 늘 넉넉했기 때문에 아파트 지인들을 데리고 함께 갔다. 당시의 추억이 가슴에 그대로 스며들어 큰아들은 지금 NC 야구팬이 되었는지도 모른다.(해군병 703기 입대 편 참고) 응원하는 재미는 한국이 더 크다.

           

  도서관은 복잡한 절차 없이 책 세 권만 읽으면 선물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성인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 같았다. 책 세 권이 무슨 책인지 진짜 읽었는지 묻지 않았다. 본인만은 알 것이다. 믿어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굳이 거짓으로 속일 이유는 없었다. 


  나는 영어가 서툰 외국인이라 한국 책을 읽고 선물을 받았다. 배우 이수미의 에세이가 미국 도서관 외국도서 칸에 있었다. 그때 책을 읽으면서 한글 책에 대한 목마름을 느꼈다. 지금 늦바람처럼 책을 끼고 읽는 것은 그때의 갈증 덕인지도 모르겠다. 이수미의 음식과 아버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가슴 한편에 남았다. 자신의 생일에 스스로 큰 파티를 열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러고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1년을 버텨 나갔다. 


*보위 베이삭스( Bowie Baysox)는 메릴랜드 주 보위에 위치한 마이너 리그 야구팀입니다. 그들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Double-A 계열사이며 동부 리그에서 뛰고 있습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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