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
6월인데, 무지 덥다. 밤 온도가 27도, 28도였다. 밤이 낮의 더위를 밀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남편이랑 산책에 나섰다. 주말드라마가 끝나도록 남편이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전주 천변길을 걷는다. 생각보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 마실 나온 듯 천천히 걷는 사람들 손에 벌써부터 부채가 들려 있고 덥거나 말거나 뛰며 체력을 올리고 만드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뛸 수 있는 에너지가 부럽다.
남부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주말 야시장이 막바지다. 작은 테이블에 끼어 앉아 야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시장 통로마다 가운데에 쭉~ 늘어선 야식수레 사장님들이 보인다. 더운 불 앞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얼굴은 벌겋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손님들에게 사장님은 웃으며 대답한다.
“하나도 안 더워요.”
금, 토(17시-23시 운영) 주말마다 열리는 야시장 매출이 좀 나아진 걸까. 수레마다 음식들이 동났고 상인들의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다이어트를 선언한 나는 치팅데이라며 자장면 반 그릇과 깐풍기를 먹고 나온 터라 아무것도 먹을 수는 없었다. 육전, 쌀국수, 소고기숙주볶음국수, 삼겹살 야채말이, 김밥, 소고기 초밥, 수제 소시지 등 그림의 떡들이 계속 이어진다. 음식 냄새와 열기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당긴다. 침만 꼴깍~
풍남문을 지나 한옥마을로 들어섰다. 전동성당과 경기전이 나온다. 조금 더 걸어가니 버스킹 하는 가수의 노랫소리가 밤의 낭만을 더한다. 가족, 연인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며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고 노래를 따라 한다.
딱 이 자리다! 편의점 맥주 두 개 사고 통 오징어튀김을 하나 사서 벤치에 앉아 남편과 나누어 먹곤 했었다. 아~ 그립다. 요즘 지나가는 곳마다 먹을 것만 눈에 들어온다. 닭꼬치, 십원빵, 시원한 팥빙수가 보이고 커피 향이 나를 따라다닌다. 유혹을 뿌리치고 다이어트만 생각하며 걸었다. 소품 가게, 레이스 달린 원피스 가게, 가방가게,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쇼윈도 안의 상품들을 들여다보고 길거리 꽃들과 인사도 한다. 우리는 계속 걷는다.
“여기가 동문, 저쪽이 북문이 있던 터야. 지금은 풍남문 하나만 남았지만, 서울로 치면 여기가 사대문 안인 거지. 얼마 전 왱*콩나물국밥집에서 드라마를 찍었다는데, 알아?”
평소 말이 없는 남편은 뭔가 내가 모르는 걸 설명해 줄 때 신바람이 나고 수다쟁이가 된다.
“우리 아침 일찍 나와서 이 콩나물국밥도 한번 먹어 보자.”
나는 먹는 것에 만 관심이 갔다. 전주에는 여러 종류의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로서는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 그러자.”
예전에 중국어 선생님이 가고 싶다던 24시 한옥 스파도 보이고 유기 가게, 게장 가게, 옛날 술집과 다방(?)이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붙어있다. 작가들이 모여 술 마시고 커피 마시며 예술을 논하던 곳이라고 남편이 또 아는 척을 한다.
“어? 근데, 올 때마다 사람들이 없어 죽어 가는 거리 같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사람들이 제법 있다.”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그러게.”
“여기, 이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 봐.”
계속 걸었더니 객사로 길이 이어진다. 10년을 살아도 길치인 나는 다른 길로 왔는데, 객사와 연결돼서 초행길인 줄 알았다. 시내 객사와 객리단길 초입부터 젊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정말 웬일이야?
“사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정말 활기차다. 응원 봉 들고 서울로 모이던 사람들이 이제야 안심하고 일상을 되찾은 거지.”
실로 오랜만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만나 이야기하고 웃으며 마시고 있다. 우리도 지난주에 부부 동반 모임을 했던 양 꼬치집이 저기라고 남편이 안내한다. 저번에 같던 수제 맥주 집도 지나갔다. 사람들로 가득 차서 자리가 없어 보였다.
앞으로 더 활기가 돋을 것이다. 사람들의 흥이 살아나고 경기도 살아나고 모두가 춤추며 살면 정말 좋겠다.
남들 먹는 것만 보며 땀으로 흠뻑 젖어 꿉꿉했지만, 기분은 참 좋았다.
옛날보다 너무 많이 일찍 더워졌다.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는 신문, 페트병, 유리병 등 모으기를 했다. 의무였다. 매 학기마다 앞집 고모할머니 댁에서 신문을 빌려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프레온 가스 사용을 줄이기 위해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었다. 너무 더운 날에는 한꺼번에 전력 소모가 많아 종종 정전 사태가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 하다 빨갛고 커다란 고무 목욕통 안에 물을 받아 놓고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며 더위를 쫓았던 기억이 난다.
수원 아파트에 살 때, 에어컨을 사지 않고 버텼다. 첫아기가 태어나 시어머님은 걱정하셨지만, 난 고집을 부렸다.
"8월에 15일만 견디면 괜찮아요. "
결국, 휴가를 에어컨이 있는 시어머님댁으로 가 열흘쯤 살다 왔다. 난 더운 여름이 좋아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열이 많은 아이를 위해 피서를 간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월세에 포함된 에어컨에 길들여 한국에 돌아와서는 에어컨을 살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돈을 아끼려고 건조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옷감이 상할 것도 같았고 건조기에 빨래를 말리는 것이 당연한 문화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주택으로 이사와 건조기를 들여놔야 했다. 베란다가 없어서 빨래를 옥상 먼지 속에서 말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내는 좁고 할 수 없이 건조기를 샀는데, 세상 편하다. 뽀송한 수건도 마음에 들고 교복 다림질도 필요 없다.
그런데, 건조기가 뿜어내는 열기가 매우 뜨겁다.
이제 건조기와 에어컨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 편리함에 길들여졌다. 집집마다 건조기와 에어컨을 돌린다고 생각하니 우리나라가 순식간에 데워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몇 년 사이 계속 기온이 오르고 6월인데 벌써 열대야를 경험한다. 심각하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진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걱정된다.
전주시 새활용 센터에서 수선 수업이 있었다. <수선의 기쁨> 저자, 제타 안의 수업이었다. 제타 안 선생님은 청바지는 청바지로 입는 것을 추구하신다. 리사이클링이 아니라 수선을 통해 본연의 기능을 살려 수명을 늘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작아진 청바지를 늘려 입고 유행지나 안 입는 남편 청바지를 예쁘게 수선해 아내가 입는 식이다. 구멍 난 스니커즈와 운동화는 예쁜 색실로 꿰매서 수선하니 독특하고 멋스럽다. 외할아버지의 오래된 청자켓에 팔을 알록달록 예쁘게 색실로 짜서 조각조각 붙였더니 손자가 입는다. 오래된 아기 때 자전거도 뜨개 작품으로 커버했다. 버리지 못하는 추억의 물건들을 예술로 승화시켜 간직하고 계셨다. 이것은 내게 신세계고 매직이었다.
근데 좀 화려하다. 아니 많이 화려하다.
“선생님 진짜 입고 다니시는 거예요?”
“그럼요~ 바꿔 입고 와서 보여 줄게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시원시원 경쾌하다.
색동저고리 같이 화려한 날개가 달린 청바지를 입고 왔다 갔다 워킹을 하신다. 무난한 검정 티셔츠에 화려한 바지를 매치하니 잘 어울리고 튀지 않고 예뻤다. 오히려 여러 가지 색깔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궁상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신의 한 수는 제타 안 선생님이 사용하는 실이다! 뜨개실을 만들고 버려지는 자투리 실, 공장에서 옷 만들고 남은 엉킨 실들을 받아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남고 버려지는 실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걸 폐기하는 대도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 실들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환경을 위하는 길이었다. 울 100% 털실은 썩는다.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작품과 거기에 깃든 정신, 모두가 예술이다~
우리는 두 번의 수업을 통해 밋밋한 가방이나 옷에 주머니나 장식을 짜서 붙이는 작업을 배웠다. 두께와 용도가 다른 각종 실을 푸는 것부터, 색깔을 섞거나 매치시키는 것, 여러 가지 방법과 아이디어를 가르쳐 주셨다.
겉 뜨기와 안뜨기, 두 코 고무뜨기, 메리야스 뜨기를 배웠다. 다양한 방법으로 뜨개질을 해 청바지를 늘리고 싶은 곳에 또는 장식하고 싶은 곳에 덧 꿰맨다.
실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창작 예술을 하는 제타 안에게 공짜로 제공한단다. 제타 안은 우리 보고 동아리처럼 모여 계속 작업을 이어간다면 그 실들을 공급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버려지는 실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청바지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일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인조가죽 부분이 낡아 떨어지는 애착 배낭을 버리려다 수선하기로 했다. 인조가죽 부분을 과감히 뜯어내고 보라색 색실로 감침질을 했다. 가방 천에 굵은 실과 바늘을 꽂잖니 쉽지 않았다. 고르게 되지도 않았다.
"삐뚤빼뚤 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예술하는 중입니다~"
제타 안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인조가죽 뜯기가 어려운 부분은 청바지를 잘라 덧댔다. 지퍼 손잡이는 청바지 벨트 고리를 잘라 교체해 볼까? 아이디어가 막 생긴다. 아직 완성은 못했지만, 그런대로 가방을 버리지 않고 한동안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중학생 때, 큰아들이 입던 청바지가 지금 내게 꼭 맞는다. 아주 멀쩡하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 유행이 지나 집에서 내가 입고 돌아다녔는데, 이번 수업에서 통을 넓히기로 했다.
청 반바지 옆을 싹둑싹둑 자르고 그 사이를 뜨개실로 짜서 꿰맸다. 스키니 청반바지가 낙낙한 통반바지로 변신했다. 파스텔 톤 물감으로 덧 입힌 것 같다. 마음에 든다.
저번 수업(12화.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서)에서는 그래도 못 입는 청바지는 해체해서 모자나 신발, 가방 등을 만들 수 있다. 유용했고 흥미로웠다.
이번 수업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밌다고 시작한 일인데, 토요일 하루가 꼬박 걸렸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실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작정 버리기보다 다시 사용하고 다시 입을 수 있다는 수선의 힘을 배운 것 같다.
물이 순환하듯 지구의 열도 순환한다. 쓰는 만큼 편리한 만큼 다시 돌아온다.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