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데렐라와 산다
나는 신데렐라와 산다.
일요일 저녁, 남편은 밤 산책을 하고 왔다. 나는 드라마를 놓칠 수 없다고 따라가지 않았다. 난 해가 쨍쨍 비추는 낮 산책을 좋아한다. 일요일에도 일하고 온 남편은 강요하지 않고 혼자 다녀왔다. 둘이 함께 소파에 앉아 다정하게 TV를 보고 있다.
“몇 시야?”
“12시 15분 전이네요. 우리 신데렐라는 자러 갈 시간이지요.”
TV 프로그램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내일을 위해 잠자러 들어가는 것이다. 남편은 누워서 잠깐 폰을 들여다본다. 내일 스케줄을 점검하고 5분 내로 잠에 빠져든다.
난 그게 안 된다. 야행성인 나는 밤 10시부터 말똥말똥해져서 밤새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겠다는 계획이지만,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감동하고 뭉클했다가 찡하다 못해 눈물 찔끔 닦아내면서 감탄만 연발하고 만다.
게다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숏츠(shorts)를 보기 시작한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숏츠를 위로 넘기면 끝도 없이 영상이 이어진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어떻게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나오는지, 알고리즘의 파워가 강하게 느껴진다. 동물구조 영상, 동물과 사람과의 교감 영상, 뭔가를 키우고 가꾸는 영상, 색다른 요리 메뉴나 비법 등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꽉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정말 미치겠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새벽 2시가 넘었다. 영상의 노예가 된 느낌이고 후회가 밀려든다. 아이들에게 유튜브 본다고 뭐라 할 자격도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무기력해질 것만 같다.
여전히 말똥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글을 쓰기에는 너무 늦었다. 7시에는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을 깨워야 하기 때문이다. 핑계 같지만, 큰아들이 고등학생 때 스카에 갔다가 2시쯤 들어왔다. 아들 들어오는 걸 확인해야 잠이 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들 셋을 재우고 나만의 자유 시간은 한밤중뿐이었다. (미국에서) 영어 공부도 하고 한국 드라마도 보면서 혼자 향수를 달랬다.
새벽 2시가 훨씬 넘어 막내가 들어왔다.
“낮에 공부하지 그러냐. 내내 놀다가 왜 밤에 스카를 가니? 내일 학교도 가야 하는데. 얼른 자~”
후회의 화살이 아들에게로 갔다.
“먼저 자! 친구 엄마들은 다 자고 있다는데, 엄마는 왜 그래.”
“아들이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먼저 자.”
불안이 많은 나는 어쩔 수 없다. 큰아들이 휴대폰은 꺼 놓고 새벽 3시 30분이 넘어도 들어오지 않아 스카로 달려간 적도 있다. 스카 입구 CCTV에서 아들 모습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막내도 들어왔으니, 이제 나도 잠자리에 든다. 베개만 대면 잠드는 남편이 옆에서 쿨쿨 자고 있다. 부럽다. 나는 쉽게 잠이 들지 않아 유튜브 영상을 다시 보거나 책 읽어주는 소리나 음악을 들으며 겨우겨우 잠이 드는 편이다. 매번 자는 것이 괴롭다.
답은 뻔하다. 낮에 일이 없고 늦잠과 낮잠을 잤으니 밤늦도록 잠이 올리 없다. 올빼미가 친구 하자고 하겠다.
선배 언니들이 10시에서 2시 사이 자는 것이 가장 보약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난 그 아까운 보약을 모두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아까웠다.
(낮에는 뭐 하고 밤에 공부하느냐는 아들에게 했던 잔소리는 내가 들어야 할 소리 같다.ㅜㅜ)
그래서 결심했다. 커피를 끊기로! 느닷없이, 갑자기! 단순하고 급한 성격의 나는 밤에 잠이라도 잘 자보자는 소망으로 시작한 것이다. 하루 한두 잔 마시는 원두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제일 먼저 두통이 찾아왔다. 첫날은 꼬박 참다가 결국 타이레놀을 이틀 먹었다. 좀 잦아드나 싶을 때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끙끙 앓았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원래도 많이 잤지만, 자고 또 자도 아프기까지 하니 속수무책이었다. 커피는 피곤한 몸과 마음을 잊고 집중하고 일하게 만드는 묘약인 듯하다. 매일 마시면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에 머리를 맑게 하는 한방이 커피에게는 있다. 그 쓰고 개운한 산미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닷새쯤 지나고 나서야 괜찮아졌다. 여전히 비몽사몽이지만, 할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으면 참을 만했다. 식사하고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 대신 차를 마셨다. 체코 꽃차, 재스민 차, 캐모마일, 얼 그레이 홍차, 콤부차, 작두콩차, 페퍼민트 등. 아차차, 홍차에는 카페인이 있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움직여야 한다. 모임이나 약속을 만들고 도서관이나 산책, 운동 등. 계획이 필요했다. 할 일이 있어야 했다.
반가운 모임이 있었다. 막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교장선생님과 학부모들이 모여 책을 읽었다. 2년 정도 참여했는데, 졸업하고도 가끔 학부모들을 만난다. 재학생 엄마들은 여전히 학교에서 책 모임을 한단다. 국어 선생님의 특기를 살려 교장선생님이 책 모임을 이끌고 애로 사항도 들어주신다.
“언니 커피는 왜 끊었어요?”
“어, 그냥 잠이 안 와서….”
그 물음에 우물쭈물했다. 속이 쓰린 것도 아니고 하루 한 잔은 괜찮을 텐데,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에서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메리카노가 가장 저렴하고 깔끔하고 익숙해서 좋은데 말이다. 옆에 있는 동생이 상하 아이스크림이 맛있단다. 나도 그걸 시켰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맛이 꽤 마음에 들었다. 커피 아닌 다른 메뉴를 하나씩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남편과 주말에 국밥집에 갔다. 믹스커피 자판기가 보인다. 공짜다. 늘 한잔씩 먹게 되는데 꾹 참았다. 집에서 텀블러에 담아 온 허브차를 마셨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팥빙수를 맛보았고 수원 일월수목원에서는 혼자 데이지콘 어니스트 밀크(아이스크림)를 먹었다.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비쌌다. 커피 향이 달려드는 카페에 앉으면 커피가 당겨 죽겠다. 차차 익숙해지겠지. 체코로 떠나는 지인에게는 작은 선물을 주고 요거트 스무디를 얻어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집에서 가족들에게 딸기 요거트스무디를 만들어 주었다. 다양한 메뉴를 먹어보니 눈도 즐겁고 입도 즐겁다. 아메리카노만 알던 내가 새로운 경험 중이다.
얼마 전에 줌바를 하러 가서 회원님들께 물었다.
“줌바하고 살이 빠졌나요?”
“6Kg 정도 빠졌어요.”
“와~ 정말요? 그러고 보니 얼굴이 핼쑥하고 많이 슬림해졌네요. 저는 소화가 너무 잘 돼서 오히려 살이 쪘어요. 5Kg 정도.”
“저는 운동 오기 전에 간식 살짝 먹고 운동하고는 안 먹어요.”
“아~ 식이요법을 같이 해야 하는 거죠.”
알면서도 잘 안 되는 부분이었다. 매번 뒷모습만 보던 그 멤버는 나보다 1년이나 늦게 왔는데,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니 난 뭐 했나 싶었다. 물론 다이어트가 목적은 아니었으나 동작이 익숙해지니 나도 욕심이 생겼다.
그날부터다. 난 또 선언했다.
“나 6시 이전에 저녁을 먹고 이후로는 아무것도 안 먹을래! 아침과 점심은 브런치로 한 번에 때우고.”
“오호~ 좋네~”
“근데 시원한 맥주는 한 번씩 마시고 싶은데. 아이들 픽업이 없는 날에는 마실 수 있는데. 낮술을 마실 수도 없고.”
남편은 못 들은 척한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니 은근히 좋은가 보다.
사실 요즘 임신 때 찍은 최고 몸무게에 다다랐다. 배가 나오고 얼굴까지 살이 빵빵하게 올라 내 얼굴이 아닌 것 같아 사진도 찍기 싫었다. 평생 한 번도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는데, 생리 양이 줄고 탄수화물이 당기고 움직임이 줄어든 것이 큰 문제였다.
<와! 진짜? 세상에 이런 일이>를 봤다. 70-80세가량의 몸짱 어르신들이 나왔다. 매일 자신의 건강을 위해 근력 운동을 하시는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 연세에 그 오랜 세월 동안…. 곧이어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결심했다! 나도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매일 하겠다고!
너무 즉흥적인 결심이다. 그래도 말 나온 김에 뱉어놓고 보기로 했다. 세상은 더 좋아지는데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아이들이 커서 손주들 낳는 걸 보고 싶다. 나는 건강한 할머니가 되어 육아를 돕고 싶다. 너무 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품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선언을 한다면 나도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1. 커피를 끊는다. (내게 주는 선물 - 한 달 동안 잘 지켰을 때, 다음 달에 커피 딱 한 잔 마실 수 있다.)
2. 6시 이후로 음식 먹지 않기! (주말 토요일 하루는 예외로 한다.)
3. 주중 하루에 윗몸일으키기 100개, 스쿼트 100개를 실시한다. 알람을 맞춰놓고 꾸준히 한다.(주말은 쉰다)
'영어공부를 한다'를 넣고 싶지만, 이미 실패다. 듀오링고(영어공부 앱)의 공부하라는 경고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온다. 세 가지 약속은 너무 무리인가? 아니다! 나를 한 번은 쪼여보고 싶다. 뭔가를 해내고 싶다.
올 12월까지! 나를 믿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