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지금 그대로의 너도>
아무것도 아닌 문자 실수로 부부싸움의 뒤끝은 꽤 길었다. 올해 선물 받기는 틀렸구나 싶었을 때, 문자가 울렸다. 백화점 앱에 적립 문자와 영수증이 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얼리 매장에서 남편이 무언가를 샀다. 목걸이라고 생각했다. 그 가격에 목걸이는 택도 없다는 걸 몰랐다. 그날 밤 12시가 넘어 들어오더니, 남편이 민트색 작은 종이가방을 무미건조하게 내민다. 그리고 씻으러 들어가 버렸다. “오다가 주웠어.” 로맨틱한 멘트가 아니라 할 수 없이 “너나 가져.”라고 말하는 몸짓이었다.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치!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으니, 마침표를 찍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 대기 중일지도 몰랐다.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를지도.
14K 볼 귀걸이였다. 내가 사려고 찜해둔 것이기는 했으나, 난 18K를 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상태였다. 뭐야? 이걸 이 가격에 샀다고?
“비쌀 텐데 얼마야?”
알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뚱한 질문과 무표정을 주고받았다. (아차! 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구나.) 잠자리에 누웠는데, 고민이 줄줄이 들러붙었다.
‘그냥 못 이기는 척 받을까? 내 맘도 모르면서 거금을 들여 자기 마음대로 사 오다니…. 난 목걸이를 받고 싶었는데…, 18K 볼 귀걸이를 사고 싶은데…, 인터넷에서 반값인데…. 이건 사이즈도 작고 비싸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이 안절부절못했다.
“나 이거 바꿔도 돼요?”
존댓말이 튀어나온다.
“그래, 카드 두고 갈게. 맘에 드는 걸로 바꿔.”
남편이 상처받을까 고민이 길었는데, 대답은 짧고 쿨했다.
“사랑하는 막내딸 생일 축하해. 행복하게 잘 지내. 사랑해.”
아침에 제일 먼저 엄마에게 문자와 음식 사진이 왔다. 형제들의 축하 문자가 줄줄이 이어졌다.
방 두 칸짜리 단독주택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다. 생일날 아침, 눈을 뜨면 내가 자고 있던 안방 윗목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밤사이 요정이라도 왔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었나. 신기한 일이었다.
시루떡에 나물 세 가지, 그리고 찰밥과 미역국, 불고기와 잡채 등이 올랐다. 이건 누구의 상이냐고 물으면 삼신할머니 상이라고 했다. 그저 감사드리고 무탈하게 우리 아이들 지켜달라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었다. 40이 넘어서야 엄마의 귀한 정성을 알아차렸다. 달짝지근한 팥고물이 켜켜이 쌓아 올려진 시루떡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새벽 몇 시에 일어나 엄마는 그 상을 차렸을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보인다.
엄마는 여섯 식구 생일날 아침마다 이렇게 상을 차렸다. 든든한 생일상을 받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든든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당당함이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엄마의 밥상, 생일상에서 나왔다 보다.
하지만 어린 나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생일날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 한번 하지 못한 것만 아쉬웠다.
늘 친구 생일파티에 가서 우아한 식탁에 앉아 친구의 생일 케이크와 바나나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 집에는 없는 소파와 어항, 그 집 아빠가 만들었다는 노란 카스텔라와 만능 전자레인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니 친구를 한 번도 집에 데려간 적이 없었다.
미국 도서관에서 한국 책이 그리울 때 고(故) 김수미 선생님의 오래된 에세이를 읽었다. 김수미 선생님은 자기 생일날 파티를 열어 지인들에게 밥을 해 먹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바리바리 음식을 싸 주고 행복해했다. 그 마음이 또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내 생일날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열어 보겠다는 오랜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음식 장만 등 여러 가지 준비에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제일 문제는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못 한다는 것이다.
받고 싶기만 한 자기 생일에 파티를 열고 사람들을 초대해 자축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그 떳떳함과 당당함이 부러웠다. 하지만, 거기에는 음식을 손수 장만해야 하는 자기희생이 따른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미국에서는 위, 아랫집 사는 지인들을 남편 생일이나 아이들 생일 때마다 불러 모았지만, 내 생일 때는 그러지 못했다. 내심 남편이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기대하지 않고 올해 내 미역국은 내가 끓였다.
미역국을 보고도 아들들은 엄마 생일이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 남편도 전혀 입을 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음력생일이라 친정의 가풍을 원망해야 하나. 남편도 내 생일을 기억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갖은 방법으로 티를 내느라 맘고생을 했다. 아이들도 시간이 걸릴 테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백화점으로 갔다.
원래 환불도 잘 못한다. 남편을 시켰지만, 그날은 내가 갔다. 웬만하면 그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걸로 바꿀 생각이었다. 내가 원하는 목걸이는 200만 원대였고 적당한 선의 목걸이도 선물값의 배는 지불해야 할 판이었다. 목걸이는 욕심이었다. (구매를 부추기는) 매장 직원의 눈치를 보며 환불의 기회를 엿보다 기분 나쁘지 않게 환불에 성공했다. 더 고민해 보겠다고 하고 나왔다. 막내 학원 픽업 시간이 다가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목걸이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층으로 내려갔다. 어느 해 남편이 60만 원짜리 귀걸이를 겁도 없이 사 온 그 매장이 보였다(그때도 더 싼 걸로 바꿨다. 난 너무 싼 여자인가 보다. 눈 딱 감고 비싼 걸 척척 받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세일은 거의 안 하고 18K만 취급하는 매장이었다. 번쩍거리는 목걸이를 잠깐 들여다보기로 했다. 역시 가격이 사악하다. 그런데 웬 떡인가 싶은 게, 몇 가지는 30% 세일이란다.
한번 착용이나 해보자 했다. 이것저것 들여다보다 꽃무늬 목걸이를 착용해 본다. 요즘 줄은 너무 얇다고 불평을 해본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펜던트만 살 수도 있어요?”
“일체형이 아닌 건 펜던트만 살 수 있어요.”
30% 세일이어도 비싸지만 펜던트만 사면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살 수 있겠다 싶었다.(남편 성의를 생각해 어떻게라도 그 가격에 맞추고 싶었다.) 내 생일이라고 이벤트를 하나 착각이 들었다.
“이거요. 이거.”
큰 꽃과 작은 꽃 모양을 차례로 내 목걸이 줄에 매달아 보았다. 대학 졸업선물로 사준 엄마의 선물 목걸이 줄에 꼭 맞는다. 큰 것은 데일리로 하기에 부담스러우나 깜찍하게 작은 꽃은 딱이다! 뒤쪽 마무리도 깔끔하고 매끄러운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가격까지도. 됐다. 이거다 싶었다! 예약을 걸어 두고 나왔다.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라 기다림도 설렘처럼 느껴졌다.
“막내,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지나가는 말로 약간의 볼멘소리를 하고 막내를 학원에 내려주고 도서관으로 갔다. 브런치 작가의 책을 신청했는데,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카운터에서 책을 받아 들었다. 동시에 띵! 휴대폰 알림음이 났다. 자리에 앉아 분홍색 꽃 같은 책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지금 그대로의 너도>라고 작가님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알림의 정체는 내가 신청한 책의 작가님이 내 브런치에 댓글을 달고 구독을 눌러준 것이었다. 책을 받아 든 그 순간에 작가님은 내 브런치에 방문한 것이다. 소름이 돋는다고 댓글을 썼더니 다시 댓글이 달렸다. 통했다. 진짜 선물을 받았다.
막내를 기다리는 세 시간 동안 단숨에 읽었다. 훌쩍훌쩍 눈물을 찍어내고 잠깐씩 멈추며 읽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과 용기, 힘이 솟고 온몸으로 퍼졌다.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며 책은 도서관에 단정하게 반납했다.
안개별 작가님은 딸의 물음에 답하듯 꿈을 향해 노력했구나. 마침내 이루었구나. 정말 대단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내 생일이 뭐라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아들들에게 심통 부리지 않은 것에 스스로 뿌듯했다. 내 생일에 기분만 나빠지지 뭐 좋을 게 있을까. 책은 나를 성장시킨다.
그런데 이상하다. 책을 읽고 난 그때 또 문자가 온다. 해군에 있는 큰아들이 케이크 쿠폰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감동의 물결이 가슴속으로 달려든다.
“나도 우리 아들 사랑해. 고마워~”
즐거운 마음으로 막내를 픽업하러 학원 앞으로 갔다. 몇 년째 다니던 그 길에 왕십리 곱창가게가 그제야 보였다. 조금 일찍 온다는 남편을 위해 음식을 포장해 막내와 집으로 갔다.
그런데 식탁에 화려한 꽃 한 다발이 놓여 있다. 무심하게 멀찍이 남편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남편에게 남은 감정의 찌꺼기가 한 번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건 또 뭐야? 어젯밤에 선물 줬잖아!”
“내가 산 거 아닌데?”
“그럼, 누구야?”
막내는 나랑 같이 왔고 고3 아들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는데….
메모를 보니 둘째가 분명하다! 학교랑 집이 가까워 꽃만 사 잠깐 들렀을 텐데, 내가 집에 없었던 거다. 꽃이 얼마나 예쁜지 모든 서운했던 마음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고 깨끗해졌다.
“너무 예쁘당~”
한 번도 마셔 본 적 없다고 사둔 사케를 꺼냈다. 연애 시절 추억이 깃든 왕십리 곱창볶음과 사케를 마시며 우리 부부는 다시 눈을 맞추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 막내도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에 맛을 본다.
꽃이 다했다. 낭만적인 둘째는 엄마의 마음 한가운데를 제대로 저격했다. 너무 비싼 꽃을 샀다고 살짝 나무랐지만, 아들의 선물은 며칠을 두고두고 날 행복하게 했다. 다음날 큰아들이 사준 케이크도 즐거운 마음으로 내 손으로 사 왔다. 기어이 축하의 초를 불어야 한다고. 일 년에 한 번 나도 하고 싶은대로 좀 해보자! 엄마가 내게 준 생일의 권리를 맘껏 누렸다.
“우리 집에 가서 놀래?”
이 말을 하지 못한 건 나였다.
친구에게 만나자는 말도 환불하고 싶다는 말도 당당하게 못 하는 숙맥은 나였다. 거절을 두려워하는 내가 보였다. 어릴 때는, 젊을 때는 더 많이 소심했다. 자라면서 나이가 들면서 남편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많이 좋아진 거다.
내가 거절해도 괜찮고 거절을 당해도 괜찮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소심을 벗어던지고 작은 용기를 내는 중이다. 이제야 알았다. 살면서 나는 성장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보인다.
언젠가 나도 내 생일에 사람들을 초대할 그날을 기대해 본다. 안개별 작가님 책이 내게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 지금 그대로의 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