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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모랑 살고 있었다

공부 빼기 감사 더하기

by 꼬꼬 용미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모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딱히 정답을 주지 않고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사람들은 모모를 찾는다.


“저는 모모랑 살고 있어요.”

줌으로 하는 독서 동아리 모임에서 나는 자랑하듯 말했다.


“남편과 저는 함께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두 시간, 세 시간 동안 저만 이야기해요.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말하고 남편은 그저 들어주는 것 같아요.”

우리 둘, 고목나무와 그 주변에서 재잘대는 를 연상해도 좋다.


“진짜요? 용미 님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요?”

오래된 부부 사이에 매일 보는 얼굴인데,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날 있었던 일이나 친구들 만난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처리해야 할 일 …. 할 말은 얼마든지 있죠.”

남편 반응은 단답형의 짧은 대답이 전부다.


“와~ 부럽네요.”

잠깐 우쭐했으나, 이상했다.


요새 잘 들어주던 남편이 대화 도중 자꾸 딴짓을 한다. 전주 천변을 걷다가,

“저거 봐! 수달이야.”

물속에 수달이 머리만 빼꼼 나온 것 좀 보라고 손짓한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듣는 것 같고 갸우뚱갸우뚱 의문이 들던 차였다.


원래 남편은 딱히 수긍도 않지만, 반발도 하지 않는다. 정답이나 해결책을 내지 않는 것이 어쩜 모모를 똑 닮았다. 이야기하다 보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사람처럼 결론도 나 혼자 내린다. 감상의 말이나 느낌 모두 내 입에서 나온다.


독서 모임을 하고 난 뒤부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주말에 저녁을 먹고 난 후, 한 번은 내가 입을 닫아봤다. 조용하다. 거실에서 정적이 흐른다. 틀어놓은 TV소리만 들리고 남편은 이따금씩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TV에 시선을 줄 뿐이다. 며칠 더 해봐도 똑같다.


‘그래. 나는 이런 정적이 싫어서 무슨 이야기든 했던 거구나.’


"당신은 나한테 할 말 없어? 거실에 우리 둘밖에 없는데 말 한마디 않고 각자 딴짓하면 싸운 것 같잖아?"

느닷없는 질문에도 "아니." 한 마디뿐이다.


남편은 나한테 할 이야기나 궁금한 게 하나도 없구나! 관심과 사랑이 없는 건가? 20대, 30대 직원들이랑 어울리더니 신세대가 된 건가. 내가 잘못되었나. 내가 꼰대인가. 여러 가지 추측과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동시에 괜한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아님, 뭐야? 주중 귀가 시간은 빨라야 9시, 10시 거의 11시, 12시다. 1시를 넘어 들어오는 날도 많다. 쉬고 싶었던 걸까?


도깨비 같은 생각들이 나의 일상에 어깃장을 놨다. 별일도 아닌 일에 투닥투닥 말다툼이 되고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다. 남편은 입을 굳게 닫아 버렸다. 한 마디도 안 한다. 남편은 극단적 회피형! 속이 터진다.


남편은 절대 먼저 말을 걸지도 않는다. 난 몇 날 며칠 상상의 나래를 펴며 맘고생을 하다 못 견디고 결국 먼저 말을 걸고 화해를 청할 것이다. 이번에는 나도 더 오래 버텨 보았다. 나까지 남편처럼 입을 닫자, 집안 분위기는 싸해지고 살얼음판이 길어진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는다. 나는 짜증이 늘고 아이들에게 괜한 트집을 잡았다. 아이들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다 알 것이다.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2주.. 3주... 미안하다 한마디면 될 텐테.... 야속한 시간이 흘러간다.


어릴 때 엄마가 지어준 내 별명은 촉새다. 난 새가 맞나 보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하여 집안 분위기를 위하여 난 다시 재잘대는 새가 되기로 했다. 결국, 말을 걸고 화해를 신청하고 말았다. 새는 고목을 이길 수 없다.


남편과 둘이 있을 때 나 혼자 말하지만, 듣는 대상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거였다. 생각하며 말하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 보면 더 나은 답이 스스로 떠오른다. 모모 남편의 역할은 꽤 컸다고 새삼 느꼈다. 나라면 댓 구도 없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남의 말을 들어줄 수 있었을까? 귀에서 피가 날지도 모르는 그 어려운 일을 남편이 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못 참았을 거다. 그게 우리 남편의 역할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제발, 남편이 입을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일로)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술 마시지 말고 말로 해 주면 정말 좋겠다. 나도 귀를 열고 남편의 목소리를 경청해 보기로 한다.




문득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무언가를 느꼈다. 찜찜하고 뭔지 모를 불안과 한심하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었다. 기분 탓일까? 나이 탓일까? 무력하고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몇 달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죄책감마저 들었다.


“가위질 소리, 잡담, 비누 거품과 함께 내 인생도 흘러가는구나. 대체 이제까지 살면서 이룬 게 뭐지? 내가 죽고 나면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예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중략)....

그는 일하는 것을 정말 즐거워했고, 자기 솜씨에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중략)...

하지만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일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는 것이다.


모모 P. 78-79 중에서 (비룡소)



모모를 읽은 후에 그 찜찜하고 뭔지 모를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알아 버렸다!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이룬 게 뭐지?”

생각이 글자가 되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발끈했다.


석사 남편과 결혼해 미국 박사를 만들고 아들 셋 낳고 번듯하게(?) 멀쩡하게(?) 키워냈다고!


(박사를 네가 만들었다고? 남편이 공부한 거지. 번듯하게, 멀쩡하게 뒤에 물음표는 뭔데? 확실해?)


자꾸 마음의 소리가 따라온다.


(이걸로는 이력서 한 줄도 채울 수가 없다는 거 알잖아!)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다(진정? 고맙다는 한 마디면 되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반쪽의 꿈을 응원했고 내 주제에 미국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렸나 보다. 당시에는 행복했다. 그것까지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내 편인 줄 알았던 반쪽은 이고 가까이에 있으면서 날 더 외롭게 한다. 품 안에서 이미 탈출한 세 아들은 자라고 성장해서 독립하는 것이 당연한데, 나를 찾지 않음에 섭섭하기만 하다.


"엄마가 뭘 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학입시와 공부 방법에 대해 그리고 아들들의 계획과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단다. 나만큼 너희들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싫어! 안 해!

(바닥인 성적을 내가 회복시켜 줄게. 같이 공부하자 했더니, 온몸으로 거부한다.)


나 혼자 괴롭다. 결국 다시 쌈닭이 되어 버렸다.


“우리 모두랑 다 싸우는데, 엄마가 문제 아니야!”

순하고 점잖은 둘째가 대뜸 소리친다.


바쁜 남편에게 짜증 내고 사춘기 아이들에게 들러붙었다 퇴짜 맞고 스스로 우울하다. 둘째의 말에 뜨끔했다.



“일을 하다 보면 도대체 제대로 된 인생을 누릴 시간이 없어. 제대로 된 인생을 살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거든. 자유로워야 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평생을 철컥거리는 가위질과 쓸데없는 잡담과 비누 거품에 매여 살고 있으니.”

모모 P. 79 중에서 (비룡소)



우울해하는 푸지 씨에게 회색 신사들이 접근한다. 시간을 아껴 저축하라고! 일을 더 빨리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쓸데없는 일들은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앵무새는 내다 버리고 나이 드신 어머니 곁을 돌보는 일은 줄이고 차라리 값싼 양로원으로 보내버리라고. 시간 낭비를 가져오는 잡담, 명상, 노래, 책, 친구를 없애 버리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는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안정을 잃어 갔다.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썼지만 손톱만큼의 자투리 시간도 남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은 수수께끼처럼 그냥 사라져 버렸다. 그의 하루하루는 점점 더 짧아졌다.

모모 P. 94 중에서 (비룡소)



나는 번쩍!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이미 회색 신사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의 삶 속에는 과정이 빠져 있고 결과를 중요시 한 나머지 따뜻한 말 한마디나 격려, 응원이 빠져 있었다. 사교육 없이 더 잘하기를 바랐다. 공부공부! 대놓고 노래하지 않았다고 자부했지만 은근한 압박으로 더 강조하고 차별까지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부부 사이, 모자 사이에 충분한 시간을 통한 믿음을 쌓지 못하고 효율과 결과만 강조하는 일방적인 관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사이 믿음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휩쓸리고 사라져, 서운함만 남았던 거였다. 회색 신사의 존재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알았다. 그것은 내 불안이었다는 것을. 입시 실패로 인한 막연한 두려움, 공부에 대한 공포는 결국 내 문제였다. 내가 금쪽이였다.


아이들은 다르다. 내가 아니다. 잘할 것이라는 믿음. 못해도 괜찮다는 여유. 따뜻한 말 한마디와 포옹, 격려, 응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유머러스하고 쓸데없는 소리로 늘 웃음을 주었던 젊은 날의 남편을 누가 모모로 만들었는가. 늘 진지하고 잡담이나 시간 낭비를 못 견뎌했던 내가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의 시간이 강물처럼 내 마음속으로 흐른다.


지금은 나에게 보상처럼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이다. 이 귀한 시간에 내 문제 때문에 아이들과 멀어지고 불행할 것인가. 내 문제인 공부는 내가 하기로 하자.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공부는 빼기로 한다! 잘할 수 있도록 믿어 주기로 한다. 외벌이 내 남편 모모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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