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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서

청바지 새활용~

by 꼬꼬 용미

막내 친구 엄마에게서 카톡 문자가 왔다. 재봉틀, 바느질, 만들기를 좋아하는 내게 좋은 수업이 있다고 안내를 해준다.

청바지 새활용

룸슈즈&모자 만들기!!

1. 청바지 해체

2. 모자 만들기

3. 룸슈즈 만들기

각 3시간씩, 3일에 걸친 수업. 평소 청바지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잔뜩 호기심이 일었다. 재봉틀이 없어도 언젠가 무엇이라도 만들고 싶어서 작아진 청바지를 모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리 물려 입힐 욕심에 모아둔 것이지만 유행이 지났다고 아이들에게 퇴짜 맞은 질기고 멀쩡한 청바지를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온 집안 대정리와 대청소를 마치고 보관하고 있는 청바지가 대용량 플라스틱 박스 하나를 꽉 채웠다.

서툰 재봉질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줌바 시간하고 겹치는데? 요즘 유일한 운동인데….’

선뜻 답을 보내지 못하고 며칠 고민했다. 수업 당일까지 고민하다 무릎 아픈 것을 핑계 삼아 줌바는 며칠 쉬겠다고 했다. 이미 마음은 청바지 새활용 수업 쪽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었다.

숏츠(Shorts)에서도 청바지를 이용해 가방을 만드는 게 나오면 넋을 놓고 들여다보는 나였다.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재봉틀도 없고 정확한 패턴도 없고 어려워 보였다.

뭐야? 수업 접수가 마감되었다! 너무 아쉬웠다. 기시감이 들었다(11화-나에게 쌈을 싸 주었다 편 참고). 뭐든 한 발작씩 늦다. 빈자리가 두 개나 남았는데 접수 마감이면 가능성이 있다는 거 아닌가? 즉시 전화를 걸어 물었다. 다행히 수업을 취소한 사람도 있으니 바로 오란다. 휴~ 다행이다.

뭐든 닥쳐서 하는 버릇이 있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다. 게으르고 뒤로 미루는 성향이다. 아이들만 다그칠 일이 아닌 것 같다. 누구를 닮았을까 반성해 볼 일이다.....


전주시 새활용센터로 달려갔다.


전주시는 자원 선순환을 위한 새활용, 가치에 소비하는 문화 만들기,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지역 새활용 소재개발과 디자인 역량 강화 등 새활용 사업 기반조성을 추진, 전주 시민 스스로 참여하는 자치적 가치 실현의 공유플랫폼으로서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을 만들어갑니다.

전주시새활용센터다시봄 소개글


다시봄은

‘다시(again)’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하는, 이라는 뜻과 '보다(see 혹은 spring)’에 보다는 뜻과 봄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으로 중의적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봄이라는 로고까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자원을 고쳐 새로이 다시 잘 써보자는 것이다. 리폼한 옷과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만든 작은 소품들이 있고 재사용과 일회용품을 대신할 물건들이 전시, 판매 중이다. 이곳에 입주한 작은 공방과 가게들이 물건들을 만들고 홍보하고 수업까지 열어 새활용을 널리 퍼트리고 있었다. 취지가 너무 좋아서 작년부터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곳이다.



새활용센터에서 구입해 쓰는 물건들.....

접히는 도시락 / 집게


병뚜껑으로 만든 키링 / 스텐 빨대



청바지 새활용 수업이 시작되었다.

싱싱한 생선회를 뜨는 것처럼 버리기 아까운 청바지를 해체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면도날이다. 어릴 때 아빠가 면도기에 넣고 쓰던 그 얇고 날카로운 면도날로 청바지의 한 땀 한 땀을 섬세하게 끊어준다. 바느질하기에 두꺼운 부분들은 따로 잘라두고 주머니와 벨트도 다 뜯어내 용도에 맞게 사용한다. 넓적한 청바지 다리를 펼쳤더니 새 원단이 탄생한다. 색깔도 다양한 청바지는 따로 멋 내지 않아도 원단 자체에서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원하는 색깔의 청바지를 골라 모자 패턴을 그리고 잘라서 하나하나 꿰매면 된다. 바느질 선들이 보이지 않게 안감도 넣는다. 안감은 버려진 와이셔츠나 남방을 이용했다. 내 앞에 있던 밤색 체크무늬 긴 남방은 자르기에 너무 멀쩡하고 새것이었다.

이건 사이즈만 맞으면 누가 입어도 되겠어요.”

내가 입고 한 바퀴 빙~ 돌았다. 나한테는 좀 작다. 요즘은 크롭 스타일의 짧은 겉옷이 유행이라 긴 스타일은 그냥 버려진 것 같았다.

“00님이 맞겠는데요?”

호리호리한 체격의 님에게 옷을 건넸다. 00님이 입어 보더니 함박웃음을 짓는다.


“오호~ 이건 내가 입을게요.”

그 옷은 새 주인을 찾았다. 재활용해서 다른 것으로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대로 새 주인을 만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옷들이 빈티지 샵에서 새 주인을 만나고 서울 동묘시장의 구제시장에서 되살아난다. 흐뭇하면서도 한편 씁쓸했다. 유행과 과잉생산, 그리고 버려지는 옷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난 핑크색 체크 와이셔츠를 잘라 안감을 만들고 겉감에 접착솜을 붙이고 다림질까지 했다. 첫날은 청바지를 해체하고 패턴을 그리고 자르느라 세 시간이 다 갔다.

두 번째 날에는 바느질만 했다. 재봉질을 기대했는데, 손바느질로 한단다. 꽃봉오리 같은 모자를 만들기 위해 꽃잎 여섯 개의 조각을 이어 붙여야 했다. 시접을 맞대고 하나하나 바느질로 이어갔다. 바늘귀가 잘 보이지 않고 바늘에 실을 꿰는 것조차 힘들었다. 돋보기를 쓰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을 뀄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붙여나갔다. 박음질, 반박음질, 홈질, 공그르기.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들이 추억을 우물질로 길어 올렸다.

엄마 옆에서 양말을 꿰맸던 그 시절 말이다. 그때는 바느질도 놀이였다. 바느질로 양말을 기우는 것은 재밌었다. 하지만 좀 크고서는 기운 자국이 친구들에게 들킬까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신발 벗고 앉았던 교회 바닥의 기억이 생생하다. 설교보다 기운 양말을 숨기느라 더 신경을 썼다.(그걸 누가 본다고... 또 보면 어떻다고.... 기운 양말을 신은 친구를 발견하면 더 반가웠으면서.)

손바느질을 하면서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손이 빠른 사람은 모자의 모양이 얼핏 나오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다급해진다. 바느질이 삐뚤거린다. 어찌어찌 다 이어 붙인 겉감과 안감을 겉끼리 맞대고 창구멍만 빼고 꿰매면 된다. 시간이 부족해 강사님이 드르륵 재봉틀로 박아주셨다. 휴~ 시간에 쫓기다 겨우 한숨을 돌렸다. 창구멍으로 뒤집었다. 모자의 겉감이 드러난다. 제법 근사해 보인다.


룸슈즈의 패턴은 해체한 청바지의 엉덩이 부위에 대고 그렸다. 주머니를 떼고 난 그 자리의 색이 진해서 더 예뻤다. 발바닥과 발등 두 개뿐인데도 손이 바쁘다. 여기에도 안감을 넣어야 했다. 안감이 두꺼워 바느질이 어렵다.

9시간 수업을 해도 다 못했다. 우리는 강사님의 배려로 한 번 더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다. 모자 옆에 청바지 해체 때 나온 작은 주머니를 달았다. 그리고 ‘다시봄’ 브랜드 라벨도 붙였다.


청바지를 새활용해서 만든 모자~

핸드메이드가 좋은 줄 안다. 그러나 시간과 사람의 공이 고스란히 얹혀서 소중하고 좋다는 걸 몸소 느꼈던 시간이었다. 새활용센터에는 현수막으로 만든 가방리폼한 옷들이 판매 중이다. 저렴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가치와 시간과 노력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그 한 땀 한 땀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결코 비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거의 12시간 넘게 걸린 것 같다.


내가 만든 모자와 룸슈즈에 바늘땀이 한두 개 튀어 올라, 보인다. 하지만 내 시간이 녹아들어 가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추억처럼 서린 나만의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또 만들고 싶어졌다. 재봉틀 없다고 탓하지 말고 손수 만들면 기쁨은 더 크다.

나도 새활용을 실천하며 아끼고 다시 쓰고 자원의 가치를 높이는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청바지 새활용으로 만든 룸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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