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을 전해 들을 때,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by 이름


말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 전해 듣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가 "K시의 학살"을 소설로 집필하고 나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강 작가의 전작 『소년이 온다』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K시에 대한 소설'이 『소년이 온다』라는 걸 쉽게 짐작할 것이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희생됐던 동호라는 소년과, 동호를 기억하는 또 다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소설이다. 마지막 장에는 작가를 연상시키는 화자가 등장하는데, 소년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된 창작 동기와 그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이 서술된다. K시에 대한 소설을 쓰며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는『작별하지 않는다』의 경하는『소년이 온다』 마지막 장의 작가적 서술자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경하는 한강 작가의 또 다른 분신인 셈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년이 온다』와 비교해 본다면 주제적인 측면에서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사건이라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다. 두 소설은 끔찍한 폭력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드러낸다. 그러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은 앞선 작품과 분명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사건의 당사자들이 (차마 증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고 그 이후로도 후유증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사건과 거리가 먼 외부자가 자료를 통해 사건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다. 제주 4.3을 직접 경험한 정심의 이야기는 아래 세대인 인선에게 전해지고, 그 이야기는 외지인 친구인 경하에게 전해진다. 종적인 차원(시간적으로 한 세대 아래)과 횡적인 차원(사건의 장소인 제주로부터 외지인)에서 중층적으로 거리감을 갖고 있는 경하의 시점에서 제주 4.3 사건이 전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 거리감은 경하에 대한 제주 현지인들의 경계를 통해 거듭 강조된다. 경하는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인선의 집으로 향하며 두 명의 현지인을 만난다. 그중 한 명인 버스 기사는 경하가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방언이 아닌 표준어로 바꿔 말한다. 또 다른 한 명인 노인은 대화를 청하는 경하의 말에 무의미한 답변을 내놓으며 대화를 완곡하게 회피한다. 이때 경하는 노인의 태도에서 정심과 만났던 날을 떠올리기도 한다. 정심은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도 경하에게 깍듯한 표준어로 인사말을 건네며 경계심을 내비쳤었다. 경하를 향한 경계심이 언어적으로 미묘하게 표현될 때마다 경하와 제주 사이의 거리감은 더욱 강해진다.


또한 제주 4.3 사건의 이야기가 수집해 둔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야기가 사건의 당사자인 정심에게서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인 인선에게로 전달될 때도 마찬가지다. 소설에서 사건의 당사자들은 다른 인물에게 본인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발화하지 않는다. 그저 트라우마를 호소할 뿐이다. 인선은 치매를 겪는 정심이 구해달라고 호소하거나 식탁 아래 숨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에 정심이 경험한 끔찍한 폭력을 어렴풋이 상상해 볼 뿐이었다. 이는 정심에 대한 인선의 무지, 다시 말해 정심과 인선 사이의 거리감을 발생시킨다. 인선은 오랫동안 정심을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으로만 생각해 왔다. 인선은 정심이 모아둔 자료를 발견하면서 당시 정심이 경험한 구체적인 사건과 정심이 오랫동안 오빠의 유해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할 뿐이었다.


이러한 구성은 제주 4.3 사건과 그 희생자의 고통을 조심스럽게 재현하고자 하는 태도로 읽힌다. 이해와 공감을 섣부르게 말하기에 앞서 그 사건으로부터의 거리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누군가의 고통과 그 고통을 전해 듣는 인물 사이의 틈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 간극은 독자에게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외부자로서의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순환하는 눈송이,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겹치다

제주 4.3 사건과 그 희생자의 고통에 접근하는 경하의 여정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경하는 스스로의 고통만으로도 버거운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경하는 K시의 학살을 소설로 쓴 이후로 K시에서 행해졌던 참혹하고 잔인한 폭력을 본인이 그대로 겪는 악몽을 반복해서 꾼다. 또 악몽은 현실과 뒤섞이기까지 해, 거리를 걸으면서 본인이 그런 폭력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잠기기도 한다. 가족은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 그런 경하를 떠났고, 경하는 끔찍한 두통과 위경련에도 일상적으로 시달리게 된다.


심리적 불안, 관계의 단절, 신체적 증상 등 수많은 고통 속에서 경하는 유서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로 생을 겨우 이어간다. 그렇게 세상과의 작별을 위해 살아가는 경하의 삶에 인선이 난데없이 나타난다. 인선은 경하를 병원으로 부르고 명령에 가까운 부탁을 한다. 집밖으로 나와 그 부탁을 수행하는 과정은 경하에게 새로운 고통을 부여한다. 인선은 경하에게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본인의 상처를 보게 만들었고, 제주 중산간 집으로 가 아마를 살려 달라는 부탁을 해 산속에서 눈보라를 뚫는 고통을 감수하게 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고통만으로도 버거웠기 때문일까, 경하는 새롭게 주어지는 고통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잘린 손가락의 신경을 회복하려고 삼 분에 한 번씩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는 인선을 보며, 본인이 인선의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또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눈보라를 뚫고 중산간을 향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다시 돌아가야 할지 망설인다. 실제로 경하는 인선의 집을 가다가 건천으로 굴러 떨어진 후, 버스에서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인선의 집을 향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하는 그곳에서 타인의 고통과 스스로의 고통을 겹쳐 보면서 태도가 변화한다. 경하는 통증보다 끔찍한 추위 속에서 얼굴에 쌓인 눈을 닦아내며, 인선에게 전해 들은 정심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정심은 가족을 찾기 위해 운동장에 쌓인 수많은 시체들 사이를 누비며, 살얼음 낀 얼굴 위에 쌓인 눈을 일일이 닦아내며 확인했었다. 경하는 물이 사라지지 않고 순환한다면 자신의 얼굴 위에 앉았던 눈송이가 그때 시체의 얼굴을 덮었던 눈송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눈송이를 통해 스스로의 고통과 희생자들의 고통을 겹쳐 보게 된 직후, 경하는 새를 살려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느끼며 다시 일어나 인선의 집을 향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1부에 분량의 절반 가량을 할애하고 있다. 인선의 집에서 제주 4.3 사건을 본격적으로 전해 듣는 과정만큼이나 경하가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이 서사 내에서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1부를 경하가 제주 4.3 사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청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이해해 본다면, 경하가 건천에서 희생자의 죽음을 재연한 것은 그 구체적인 통과 의례인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겹쳐 보면서 그게 단순히 타인의 고통이기만 할 수 없을 때, 그런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비로소 마치게 된다.



혼의 위치에 서서 혼들과 함께 듣는 이야기

그렇게 도착한 인선의 집은 삶과 죽음이 모호하게 혼재되어 있다. 끝내 살리지 못한 아마를 땅에 묻은 다음 날, 잠에서 깬 경하는 새장에 돌아와 있는 아마를 마주한다. 곧이어 병원에 있을 인선과도 마주하는데, 인선의 손은 봉합의 흔적 없이 멀쩡하기까지 하다. 인선과 대화하는 도중에는 한참 전에 죽었던 아미가 육체 없이 그림자만으로 돌아온다. 어떻게 죽은 아마와 아미가 돌아올 수 있는 것인지, 위급한 상황에 놓인 인선이 혼으로 찾아온 것인지, 혹은 반대로 죽은 경하가 망자의 환상을 경험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불분명한 채로 인선과 경하의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이런 모호함은 경하가 산 자의 관점과 죽은 자의 관점을 동시에 취할 수 있도록 만든다. 마치 양안시가 아니기 때문에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가는 아마처럼 말이다. 한쪽 눈으로는 벽의 그림자를, 다른 쪽 눈으로는 창밖의 나무를 보고 있을 아마를 보며, 경하는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알고 싶어 하며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 같"을까 궁금해한다. 경하는 인선의 집에서 꿈과 생시, 환상과 현실, 죽음과 삶 사이의 경계에 놓임으로써 죽은 자의 관점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이때 "누군가 더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인선의 말에서 더 많은 혼들이 그들과 함께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경하는 본인이 혼일지도 모르는 상태, 다시 말해 혼에 준하는 상태에서 또 다른 혼들과 함께 인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앞서 타인의 고통과 스스로의 고통을 겹쳐 보는 게 이야기를 듣기 위한 준비 과정에 해당했다면, 죽은 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최대한 그들의 관점에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타인의 고통을 들을 때의 윤리일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

경하는 유서를 완성해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과정에서 경하는 여러 존재들과 작별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을 또 다른 학살을 자세히 이야기 듣게 된다. 그러나 경하는 희생자의 유골 사진을 외면하고 싶어 하면서도 끝내는 유심히 들여다보는 인물이다. 작은 새를 살리기 위해 눈보라 속에서 산을 헤맸듯이, 일상을 무너트리는 고통 속에서도 결국 K시의 학살을 소설로 써냈듯이 말이다. 그 과정 끝에 경하는 제주에서 만난 인선의 혼이 사라지지 않기를, 병실에 있을 인선이 죽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누군가와 작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심도 작별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은 오빠의 생사 여부를 차마 확신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을 정리한 이후로도 오빠가 죽은 장소, 오빠의 유해를 찾아다녔다. 오빠의 유해 없이 작별 인사는 차마 시작될 수 없었고, 고통 속에서 오빠와의 작별은 계속 지연됐다. 운동장에 쌓인 시체들 사이에서 가족의 얼굴을 찾기 위해 언 손으로 눈을 쓸어내린 나날이 계속 반복된 셈이다. 이들에게 제주 4.3 사건은 종결된 역사적 사건이 아닌 지속 중인 비극이기에, 희생자와의 작별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누군가와 작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은 앞서 살펴봤던 삶과 죽음이 혼재되어 있는 환상성을 통해 형상화된다. 『작별하지 않는다 코멘터리 북』에 실린 인터뷰에서 한강은 2부의 환상성에 대해 "같은 장소에 있지 않은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염려하고 온 힘으로 기도하는 마음 자체에 초자연성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정심이 가출한 인선의 환상을 거실에서 봤던 것도 그런 마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경하가 인선과 아마를 보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인선이 병실에서 위급한 상황에 놓였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아마를 살리지 못했다는 책임감이 각각 인선과 아마를 불렀을 것이다. 인선이 그동안 아미의 그림자를 봐왔던 것도 마찬가지로 아미를 향한 애정 때문이었으리라.


이는 차마 작별할 수 없는 대상을 끊임없이 본인의 삶에 불러오는 애도의 작업을 나타내는 듯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경하가 아미와 인선의 그림자 윤곽을 따라 벽에 선을 그리는 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들의 혼을 잠시나마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림자는 벽에 그린 윤곽선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라, 혼들을 현실에 고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사실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은 존재를 온전히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듭 시도하며 그들의 흔적이라도 간직하려 하는 것. 그것이 아직은 작별하지 않음으로써 제대로 된 작별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애도의 과정일 것이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말했다. 이 소설에서 사랑으로 행해진 일들을 떠올려 본다. 본인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일, 작은 새를 살리기 위해 눈보라를 뚫는 일, 언 손으로 눈을 쓸어내리며 망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 늙고 지친 몸을 이끌고 유해를 찾아 헤매는 일, 그리고 작별하고 싶지 않은 존재를 일상에 불러내 그들의 흔적을 계속 간직하려 하는 일까지도. 모두 지극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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