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빨강』, 편혜영
『재와 빨강』은 ‘그’가 파견근무를 위해 C국에 입국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C국은 여느 곳과 다름없이 팬데믹의 영향으로 전염병이 급격히 확산하고 있으며, 두 개의 지질 판이 만나는 지역에 위치하여 대규모 지진 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지진의 위험에 노출된 국가이다. C국은 재난에 대한 위험뿐만 아니라 독단적 성향의 우익 정권으로 인해 시민봉기가 예상되는 등 정치적 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C국은 공포가 일상화된 공간으로 그려진다. C국 안에서도 ‘그’가 머무르게 된 Y시의 제4구는 대량의 산업폐기물이 매립됐던 곳이다. 이곳은 하나의 섬처럼 도시 내에서 소외된 공간이며, 재난과 정치적 불안정이 야기하는 일상화된 공포에 더욱 취약한 공간이다. 제4구의 일상화된 공포는 거리에 방치된 쓰레기와 거리를 뒤덮은 악취라는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공포는 사람들이 본인의 안위와 생존을 최우선시하도록 만들고, 이는 사회규범의 붕괴와 도덕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는 약국에 가는 길에 인도에서 쓰레기 더미를 밀치거나 밟아 터뜨리는 방역차를 본다. 도착한 약국은 이미 약탈당하여 유리는 깨져있고 빈 약품 상자가 뒹굴고 있었으며, 약품을 약탈하려는 사내와 약사의 대치를 직접 목격한다. 약을 봉지에 담아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에는 봉지를 노린 한 사내에게 머리통을 가격 당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한편 아파트 전체가 격리 대상이 되었을 때, 배급되는 도시락을 빠르게 챙기지 않으면 다른 세대에게 도둑맞기도 한다. 소설 속 개인들은 파편화된 채 서로에 대한 의심과 반감만을 진다. 생존을 위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상화된 공포는 생존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느끼는 후기 근대의 공포로 해석되기도 한다.1)
사내에게 얻어맞은 순간 그는 자신이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세계에 들어섰음을 깨달았다. 도덕과 질서와 교양과 친절이 일상이었던 세계에서 약탈과 기만과 폭력과 쓰레기가 보편적인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새로운 세계의 생존 방식은 간명했다. 가격하거나 가격 당하는 것. 약탈과 폭력이 생계의 방편이라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게 유일한 자산이었다.
이때 ‘그’는 공포의 원인이 되는 현상의 현황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는 C국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여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는 라디오나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또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찾아도 방치된 쓰레기나 약탈 등의 문제는 제4구에 한정된 문제인지 전염병과 관련한 막연한 뉴스 말고는 찾지 못한다. C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구체적인 감염 현황 등 현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그’의 상황은 그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한다.
1) 김은하, 「후기 근대의 공포와 재앙의 상상력-편혜영의『재와 빨강』」, 『비교한국학』 21(1), 2013, 120-121쪽.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그려지는가? 인간은 도덕성과 존엄성을 갖춘 존재라기보다 언제든 쓰레기가 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소설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가 아파트에서 쓰레기 더미로 뛰어든 이후 점차 쥐만도 못한 존재로 비인간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아파트에서 탈출한 이후 공원에서 부랑자로 살아가는 ‘그’는 쓰레기 더미를 뒤져 음식과 옷 등을 찾으며 쥐와 유사한 방식으로 생활한다.
소각이 끝나 검은 재와 잔불이 남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노라면 한 마리 쥐가 된 느낌이었다. 간신히 쓸 만한 것을 건져내도 온몸이 재투성이가 되어 회색 털의 쥐와 다를 바 없어졌다. 무엇보다 쥐들이 쓰레기를 먹고 사는 것처럼 그와 공원의 부랑자들 역시 쓰레기 덕분에 먹고 살았다.
‘그’와 쥐는 인간 사회로부터 배제된 존재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쥐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소설에서도 쥐는 사실 여부와는 다르게 전염병을 옮기는 핵심적인 매개체로 강조되며 사회적 안정을 위해 제거 대상으로 규정된다. 쥐와 생활 반경과 생활 방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쥐와 가까운 공원의 부랑자들 역시 주류 사회로부터 배제된 이들이다. 그들은 “경찰조차 멀리하고 싶을 정도로” “방역체계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는 아파트에서 공원으로, 공원에서 하수도로 이동한다. ‘그’는 지속적으로 도시의 주변부로 밀려남과 동시에 쥐와 생활공간을 더욱 공유하며 쥐와 유사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때 앞에서 살펴봤던 일상화된 공포는 이러한 배제를 정당화하고 강화한다. 공원에서 부랑자 2번이 기침을 하거나 피를 토하는 등 감염의 증상을 보이자, 부랑자들은 2번을 보디백에 담아 쓰레기 소각장으로 던진다. 본인들에게 전염병을 옮길 위험성을 보이자 2번은 제거의 대상으로 순식간에 규정되고 공원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이후 기침 증상을 보인 ‘그’도 마찬가지로 보디백에 담겨 하천에 던져지고 하수도로 흘러가게 된다.
한편 ‘그’가 애초에 C국으로 파견근무로 가게 된 것도 주변인들로부터의 배제라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사장이 파견근무 발령자로 ‘그’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쥐를 잘 잡기 때문이다. ‘그’는 지사장의 집들이 자리에서 갑자기 나타난 쥐를 직접 잡게 되었다. 쥐를 내쫓는 정도로도 충분한데 쥐를 직접 잡고 쓰레기통에 넣는 ‘그’의 행위는 집들이의 분위기를 망친다. 쥐에 대한 혐오는 쥐를 잡는 더러운 일을 자행한 그에 대한 배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쥐를 잡은 직후 ‘그’는 동료들이 자신을 쥐 보듯 하는 시선을 느낀다. 또한 지사장이 외국어 능력이 부족하고 경력도 부족했던 그를 갑작스럽게 파견근무 발령자로 선발한 것도 “해고 통고 문자 같은 추방의 형식”2)으로 읽어낼 수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 ‘그’는 방역원이 되어 사회 내에서 일하게 되지만, 이를 온전한 사회적 포함으로 보긴 어렵다. 방역원은 전염 위험성이 높고 경제적 보수가 낮으며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임시직이다. 이 때문에 지원자가 거의 나타나지 않자 방역본부는 부랑자를 활용하게 된 것이다. 방역팀장은 하수도에서 도망치는 ‘그’를 붙잡아 억지로 체온을 재고 데려가 방역원으로 일하게끔 한다. 사회 내에서 기피되는 일은 부랑자들에게 강제적으로 할당되며, 부랑자들은 이 일을 맡는다는 전제하에 사회 내로 조건부 수용된다. 이를 통해 주류 사회에 속한 일반 시민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기피되는 ‘쥐 잡는 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이때 방역본부가 방역원을 증대하게 된 이유는 사람들의 일상화된 공포를 잠재우기 위함이다. C국에서 쥐가 이전보다 많아지게 된 원인은 거리에 방치된 쓰레기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를 전염병의 확산이나 지진의 전조현상으로 생각하며 공포를 더욱 키운다. 방역본부는 잘못된 소문을 바로잡기보다 가정 방역에 집중한다. 쥐는 사실과는 다르게 전염병을 옮긴다는 부당한 누명을 쓰게 된다. 이처럼 쥐는 ‘그’를 비롯한 부랑자들과 마찬가지로 방역본부에 의해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적으로 활용된다.
2) 김은하, 앞의 논문, 125쪽.
이처럼 ‘그’가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과정을 쥐와 동일시되는 과정과 겹쳐 읽는다면, 쥐는 사회 내에서 배제된 자들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과 쥐 사이의 유사성에만 기반한 해석이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배제만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쥐를 읽어내지 못한다. 또한 인간인 ‘그’가 쥐와 유사한 존재가 되어가는 ‘비인간화’ 과정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경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인간이 동물“처럼” 취급되고 묘사되고 느껴지는 과정을 통해 인지적 충격을 가함으로써 단지 인간이 배제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탈인간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인간과 쥐의 관계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쥐를 메타포나 표현의 수단이 아닌 쥐로 읽어낼 때, 인간과 쥐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 남성인 ‘그’가 여성인 전처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그’를 근대적 주체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전처를 다소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로 대한다. ‘그’는 원숭이를 무서워하는 전처의 거절과 부탁을 무시하고 전처와 함께 원숭이 숲에 들어가 원숭이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다. 이후 갑자기 전처에게 괜히 화를 내며 원숭이에게 팔을 다치지 않았다면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처를 공감하거나 이해하려는 태도보다는 본인의 주관대로 해석하고 재단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본인의 미혹이 전처와 이혼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싫어서 아내의 부정에 대한 의심에 사로잡힌다. 전처가 외출한 사이 전처의 방을 뒤지며 전처가 메모한 시구를 부정한 태도를 은폐하려는 증거로 아무런 근거 없이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전처의 죽음은 그 자체로 ‘그’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기보다 ‘그’에게 유용한 대상이 부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화된다. ‘그’는 전처의 죽음을 알게 됐을 때 슬픔과 상실감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그런 감정을 나눌 대상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한편 인간인 ‘그’가 동물인 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를 근대적 주체로 읽을 수 있다. ‘그’는 C국으로 입국하고 며칠이나 지나 집에 홀로 남은 개를 떠올렸다. ‘그’는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할 때도 자존심 때문에 개를 바깥 아무 데나 버려달라는 메 시지를 남기며 개를 위하는 마음이 사실은 조금도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그저 전처가 개를 아꼈기 때문에 이혼 후 전처가 가져가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이 개를 키우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아내의 이혼 후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개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 ‘그’는 C국에 도착한 이후 쥐와 유사한 존재가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쥐보다 못한 존재로 묘사된다.
쓰레기를 뒤지다 보면 생존을 위한 경쟁자가 부랑자가 아니라 쥐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쥐가 사람과 경쟁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쥐는 항상 사람보다 빠르다. 쥐는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음식을 찾고 먹지 못하는 것을 먹으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먼저 먹는다. 사람이 팔을 뻗을 수 없는 곳으로 거리낌 없이 가고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에는 항상 먼저 간다.
명백히 그의 처지는 쥐보다 못했다. 한데서 잠을 자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뒤져 먹이를 구한다는 점에서 쥐와 같았으나 쥐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지만 그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었다가 탈이 나서 여러 번 고생했다는 점에서 쥐보다 열등했다.
방역 회사에서 약품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그’의 업무는 약품의 안정성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실험실에서 독성 강한 약을 주입당하던 쥐는 약품 개발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실험실 안에서 그와 쥐의 관계는 철저히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보여준다. 반면 C국의 쓰레기더미와 하수도에서 그와 쥐는 생존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두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동등한 경쟁 관계에 놓인다. 오히려 그 경쟁 관계에서 열등한 것은 ‘그’이다.
근대적 주체로서 생활했던 ‘그’가 특정 측면에선 쥐보다 열등한 존재로 전락하면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의 경계는 해체된다. 그 경계에 의해 주체와 수단으로 양분되었던 둘의 전통적 관계 또한 새롭게 재구성될 가능성이 열린다. 이때 쥐는 인간이 비인간화되는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메타포로 머무르지 않고, 인간과의 공생 관계를 이루며 ‘그’의 탈인간화 과정을 추동하는 존재가 된다.3) 탈인간화 과정을 통해 ‘그’는 비인간 동물과 대비했을 때 누렸던 특권적 위치를 상실하고, 공포의 시공간 속에서 쥐와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에 힘쓰는 존재로 거듭난다.
3) 임지연, 「2000년대 재난소설의 ‘어두운 함께-되기’ 서사와 생명정치적 장소성 : 편혜영의『재와 빨강』 에 나타난 ‘자연문화’를 중심으로」, 『통일인문학』 89, 2022, 465-4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