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파먹기』, 권혜영
출근하기 싫다, 퇴사하고 싶다, 그냥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직장인이 있을까? 대체로 가볍게 던지는 말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숨이 턱 막힐 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린 끝에, 농담처럼 포장해 겨우 내보인 진심일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쉬었음 청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수많은 청년들이 회사를 뛰쳐나와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권혜영의 소설집 『사랑 파먹기』는 회사 생활에 지쳐 쉬고 있거나 회사 생활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왜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었는지, 또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 파먹기』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회사생활로 인해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의 ‘나’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2주에 한 번씩 과호흡”을 겪었다. 중간에 내려 마음을 진정시키다 보면 30분씩 지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구토와 설사에 시달리며 힘겹게 일을 이어나가야 했다.
‘나’는 ‘퇴사하고 그냥 쉬고 싶다’는 마음을 실천에 옮겼다. ‘나’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운 채로 생활한다. ‘나’는 구직활동에 나서지 않는다. ‘나’의 하루 루틴은 오션뷰 풀 빌라 호텔의 조식 포함 2인 숙박권 당첨을 기도하며 샤카 주스를 사 마시고, 중고거래 시세가 높은 세레비 띠부씰이 들어있기를 바라며 포켓몬 빵을 사 먹는 것이다. 중간중간 알티 추첨 이벤트나 생방송 문자 투표 인증 이벤트에도 틈틈이 참여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나’는 그런 스스로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제법 성실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성실하다. 다만 더 이상 근로소득을 얻기 위해 성실한 게 아니라, 불로소득을 타내기 위해 성실할 뿐이다. ‘나’의 행동은 ‘퇴사하고 싶다’는 말만큼이나 ‘건물주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의 마음을 대변한다. 물건을 굴리면 랜덤하게 다른 물건으로 내놓는 ‘띠부띠부 슬라이드’에 소설 속 인물들이 매혹되는 심리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야도란 띠부씰을 세레비 띠부씰로, 물통을 아이패드로 내놓는 행운이 내게도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며 일할 생각은 하지 않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그저 요행과 일확천금을 기대할 뿐이라고 혀를 찰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노동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을까?
다음 수록작인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없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실한 노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없다」의 ‘나’도 앞선 소설의 ‘나’와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에 지쳐있는 인물이다. 소설은 ‘나’가 화재 경보 사이렌을 듣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 ‘나’는 위험하다는 두려움이나 이번엔 정말 불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보다는, 수면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한 피로감만을 호소한다. 오히려 그녀는 유독가스를 죽지 않을 만큼 마시면 결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단이 끝나지 않고 무한히 이어진다. 발목 뒤쪽의 살갗이 까질 정도로 계단을 내려가도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위아래로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아무리 걸어 내려가거나 올라가도 도저히 그들과 만날 수 없다. 그저 평행 상태를 이룰 뿐이다. 그런 상황을 ‘나’는 “쉼 없이 뛰어도 메워지지 않는 게 꼭 내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카드 빚 같”다고 느낀다. 무한히 이어지는 비상구 계단은, 쳇바퀴 굴리듯 계속 일해도 제자리에 머무는 듯한 자본주의 속 현대인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제자리에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그냥 바닥에 누운 채로 언제나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는 것이다. 아무리 내려가도 바닥에 닿을 수 없다는 무력감은 ‘나’를 그저 주저앉게 만들었다. 이러한 ‘나’의 선택은 오늘날 회사를 떠난 청년들이 더 이상 구직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못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더 이상 강도 높은 성실함을 지속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카드 하나를 꺼내 부러뜨린 후, 벽을 긁어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라는 문장을 남긴다. 독자 입장에서는 ‘나’가 악몽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탈출하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길 바라겠지만,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나’는 극한의 상황에 계속해서 내몰릴 뿐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탈출의 불가능성은 깊은 무력감을 남기며, 이들이 정말 마땅한 이유 없이 주저앉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긴다.
『사랑 파먹기』의 모든 인물들이 회사생활을 중단하는 건 아니다. 몇 인물들은 ‘아이돌 덕질’을 통해 일할 힘을 재충전한다. 「여분의 해마」의 ‘나’는 출근길에 콩나물 시루마냥 지하철 인파에 떠밀리다 보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지만, 이어폰을 꽂고 최애인 해마의 노래를 들으며 콩나물이 되는 삶을 견딘다. 해마를 덕질할 때, ‘나’는 “콩나물이었던 것도, 체스 말이었던 것도, 닭처럼 졸았던 것”도 잊고, “그냥 한 사람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된다.
이처럼 아이돌을 덕질하며 얻는 정서적 위로는 오히려 성실한 노동을 체념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는 공식 굿즈 판매처 링크가 올라올 때마다 “체스 말의 맡은 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해마의 노래를 더 오래 들”으려면, 팬으로서 “해마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마네 회사에서 사 달라고 하는 이것저것”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산업은 소비자를 성실하고 충실한 근로자로 만든다.
한편 시장 논리 안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되는 아이돌 역시 강도 높은 성실함을 요구받는다. 일상생활에서도 팬의 “꿈과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이상적인 이미지를 철저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에 실패하면 팬들의 마음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나’는 포토카드에서 튀어나온 과거의 해마와 며칠 동안 함께 생활하지만, 최애를 가까이에서 본다는 만족감보다 당혹감과 실망감만을 거듭 느낀다. 눈앞의 해마가 ‘나’와 같은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고, 미디어에서 비춰진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의 해마를 옆에 두고 화면 속 해마를 덕질한다.
아이돌의 이상적인 모습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랑 파먹기」는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AI 아이돌 그룹 ‘아쿠아’에 입덕하게 되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AI니까 청정 하나는 진짜 보장되겠네”라는 말처럼 아쿠아에게는 현실적인 모습이나 논란 때문에 실망할 위험이 전혀 없다. 버블이나 브이앱처럼 1:다로 부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좀처럼 오지 않는 메시지를 애타게 기다릴 필요도 없다. ‘아쿠아’는 더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말투로 개인화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아이돌이다.
이들에게 아이돌 덕질은 “간편한 사랑”이자 “인스턴트 러브”이다. 보고 싶을 때만 볼 수 있고,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 그만 좋아해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유사 연애”를 “퍼먹여 주”며, “표면적으로는 듣기 좋은 말만” 해준다. 소설은 점점 더 간편해지기만 하는 사랑이 과연 좋은 것인지 질문을 던지면서도, 더 이상 지치지 않게 쉽고 안전한 사랑에 기대고 싶어 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마저 활용해 인스턴트 러브를 만들어내는 산업의 이면을 함께 보여준다.
후반부의 소설들은 주저앉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아주 작은 변화에 주목한다. 「유예하는 밤」의 ‘나’는 꾸준히 유튜브에 커버 영상을 올려왔지만, 영상의 재생 횟수가 50회를 넘긴 적이 없다. 결국 무너진 ‘나’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 방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지만, 그때 한 팬이 영상에 남긴 댓글을 보게 된다. 그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결국 창문을 열고 죽음을 하루 유예한다. 알고 보니 그는 평행 세계의 또 다른 ‘나’의 팬이었으며, 그 평행 세계에서 ‘나’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을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평행 세계 어딘가에 행복한 버전의 내가 있다는 사실, 현실의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내 음악을 꾸준히 좋아해 주던 한 팬과의 교류. 이런 것들은 ‘나’를 극적으로 바꾸지 못했다. “노래 잘 듣고 있어요”라는 팬의 말은 그저 “휘발되는 말 한마디”에 불과하고, 그런 말로는 “마음속 깃든 빛이 열 촉은커녕 세 촉도 밝아질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분명한 건 ‘나’의 마음속 빛이 희미하게나마 밝아졌으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걸로 괜찮”아졌다는 점이다. 소설은 오늘의 죽음을 내일로 미루는 ‘나’의 변화를, 하룻밤을 버티게 하는 작은 위로를 보여준다.
마지막 수록작 「다음 챕터」는 화장실 양변기에 앉아 몰래 울던 회사 생활을 중단한 ‘나’가 다음 챕터를 더디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서관 강연을 듣고 모처럼 깊은 잠에 든 ‘나’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도서관에서 티 나지 않게 노숙하는 생활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나’는 “금방이라도 회사 다니고 제 앞가림하며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문을 열고 나타날 것만 같”은 집이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가질 못한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나’는 이면지에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만 하는 이유”와 1이라는 숫자를 적고 고민해 보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다. 더는 이뤄야 할 꿈도 목표도 없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는 당분간은 그저 “챕터와 챕터 사이의 종이 여백” 같은 상태로 지내고 싶어 한다. ‘나’는 1이라는 숫자 옆에 “다음에 생각하자”라는 문장을 남길 수밖에 없다.
‘나’는 얇은 옷을 챙기기 위해 용기를 내 집을 방문하지만, 하룻밤 머무른 후 도서관 열람실로 돌아온다. ‘나’는 빈 노트를 펼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는데, 아직 옆에 아무런 문장도 적히지 않은 1이라는 숫자를 오랫동안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그 숫자 옆에는 “다음에 생각하자”라는 문장이 또 한 번 적힐 수도 있고, 오랫동안 그렇게 공란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를 고민하기 위해 계속해서 빈 종이를 펼친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조금씩 다음 챕터로 나아가는 중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소설 속 인물들 옆에는 대부분 다른 인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예하는 밤」의 '나'가 죽음을 하룻밤 유예할 때는 미처 몰랐던 팬이 옆에 있었고, 「다음 챕터」의 '나'는 밤에 도서관 문이 닫히면 사촌 동생 지우가 일하는 24시간 카페에 가 대화를 나눴다.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의 '나'는 주이정은 서로에게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공유하며 함께 다니고, 「사랑 파먹기」의 정인과 세나는 덕질을 함께 하며 즐거움을 배로 만들었다.
어쩌면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옆에 있는 사람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게 아닐까? 또 인스턴트 러브를 파먹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동일한 대상의 사랑을 파먹고 있다는 그 감각이 지친 마음을 더 달래줬던 게 아닐까? 주저앉을지언정 삶을 포기하지 않은 것, 삶까지 포기하고 싶더라도 하루 더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 인스턴트 러브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 일시적 위안이나마 얻는 것. 이 모든 게 누군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 이들의 진정한 휴식법은 옆에 있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