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쥴리 Jun 01. 2023

오늘도 병원.


요즘 마리 컨디션은 부쩍 더 떨어졌다. 지난주 월요일에 붙인 진통 패치가 일주일 정도 간다고 했는데 딱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원래도 늘 누워있지만 밥을 안 먹고 화장실을 안 가는 게 문제. 식욕 촉진제도 먹는데... 후... 그래서 병원에 갔다.



오랜만에 아빠 없이 엄마랑 둘이 드라이브.



병원에 도착했다. 아침에 뒷다리에 묻은 모래를 털고 닦고 했는데도 아직도 좀 남아 있어서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소파에 눕혀놓고 물티슈로 좀 더 닦아줬다.


그리고 진료. 근황 업데이트를 한다. 자꾸 화장실 모래를 먹고, 밥은 안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패치 효과가 확실히 떨어진 것 같고, 살이 빠졌고, 이렇고, 저렇고. 일단 빈혈 검사(모래 먹는 이슈)와 엑스레이(흉수 체크)를 찍기로 했다. 선생님이 마리를 데려가고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다.



수액을 맞고, 새 패치를 붙인 마리가 돌아왔다. 이제는 화가 나도 크게 화를 안 낸다. 심드렁해진 마리를 옆에 두고 선생님과 상담을 한다. 빈혈은 정상 범위 중 최저 수치라 다음번 약에 철분제를 추가하기로, 새 패치는 지난번보다 약효는 강하지만 유지 기간은 짧아서 더 자주 붙여주러 와야 한다. 그리고 흉수가 많이 찬 데다 폐 전이 범위도 늘어나서 산소 공급이 잘 안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흉수를 뺄 것인가?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1. 흉수를 뺀다면

  1) 마취를 못하고 진행하는데 많이 고통스럽다.

  2) 며칠 있으면 또 차게 되어 다시 빼야 한다.

  3) 다만 며칠이라도 호흡이 조금 편하다.


2. 흉수를 안 뺀다면

  1) 호흡이 가쁘다.

  2) 점점 식사나 거동이 힘들어진다.


나와 남편의 유일한 바람은 마리가 고통스럽지 않게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술이 많이 아픈데 반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게 만든다. 아직 눈에 띄게 헐떡이거나 개구호흡을 하진 않으니 당분간은 조금 더 견뎌보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늘 마리와 시간을 많이 보내라고 하셨는데 오늘 유난히 더 강조해서 얘기하셨다. “쓸 수 있는 약은 다 쓰고 있어요. 이제는 정말로 시간을 많이 보내셔야 해요.” 그리고 QoL 체크리스트를 주셨다. 그제야 알았다. 지금까지와는 정말 다르구나. 이젠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인사할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는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없어지는구나. 곧... 현실이 되겠구나.


너무 무기력하다. 고작 해줄 수 있는 일이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것뿐이다. 항암을 하지 않기로 한순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오늘따라 그 사실이 너무 아프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마리가 고통스럽지 않게 노력할 것이다. 나의 욕심으로 힘든 마리를 붙잡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마리가 죽는 것보다 아픈 게 더 싫으니까. 오늘도 사랑한다, 내 고양이.


매거진의 이전글 퐁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