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는데 화분에서 연두색 속잎이 빼꼼히 머리를 내민 것이 보였다.
작년 이맘때쯤 공동 현관문을 지나 몇 걸음을 떼는데 벌거벗은 채로 버려져 있는 어린것이 눈에 띄었다. 자꾸 돌아다 보여서 결국 데려왔다. 빈 화분에 대충 심어 두고 관심이 없었던 군자란이다.
이름만 군자란이지 난하고는 거리가 먼 수선화과 풀이다. 화려한 꽃송이로 고향은 남아프리카인데 군자란이란 기품 있는 동양적인 이름표를 달고 있다. 좋아하지 않고 키워보지도 않았는데 왜 데려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날, 날씨가 쌀쌀했고 축 늘어진 두 가닥 초록 잎은 동양란처럼 가늘었다. 하얀 뿌리는 어미에서 떨어지느라 잔뿌리도 없이 상처로 너덜거렸다. 어쩌자고 좋아하지도 않는 식물을 덥석 품었단 말인가 후회가 되었지만, 다시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이 살아내어 새순을 올린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한 만남의 광장에는 벌써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개인 일정에 따라 한 달에 서너 번까지 중증장애인 쉼터에서 봉사한다. 이곳에 왔다 가면 마른 섶 같은 내 마음이 촉촉해져서 기다려지는 날이 되었다.
첫날, 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 공간에 여섯 명의 거주자와 돌봄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대부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누구와의 첫 만남은 나에게는 늘 두려움이다. 상대를 본다는 것보다 상대에게 나를 보여준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봄날 난분분 떨어진 꽃잎 위를 어떻게 디뎌야 할지 난감한 그런 상황처럼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엉거주춤 서 있다가 교사가 그들에게 양말을 신겨주는 것을 보고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내 손과 그들의 발이 만났다. 따뜻하고 딱딱하고 매끈했다. 이렇게 처음으로 마주한 이가 ‘오월’이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흘러내리는 침은 턱받이를 축축하게 적셨지만, 표정은 티 없이 밝고 눈망울이 포도알처럼 검고 예뻤다. 그 표정이 오월의 푸른 잎 같아서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말을 붙였다. “머리를 왜 자꾸 만져. 가려워요? 긁어줄까? 악수 한 번 해줘요. 손이 참 따뜻하네.” 말을 걸고 손을 내미니 웃어준다. 웃는다는 건 마음이 조금 열렸다는 뜻일 것이다. 오월 씨는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알려주었다.
손목인지 발목인지 구분할 수 없는 앙상한 팔다리를 만져주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만가만히 모양이 다른 여린 손을 마주 잡고 마음을 전해본다.
함께 산책도 했다. 휠체어에 앉혀서 조심스레 움직이면서 몸으로 볼 수 있는 바깥으로 나왔다. 쉼터의 좁은 마당을 돌고 돌았다.
“이건 자동차, 저건 나무. 그리고……, 그리고 하늘 구름 바람.”
내 입은 말문이 터진 아기처럼 바빠졌다. 그러면 오월이도 몸짓으로 소리로 표정으로 힘껏 반응했다.
조그맣고 하얀 손위에 전날 내렸던 눈 한 줌 올려주면서 “이건 하얀색 눈이야 만져봐 차가워.”라고 했을 때 눈과 교감하는 오월이의 그 반응을 잊을 수 없다. 처음엔 긴장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고 차가운 촉감에 몸과 손을 움츠렸다가 이내 지긋이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연다. 도서실에서 책을 읽어줄 때도 있다.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좋아한다.
휠체어 산책조차 할 수 없는 이들에겐 그들에게 맞게 이름도 불러주고 토닥토닥 안아주고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들려준다. 별거 아니다. 바스락바스락 숨어서 소리 내는 나의 관심이다. 그들도 눈으로, 표정으로 최소한의 단어로 의사 표현을 한다.
식사 시간은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거주자의 장애 상황에 따라 음식의 질감은 다르지만, 메뉴는 거의 같다.
“오월 씨, 이건 불고기. 이건 미역국, 이건 김친데 살짝 매울 수도 있어. 그래도 불고기 먹으면 김치도 먹어야 더 맛있을걸 …….” 이야기하면서 도와주다 보면 식판이 비워졌다. 먹을 수 있다는 건 살아있음의 척도다. 가까운 누군가가 먹을 수 없을 때 별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면, 먹는 것이 살기 위해 하는 가장 숭고한 행위임을 알게 된다. 먹지 못하고 살아있음은 살아있음이 아님을 …….
치열이 바른 거주자가 없지만 돌봄 선생님을 도와서 양치까지 해준다. 밥도 잘 먹고 양치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며 나눔의 시간을 마무리한다.
이곳 거주자는 남자도, 여자도 있고 나이도 다르고 아픔의 형태나 깊이도 모두 다르다. 어릴 때 와서 20대에서 40대인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모두가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만의 장애를 마주하고 꿋꿋이 견뎌내고 있었다. 매번 다른 분들을 만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는 그곳 거주자 모두를 오월이라 이름한다.
누군가 이 세상에 생명으로 온 것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던가 고통으로 살아내는 이들에겐 너무나 잔인한 말이다.
거주자들의 뒷면에 있는 세계를 알 수 없지만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세계였을 것이다. 처음엔 뜨겁게 사랑했고 오월의 초록처럼 눈부셨을 한때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가뭇없이 찾아온 청천벽력 앞에서 무연히 허둥대던 어미 아비가 또는 누군가가 선택한 최선이었다고 믿고 싶다.
봉사자의 발길이 볕뉘 같기를 바란다면 교만일 것이다. 돌아서 나올 때 눈물을 보이는 오월이를 보면서 가슴이 시렸다.
집에 와서 새순을 내민 어린 군자란을 살폈다. 아무리 보아도 넓적하고 통통한 초록색 잎과 화려한 오렌지색 꽃으로 기품을 뽐낼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것도 제 어미가 온 힘을 다해 잉태한 어린것이었다. 화초 주인은 어미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떼 내었을 것이다. 무심한 손길에도 스스로 새싹 한 잎 내밀어 꿈을 펼치려 한다. 식물 영양제 몇 알을 화분 위에 올려주었다.
마음을 내어주는 일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주저했던 일들이 많다. 책임에 대한 무게에 연연하지 않고 조금씩 마음을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