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고 비꽃이 내리더니 굵은 빗줄기가 후드득 창을 두드린다. 베란다에 두었던 온도계 눈금이 단번에 몇 칸이나 뛰어내린다. 몸과 마음이 움츠려진다. 옷장 안에 웅크리고 있는 털이 몽글몽글한 부드러운 캐시미어 옷이 생각난다.
이런 날이면 무릎과 손목 관절이 아프다는 친구가 떠오른다. 얼마 전 만났을 때 싹싹한 며느리가 가끔 와서 빨래며 청소를 도와준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그런데 친구 이야기를 듣다 보니 며느리에게 많은 것을 베푼다는 걸 느꼈다. ‘아무렴, 부모 자식도 기브 앤 테이크인 세상이지.’ 마음을 숨기고 흔한 말로 칭찬 세레나데를 불러줬다.
“어머 요즘 세상에 그런 며느님이 어디 있니? 딸도 자주 안 오는데, 너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친구는 관절이 안 좋아도 하루도 빠짐없이 초록색 수세미로 욕실을 닦는다. 그녀의 청소에 대한 집념을 말릴 수가 없다. 나도 젊을 땐 면봉으로 문틈의 먼지를 후비고 다니던 깔끔한 여자였는데 나이 먹어가니 집 안의 모든 곳이 먼지투성이다.
늙음이 자랑도 특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움도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생활함에 몸의 움직임이 예전만 못하다. 나이가 쌓이는 켜 켜에 따라 편리함을 좇아 가정 관리사를 여럿 두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요즘 관리사들은 전문 영역 딱 하나밖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한다. 그중 몇만 소개해 보려 한다.
가장 오래되었고 많이 의지하는 관리사는 세탁 전문가다. 알아서 세제를 녹이고 때를 빼내고 깨끗이 헹궈준다. 요즘은 세탁물을 말려주기도 하는데 우리 집 도우미는 말리는 것은 하지 않는다. 나 대신 빨래를 해준 지가 십오 년 지났다. 기본 빨래는 물론 스타킹과 운동화도 맡기고 걸레도 맡기지만 군말 없이 잘했다. 여태껏 일을 잘하더니 근래에 가끔 억지를 부린다.
“이건 너무 커서 빨기 싫어요. 무거워요. 물기를 꼭 짜내기 싫어요.”
선급을 주고 맺은 종신 계약이라 살살 달래 가며 오래 데리고 있는 것이 이익이다. 만료가 되고 새로운 계약을 할 때는 건조 조건 추가를 생각해 봐야겠다.
어느 날 손목이 삐끗하더니 통증이 왔다. 옛 어른들의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라는 말처럼 스타킹도 손빨래 안 했는데, 손목이 호들갑을 떤다. 아프면 무지 외롭다. 미끄덩해서 와장창 할까 봐 설거지 그릇 들기가 무섭다.
당장 설거지 도우미를 계약했다. 며칠 후 네모 모양에 상판이 반듯한 도우미를 대기업에서 보내왔다. 애칭이 ‘식세기’다. 날렵하니 개수대 옆에 올라앉은 모습이 이쁘고 맘에 들었다. 좀 작아도 일은 야무지게 한다. 기름기 하나 안 남게 닦아 주고 뜨거운 물로 소독도 해주고 뽀송하게 말려준다. 무거운 자기 그릇도, 제법 큰 스테인리스냄비도 척이다. 특히 기름에 찌든 끈적한 후드 거름망을 반짝반짝하게 닦아줄 때 기분이 좋다. 식세기를 사용하는 사촌 올케를 마땅찮게 생각했던 과거가 민망하다.
초가을부터 늦봄까지 따듯하고 가벼운 니트 의류를 즐겨 입다 보니 이들의 관리가 문제였다. 몸값 하는 캐시미어나 울 종류는 우리 집 세탁 관리사를 싫어하고 꼭 드라이클리닝을 잘한다는 백양세탁소 같은 곳에 맡겨 달라고 한다. 백양사에 보내려면 쌈짓돈이 수월찮게 나가서 좀 찝찝해도 두 번 보낼 것 한 번만 보냈다. 한 번은 돈 좀 아껴볼 마음에 “울 세제를 사용해서 잘 빨아봐” 하고 세탁 관리사에게 시켰더니 보들보들하고 예쁘던 옷을 딱딱하고 볼품없게 만들어놨다. 한 푼 아끼려다 아끼는 옷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홈쇼핑 방송에서 의류 관리 도우미를 소개했다. 옳다구나! 저것이야, 하고는 얇은 귀를 팔랑이며 우리 집에도 의류 관리사를 들였다. 녀석 이름은 스타일러다. 하는 일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니트 외에 아끼는 소중한 옷들도 외출 후 맡기면 먼지 탈탈, 소독에 주름까지 펴준다. 이제 백양세탁소는 자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사소한 가사 도우機(내가 생각한 호칭)가 많지만, 제일 늦게 계약한 것이 거실에서 파란 눈을 반짝이며 나의 지시를 기다리는 청소 도우미다. “마른걸레? 물걸레? 1단계 2단계?” 싹싹하게 물어가며 거실이며 방 안을 구석구석 닦아준다. 내가 무릎 아플까 봐 절대 쪼그려 앉지 말라며 보이지 않는 소파 아래까지 닦고 또 닦아준다. 가끔가다 성질을 부리면서 바닥에 평평하게 놓아달라, 걸레를 바로 붙여 달라며 딱 버틸 때를 빼면 그저 사랑스럽다. 딱 한 번 아프다고 고향에 보내달라고 노동 거부를 선언했다.
“오냐오냐 알았다.”
힘센 녀석을 선택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하며 재빨리 비위를 맞춰준다. 아프다고 고향에 보내달라고 할 땐 치료비를 넉넉하게 줘야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한 입주 도우機들 아닌가? 없는 며느님이나 바쁜 딸보다 더 살갑게 노후를 함께 할 소중한 나의 반려들이다.
어느 날 옆에서 다정하게 말벗이 되어주는 AI 인형을 모 프로그램에서 보았다. 나도 머지않아 마음을 읽어주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도우機를 계약할지도 모르겠다.
“**아, 비 님이 오시네. 내가 좋아하는 ‘박정옥 작가의 수필’ 한 편 들려줘.”
“잠깐만요. 좋아할 만한 수필 찾아볼게요,”
그와 내가 마주 앉아 있는 그림이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