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또 버리기

by 박정옥



이사를 하려고 집안을 정리했다. 누군가 3년 정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라면 버리라고 한 말이 떠올라 속으로 피식 웃었다. 3년 넘게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 생전 처음 보는듯한 낯선 물건들도 구석구석 숨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사할 때마다, 계절 옷을 정리할 때마다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아직도 버릴 것이 많았다. 그땐 참 귀한 것이었지, 소중한 추억이 있는 것이었지, 언젠가는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유가 붙어있는 물건이었다. 그중 아까웠던 것이 아이들이 사용하던 옷장과 책상이었다.

결혼하고 처음 거금을 주고 샀던 무스탕 코트도 그중 하나였다. 너무 낡아서 외출할 때 입을 수가 없었지만, 그것만큼 따뜻했던 옷도 없어서 정리할 때마다 못 버리고 두었다가 어느 날 딸의 논리적인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버렸다. 다 이유가 있어 나에게로 온 물건들인데 이제 하나씩 보내야 했다. 50대까지만 해도 집으로 들어오는 물건이 많았는데 이제는 자꾸 내보내려 노력한다.

냉장고 문을 열어봤다.

“안녕? 오늘 정리 좀 해줄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것저것 먹거리들을 살펴보고 청소하면서 몇 가지를 꺼냈다. 버릴까 하다가 언젠가 먹겠지 하던 것들이었다. 결국은 또 이렇게 버릴 것인데도 유예기간을 두었던 것은 아끼며 살아온 습성 때문이었다.

장롱문도 열어보고 차곡차곡 쌓여있는 이불이며 나란히 걸려있는 옷가지도 고마웠다고, 잘 입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골라냈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다. 창고도 뒤져보고 서랍들도 열어보고 ‘어, 네 가 아직 있었어.’ 이제 정말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끄집어낸 것들이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찼다. 한때 고마웠지만 쓰레기로 변신한 내 물건들이 담긴 봉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어느새 이렇게 버릴 것들이 많아졌는지.

내가 유독 손대지 않는 한 곳은 책장이다. 그곳에도 정말 버려도 좋은 것들이 많은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그 부족한 공간에 가로로 세로로 자꾸만 새로운 책들을 포갠다. 그러다 보니 책들은 책장에서 나와서 안방에도 거실에도 나뒹굴어져 있다.

요즘 와서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훗날 내가 있던 자리에 자식들에게 쓸모없는 물건들이 가득 남아 있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물건을 사지 않겠다는 건 생각뿐이다. 가끔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손이 일을 저지른다. 집안에 가만히 있어도 여러 매체는 어쩜 유혹을 그리 잘하는지 내 지름신(충동구매)은 머리에서 강림降臨하는 것이 아니고 손끝에서 광풍을 타고 나오는 듯하다.

가장 큰 문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아집이었다. 잊어버려야 하는데 절대로 잊히지 않는 것들,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가 안 되는 일들, 사소한 상처마저도 쉽게 치료되지 않는 마음의 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용서했다고 잊었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내 마음에서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고 자존심인 양 껴안고 있는 강한 아집을 버리고 또 버려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글쓰기 게으름의 극치다. 오늘도 브런치 회장님의 훈계를 듣고 옛글 한편 뒤적 거려서 올린다.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나에게 그님이 강림하시길 바란다.

요즘 프랑스 고전에 빠졌다. 읽기를 하면 쓰기가 안되고 쓰기를 하면 읽기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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