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닐봉지에 소지품을 넣었다 뺐다 부스럭부스럭하던 3번 병상의 보호자 할머니가 날이 밝아오자 복도를 내다본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이윽고 8시가 되자 머리가 반백이나 된 의사가 칠팔 명의 전공의와 함께 병실로 들어선다. 환자들은 누운 채로 저마다 귀를 기울인다.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있지만, 하루 한 두 번 회진 때나 만날 수 있는 담당 의사를 기다리는 마음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할머니는 벌떡 일어서서 보더니 다시 허리를 접고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린다. 할머니가 기다리던 의사가 아니었다.
따라오는 전공의가 많은 의사는 간암 권위자라고 소문난 H 의학박사다.
5번 병상에서 검은 때죽나무 색 얼굴빛을 한 아저씨가 비스듬히 몸을 일으킨다.
“좀 어때요? 별일 없죠? 다음에 봅시다.”
그러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려주고 서둘러 나가 버린다. 마치 나는 유명하니 많은 환자를 보러 가야 해 하는 것 같다. 언제나 비슷한 멘트다.
"저 세 마디를 뱉는 것이 간암 분야 유명한 권위자라니 쳇! 자기 이미지는 관리하면서 환자 관리는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어." 5번 병상 보호자 아주머니가 먼지처럼 뱉어내는 말이 병실을 맴돈다.
아저씨는 12년 전에 간암에 걸렸다고 한다. 이 병원에서 H 의사한테 수술을 받고 시골에서 사슴목장을 하면서 잘 관리하고 살았다. 수술하고 5년이 지나자 H로부터 함께 텔레비전에 나가 완치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걸 거절했다. 세월이 꽤 지났는데 다시 재발이 되어 입원하니 마음 쓰는 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릴 위해서겠어? 자기 위상 높이려고 그러지 유명하다지만 속이 보이는 사람이야.’ 하면서 못마땅해한다.
H 의사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아주머니는 절망적인 남편의 병세 앞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명의 의사가 더 왔다 가고 나서 할머니가 기다리는 의사가 왔다.
“할머니 결정했어요?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요. 안 그럼 퇴원해야 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어째 배에 구멍을 내서 미음을 준단 말인가? 아직 입으로 먹을 수 있는 영감을.”
할머니가 절규한다. 그 옆에는 콜록콜록 기침과 함께 기침 소리보다 더 거친 숨을 몰아쉬는 할아버지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할아버지는 고통이 너무 커서 몸을 눕히지 못하고 자주 앉아 있었다. 다시 잘 생각해 보라면서 회진 의사가 가고 나자 할머니는 누군가한테 전화를 걸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 더러운 새끼들아! 이 못된 새끼들아! 아비가 너희를 어찌 키웠는데 병원 오는 것이 그리 어렵나. 너 가 그 높은 자리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누구 덕인지 생각해 봤나.”
저쪽에서 전화가 먼저 끊어진 거 같다. 그러자 또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야 이년아! 이 빌어먹을 년아. 아비가 병원에 누워서 아무것도 못 먹는데 너는 밥이 처 넘어가나. 뭣이 바빠서 병원에도 안 와 보나.”
식도암으로 누운 영감 곁에서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는 당신 몸도 아프고 병간호도 지쳐서 외롭고 서러운 맘에 종일 그렇게 소리소리 지르며 세월의 피를 토해냈다.
저녁때쯤 5호 병상 아저씨의 아들이 왔다. 십 년 만에 나타났다고 한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어 부모를 애태우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란다. 어린것을 시댁에 맡겨 놓고 자주 와서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를 돌보던 딸도 사위와 함께 왔다. 그리고 그들은 1인실로 병실을 옮겼다. 그 자리엔 또 다른 환자가 왔다.
그날 밤 53호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쪽잠이라도 자던 잠을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3번 병상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짐승 같은 이상한 소리를 크억크억 내면서 검은 비닐봉지를 움켜쥐고 병실과 복도를 기어 다녔다. 간호사가 놀라서 할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당직 의사가 오고 같은 병실 사람들도 모두 놀랬다. 간신히 진정시켜서 자리에 모셔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같은 행동을 또 했다.
새벽녘에 병원에서는 할머니 가족들을 긴급 호출했다. 할머니는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에게 낫지도 않는 어떤 수술도 시키고 싶지 않고 그 병세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정신 줄을 놓으신 거 같았다. 아들과 딸이 오고 할아버지는 들것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를 꽉 움켜쥔 할머니도 그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갔다.
복도에서 1인실로 간 아주머니를 만났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제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들도 찾고 딸도 효심이 깊으니 힘내라고 했더니, 자식들이 아버지 숨도 거두기 전에 재산을 어떻게 상속해 줄 거냐고 했다면서 슬픈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어젯밤 그 할머니와 아주머니 마음을 충분히 공감했다.
병실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벚꽃잎 같은 눈이 자꾸만 창문을 두드린다. 누군가의 손을 절실하게 잡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병상에 누워있는 그들은 손대신 애절한 눈빛으로 눈꽃을 바라본다. 내년에도 저 눈을 볼 수 있을까? 꽃잎 같은 눈은 이내 진눈깨비로 변해서 회색 도시를 휘감고는 한바탕 성화를 부린다. 우리네 인생사처럼.
나는 휠체어에 링거를 걸고 병상에 누운 남편을 있는 힘을 다해 안아 일으켰다.
오늘도 처치실로 병상 하나 들어가고 통곡 소리 흘러나온다.
2013년 그 겨울을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