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X 디자인, 브랜드에 날개를 달아줘요
단언컨대 나는 브랜드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브랜드의 빛나는 비주얼을 책임지는 디자이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고객에게 제일 먼저 보이는 건 디자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좋은 첫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홈페이지는 물론 포스터, 패키지, 명함까지 모든 걸 바꿨는데… 이게 맞나? 나름 룩앤필은 맞췄는데, 디자인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래픽과 컬러의 통일 이상의 것이 필요한 건 알겠다. 여기저기 조언을 구해보니 브랜드의 경험을 설계해야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단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했던 디자인은 BX가 아니었던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 또한 아직 너무 부족하지만, ‘좋은 BX 디자인이란 진정성, 일관성, 그리고 통합적인 경험을 설계하고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브랜드 운영진과 고객 모두 경험하게 만드는 진정성과,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고 이를 시각화함에 있어 고객에게 일관된 경험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브랜드라는 건 사실 비즈니스 그 자체예요. 그래서 브랜드의 목표와 비즈니스의 목표를 일치시키고, 고객이 기대하는 바를 통합적인 경험 안에서 제공할 수 있어야 좋은 BX라고 생각해요.
무언가 교과서 같고 이상적인 판타지를 말한 것 같아 민망하네요. 하지만 시각적인 콘텐츠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로덕트와 브랜드를 포함한 고객 경험에 의견을 낼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이기도 하고 좋은 BX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나 종이 접기를 좋아했어요. <김충원의 미술교실>도 자주 봤고요. 초등학생 때부턴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아그리파 같은 석고상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물론 그땐 엉망으로 그렸었죠. 디자인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된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산업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2010년도 즈음이었어요. 폴더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과도기였죠. 애플의 디자인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고, 프라다폰이나 롤리팝폰 같은 다양하고 멋진 디자인의 폴더폰이 생산되던 때였어요. 제가 산업 디자인 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예요. 재학 중 감사하게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까지 했지만, 제품 디자인 보단 시각적인 표현을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별은 하얀색 점인데, 왜 오각형으로 그리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넓게 보면 제품 디자인과 시각 디자인 모두 형태와 질서를 만든다는 점에서 동일해요.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시각 기호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별을 잘 못 그렸거든요. 제가 보는 밤하늘의 별은 하얀색의 점과 같은데, 이걸 오각형으로 표현하라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됐어요. 저보고 친구들이 바보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오기가 생겨서 어떻게든 그려보려고 스케치북을 빼곡하게 채우며 연습하기도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렵기만 했던 시각적 기호와 상징에서 매력을 느끼게 됐고, 시각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며 복수전공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B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별하게 영감을 받는 콘텐츠는 없어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유튜브나 비핸스,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을 자주 보고요. 그런데 인스타그램만 봐도 좋은 작업들과 디자이너들이 너무 많아요. 그분들의 작업물을 보면서 또 자극을 얻곤 하죠.
제가 최근에 <The History of Graphic Design>이라는 책을 구매했는데요, 1890년대부터 현재까지 주목할 만한 그래픽들을 아카이빙 해놓은 책이에요. 핀터레스트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도 레퍼런스를 언제든지 찾을 순 있지만, 이런 서적으로 디자인을 보는 재미는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보자마자 바로 구매했답니다.
대학 생활과 삼성 디자인 멤버십 활동을 하며 역량을 쌓은 것 같아요. 산업 디자인학과에서 제품 디자인을, 시각 디자인학과에서는 편집, 그래픽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패키지 등을 배웠어요. 삼성 디자인 멤버십 활동 중에는 삼성전자의 게임 박스 런처와 게임 튜너 같은 서비스 디자인에 참여하고, 여러 에이전시와 협업하면서 브랜드 디자인을 경험해볼 수 있었고요.
사실 UX/UI 프로덕트 분야와 BX 분야 두 가지 중에 고민이 많았어요. 프로덕트 디자인 또한 너무나 재밌고 매력적이지만, 브랜드의 가치와 비전 그리고 목표를 설계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BX 디자인에 훨씬 마음이 끌렸어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도 그랬고요.
회사 업무들은 모두 세분화되어있긴 하지만, BX 디자이너로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프로덕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할 수 있는 게 좋아요.
가장 애정이 남는 프로젝트는 2015년 경희대학교 졸업 전시 아이덴티티 작업이에요. ‘마지막 실험’이라고, 조형물을 조합해서 타이포를 만들었던 프로젝트였죠. 2m가 넘는 오브제를 제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만들었고, 제 사비까지 털면서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노력했어요. 사실 더 기억에 남는 건 “화보 촬영 같아서 재밌다”, “이 사진 평생 소장하고 싶다”라는 선배님들과 동기들의 평가예요. 더 성장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됐었거든요.
“일 잘하고 인품 좋기로 소문났다고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부끄러워요”
탈잉에 합류하기 전에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여러 기업의 브랜드를 디자인했어요. 그러면서 브랜드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깊게 했던 것 같아요. 1인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보면 사실상 브랜드의 가치 설계부터 브랜드 아이덴티티 도출까지 브랜드 전반을 만든 후에 떠나보내는 역할을 하거든요. 제가 만든 브랜드가 잘 성장하고, 브랜드의 가치와 비전이 고객에게 정말 실현되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브랜드 경험을 고객에게 적립시킬 수 있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죠.
평소 탈잉의 브랜드 디자인 변화를 주목하고 있었어요. 한글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브랜드와 서비스 경험을 바꿔나가는 것을 보면서 ‘저 브랜드는 어떤 관점으로 일하고 있을까?’ 궁금해졌죠. 또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을 하고, 여러 가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탈잉이 이야기하는 ‘쓸데없는 재능은 없다, 모든 재능이 콘텐츠가 되는 세상’ 같은 비전에 공감했고 탈잉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탈잉이 성장하는 과정에 기여하고 싶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해요.
다음 주, 장주상 튜터님의 못다 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