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골목에서 비로소 나를 마주하는 법
풍경은 눈으로 보지만, 여행은 결국 발바닥과 코끝으로 기억되는 법이다.
우리는 대개 지도가 그려준 정갈한 길을 따라 걷는다. 유명한 랜드마크 앞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남들이 보장한 맛집의 대기 줄에 몸을 섞으며 그것을 여행이라 부르곤 한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그곳엔 내가 없다. 타인의 시선이 이미 선점해버린 풍경 속에서 나는 그저 관객일 뿐이다.
진정한 여행은 지도 밖으로 한 걸음 내디딜 때,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여 이름 모를 골목의 습한 공기와 마주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곳엔 편집되지 않은 날 것의 삶이 있고,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하는 나의 감각이 있다.
어느 낯선 도시의 뒷골목이었다. 관광객의 소음이 파도처럼 멀어지는 지점, 낡은 창틀 사이로 갓 구운 빵 냄새와 빨래 비누 향이 뒤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그곳의 노인들은 벤치에 앉아 흐르는 시간을 서두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고, 아이들은 이방인의 출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들만의 성을 쌓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카메라 렌즈를 닫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목적지를 잃어버린 발걸음이 가벼워지자, 도시가 품고 있던 은밀한 리듬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활자가 아닌 삶의 맥박이었다.
현지의 분위기에 젖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음식을 먹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속도에 나의 보폭을 맞추는 일이다. 낯선 이와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의 흔들림에 잠시 멈춰 서는 여유. 그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여행의 무늬를 만든다. 완벽하게 짜인 일정표에는 결코 담길 수 없는, 불완전하고 투박한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을 적시는 법이다.
여행은 결국 '나'라는 익숙한 껍질을 벗고, 타인의 일상이라는 낯선 외투를 잠시 빌려 입어보는 과정이다. 그 외투가 조금 크거나 까칠할지라도, 그 불편함이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신호다. 화려한 야경 뒤편에 숨겨진 골목의 적막함, 시장통 상인들의 거친 손마디, 오후의 햇살이 부서지는 낡은 카페의 탁자.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 하나의 도시가 되고, 그 도시는 비로소 나의 내면 어딘가에 깊은 우물을 판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다. 우리는 늘 어딘가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도착지가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무수한 우연들이다. 그 우연이 나를 이끄는 대로 내버려 둘 때, 여행은 비로소 일상의 연장이 아닌 특별한 서사로 기록된다.
오늘도 나는 지도 위를 걷는 대신, 도시의 숨결을 따라 걷기로 한다. 세련된 화보 같은 풍경보다는 주름진 삶의 표정을 더 사랑하며, 정답 같은 루트보다는 오답 같은 방황을 택한다. 그 방황 끝에서 만나는 찰나의 진심들이 모여 나만의 지도를 완성해간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이름 없는 골목의 끝에서 나만의 진짜 여행을 발견한다.
"당신의 다음 여행이 조금 더 특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가 숨겨둔 작은 조각들을 꺼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