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조명 아래에서 비로소 나에게로 돌아온 시간들
어느 해부터인가 크리스마스는 날짜보다 ‘빛’으로 먼저 기억되었다.
12월이 되면 나는 늘 길을 나섰다. 꼭 어디를 가야겠다는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어딘가엔 반드시 나를 기다리는 불빛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명동의 트리는 매년 같은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 앞에 선 나는 매번 달랐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서서 고개를 들어 올리면, 트리는 늘 과장될 만큼 화려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용해졌다. 청계천을 따라 걸을 때는 물 위에 반사된 조명이 발걸음을 늦추게 했다. 사진을 찍으려 멈춘 순간보다, 찍고 난 뒤 다시 걷기 시작하는 그 짧은 틈이 오래 남았다.
부산의 겨울밤은 또 달랐다. 광안대교 불빛이 바다에 풀어질 때,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날짜’가 아니라 ‘풍경’이 되었다. 차가운 바람에 목도리를 여미며 서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추위를 핑계로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서도 괜찮았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서는 사람보다 불빛이 더 많았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용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크리스마스는 소란이 아니라 숨 고르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런 명소들을 다니며 깨달은 건,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이유는 장소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같은 트리, 같은 조명, 같은 음악이어도 그해의 나와 함께한 사람이 다르면 기억의 온도는 전혀 달라졌다.
사진 속에는 반짝이는 불빛만 남았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건 그날의 공기와 대화의 속도, 그리고 괜히 오래 머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사람 많은 곳을 일부러 피해 평일 저녁을 고르고, 완벽한 구도 대신 흔들린 사진을 남겼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잘 찍힌 사진보다, 잘 지나간 하루로 남았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어디가 좋다더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불빛이 켜지는 순간, 잠시 멈춰 서서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 화려한 명소든, 조용한 산책로든 그곳에서 내가 조금 느려질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크리스마스는 결국 우리에게 한 번쯤 숨을 고르라고 건네는 계절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올해도 나는 또 어딘가의 불빛 아래에 서 있을 것이다. 특별하지 않아 보여도, 분명히 기억될 밤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