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르 자유여행, 혼자라서 더 선명했던 지도 한 장

지도가 접히는 자리마다, 마음이 먼저 펼쳐졌다

by 하루담음

공항의 자동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아니라 “혼자라는 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지도를 확대했다가 줄였다. 오도리 공원은 도시의 숨처럼 길게 누워 있었고, 삿포로역에서 스스키노까지 이어지는 선들은 마치 실을 당기면 매듭이 풀릴 것 같은 단순함을 가지고 있었다. 남북선, 동서선, 도호선. 세 줄만 외우면 된다는 사실이 그날의 나에겐 작은 구원처럼 느껴졌다. 자유여행이란 결국, 길을 잃을 권리까지 챙겨야 하는 일이니까.


낮에는 오도리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눈이 쌓인 벤치와 어깨를 맞댄 나무들 사이로, TV 타워가 “여긴 지금”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도엔 점으로만 찍혀 있던 장소들이 실제의 크기를 가지는 순간, 사람은 이상하게도 안심을 한다. 길이 눈에 들어오면 마음이 덜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지도에 저장해둔 핀들을 테마별로 나눴다. 커피, 식사, 산책, 잠깐의 피난처. 목적지가 아니라, 나를 살릴 장소들로.


저녁이 되자 스스키노의 불빛이 물결처럼 번졌다. 라멘집 앞 줄의 끝을 가늠하며, “오늘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다음 날 아침엔 장외시장에서 뜨거운 국물과 차가운 공기를 번갈아 마셨고, 오후에는 오타루로 향했다. 기차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여행의 속도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정하다는 걸 알려줬다. 운하에 불이 켜질 무렵, 혼자 서 있는 시간이 외롭다기보다 선명했다. 누구의 일정에도 끌려가지 않는 날의 투명함.


삿포로에서의 자유여행은 거창한 모험이 아니었다. 지도를 펼치고, 접고, 다시 펼치는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 컨디션을 읽는 법을 배웠다. 무리하면 길이 삐뚤어지고, 쉬어가면 동선이 부드러워진다.


여행의 지도는 도시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결국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날은 지하철 1일권이 든든했고, 어떤 날은 한 블록을 천천히 걷는 것이 더 멀리 가는 방법이었다. 돌아오는 길, 화면 속 핀들이 여전히 반짝였지만 나는 알았다. 이제는 지도가 없어도, 내 마음의 중심선이 어디쯤인지.


자유로운 삿포르 여행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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