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는 이름의 도망
누군가에게 주말은 휴식이지만, 나에게는 늘 도망에 가깝다.
평일 동안 쌓인 말들, 미뤄둔 감정들, 아무렇지 않은 척 눌러두었던 생각들이 금요일 밤이 되면 갑자기 무거워진다. 그럴 때면 나는 이유도 목적지도 없이 가방을 꺼낸다. 크지 않은 가방 하나면 충분하다. 오래 머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잠깐이면 된다. 숨만 고를 수 있으면.
기차 창가에 앉아 바깥을 보면, 익숙한 회색 풍경이 조금씩 옅어진다. 건물 사이로 보이던 하늘은 넓어지고, 신호등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마음이 따라온다. 몸은 이미 떠났는데, 마음은 늘 한 박자 늦다.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는 괜히 말이 줄어든다. 파도 소리는 사람의 생각을 압도할 만큼 솔직해서, 복잡한 말들이 설 자리가 없다.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특별한 깨달음이 없어도 괜찮아진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이렇게 귀한 줄, 주말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산이 있는 곳에서는 걸음이 느려진다. 목적 없이 걷는 일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는 서두르지 않고 계절을 맞이하고, 바람은 아무 대가 없이 시원하다. 그 앞에서 내가 그렇게 급할 이유가 있었나 싶어진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 위에서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돌아갈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멀어지는 기분일까. 파도가 배 옆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잠시나마 내가 일상에서 지워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누구의 역할도, 책임도 아닌 상태로 존재하는 시간. 짧아서 더 선명하다.
주말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그 짧음에 있다.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에 풍경을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돌아갈 걸 알기 때문에 순간을 붙잡게 된다. 그래서 사진보다 기억이 많아지고, 일정표보다 감정이 남는다.
돌아오는 길은 늘 조용하다. 가방에는 기념품보다 세탁할 옷이 더 많고, 마음에는 대단한 결심 대신 “그래도 괜찮다”는 문장 하나가 남아 있다. 그 문장 하나면 다음 주를 버티기엔 충분하다.
주말은 도망이지만, 동시에 돌아오기 위한 연습이다. 잠깐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일. 그래서 나는 다음 주말도, 또 훌쩍 떠날 것이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주말 여행이 필요한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