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을수록 장바구니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낯선 도시에서 가장 익숙한 풍경은, 의외로 계산대 앞의 줄이었다.
처음 나고야의 밤거리를 걷다 마주친 돈키호테는 여행자의 시간을 느슨하게 만든다. 밝은 조명과 끝없이 이어진 진열대는 “조금만 보자”는 다짐을 번번이 무너뜨린다. 여행의 피로가 발바닥에서 올라오면, 사람은 합리보다 위로를 고른다. 그날의 장바구니에는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먼저 담겼다.
의약품 코너에서 나는 일본의 생활을 훔쳐본다. 소화제와 진통제, 파스는 설명을 읽는 동안만큼은 현지인이 된 기분을 준다. 간식 코너로 발걸음을 옮기면 결정은 더 빨라진다. 말차 과자, 지역 한정 초콜릿, 바삭한 쌀과자. 포장은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얼굴이다. 화장품 코너에서는 “선물”이라는 명분이 등장한다. 결국 나를 위한 것이 가장 먼저 계산대에 오른다. BEST 10을 꼽자면, 늘 손이 가는 것들이다.
소화제와 진통제 같은 기본 의약품
온열 파스
말차·지역 한정 과자
킷캣 변주 시리즈
컵라면 한정 맛
립밤과 핸드크림
마스크팩
비타민 젤리
유자·녹차 음료 파우치
여행용 잡화
이 목록은 정보라기보다 경험에 가깝다. 밤마다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이유가 있어서다.
돌아오는 길, 봉투가 무거워질수록 마음은 가벼워졌다. 쇼핑은 소유가 아니라 기억을 들고 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고야의 돈키호테에서 산 것들은 집에 와서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피곤한 날의 파스, 늦은 밤의 과자,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향. 그렇게 여행은 일상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필요와 욕망의 경계에서, 나는 오늘도 계산대를 지난다.
쇼핑 리스트 너머의 감정, 조금 더 천천히 풀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