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선택을 하고 있다
여행은 공항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다.
항공권을 검색하는 밤은 늘 비슷하다. 날짜를 바꿔가며 가격을 비교하고, 한 번쯤은 “조금 더 기다리면 내려갈까”라는 생각을 한다. 여행은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 서 있다. 언제 갈 것인지, 얼마를 쓸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을 얼마나 믿을 것인지까지.
예전에는 항공권 가격을 운에 맡겼다. 싸면 좋은 거고, 비싸면 그럴 수 있다고 넘겼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여러 번 다녀오면서 알게 됐다. 항공권 가격은 우연이 아니라 흐름이라는 것을. 연휴가 겹치는 시기엔 이유 없이 비싸지고, 아무 일도 없는 달엔 조용히 내려간다. 가격표에는 늘 그 나름의 사정이 담겨 있었다.
특히 상반기 일본 항공권은 더 그렇다. 신정과 설, 벚꽃 시즌, 골든위크까지. 여행자의 기대가 몰리는 시기에는 가격도 함께 올라간다. 반대로 그 사이의 애매한 시기, 모두가 주목하지 않는 달에는 의외로 합리적인 선택지가 나타난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일수록 ‘가장 좋은 때’보다 ‘덜 붐비는 때’를 고른다.
항공권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졌다. 가장 싼 가격보다, 총비용을 보게 됐다. 수하물, 좌석, 시간대까지 포함한 현실적인 금액. 싸 보였던 티켓이 결국 가장 비싸지는 경우를 몇 번 겪고 나서야 생긴 습관이다. 여행은 숫자로 시작하지만, 결국 경험으로 남는다. 그 시작이 불편하면 여행 전체가 어긋나기 쉽다.
언제 사야 가장 싼지를 묻는 질문은 사실 조금 다르다. 내가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에 더 가깝다. 붐비는 시기를 감수하고 떠날 것인지, 한산한 공기를 택할 것인지. 가격은 그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항공권을 고른다는 건 단순히 이동 수단을 예약하는 일이 아니라, 여행의 리듬을 미리 정하는 일이다.
돌아보면 기억에 오래 남은 여행들은 대부분 항공권이 싸서 떠난 여행이었다. 계획이 느슨했고, 마음이 가벼웠다. 공항에서부터 서두르지 않았고, 일정에도 여백이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많은 기대를 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여행들은 지금도 이상하게 편안한 온도로 남아 있다.
가장 편안했던 여행은, 가장 저렴했던 항공권에서 시작된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