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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쥐꼬리 May 10. 2024

국제커플이 호주에 사는 이유

장거리 연애가 싫어 워홀 가는 커플이 있다?!


*지난 글 <나는 어쩌다 한 달 만난 그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갔는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먼저 읽고 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작년 7월의 어느 날,

난 미리 예약한 뮌헨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나리타 공항에 대기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체크인을 할 때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언제 돌아올지 몰라 편도 항공편만 예약한 나에게 항공사 카운터 직원이 '독일은 왕복 항공권 예약이 되어있어야 입국이 가능할 거야. 비행기 타기 전에 예약하는 게 좋아.'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 가는 유럽 땅인데 입국이 안 되어 국제미아가 될 수는 없다. 급격하게 불안해진 나는  나리타 공항 대기석에서 다리를 달달 떨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검색했다. 그런데 뮌헨은 물론,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천으로 가는 항공편은 편도임에도 불구하고 150만 원을 웃도는 가격이었다.


절망에 빠질 찰나, 문득 아빠의 항공사 마일리지가 가득 쌓여 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고, 나는 바로 한국에 계신 아빠께 연락을 했다. 원래 여행 일정대로라면 도쿄 이후에 싱가포르에 있어야 할 내가 돌연 뮌헨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하니 아빠는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다.


막내딸이라고 나를 애지중지 키워주신 아빠께 차마 한 달 사귄 남자친구를 따라 유럽에 간다는 소리를 못 하고, 결국 일본에서 만난 친구에게 초대를 받았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 아빠는 내 거짓말을 일단은 믿어주셨고 설명드린 대로 항공사 마일리지 사용을 허락하셨다. 그렇게 나는 아빠의 소중한 5만 마일리지를 사용하여 30만 원대에 한국행 항공권을 겟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뮌헨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혼자 타는 장거리 항공편, 게다가 경유까지 하는 건 처음이라 많이 걱정되었는데 생각보다 별 게 아니어서 괜히 걱정했다 싶었다. 에티하드 항공은 처음이었는데 중동식으로 나오는 기내식도 맛있었고 좌석도 널널해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다만, 승객 전체 중에 동양인은 절대적으로 적어서 조금 낯설고 불편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 출신인 내 남자친구

장장 16시간 비행을 거쳐 나는 뮌헨 공항에 도착했고 나보다 하루 전에 뮌헨으로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요한이와 헤어진 지 만 하루 만에 우리는 재회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상봉한 우리는 바로 우리를 데리러 온 요한이네 남동생 차를 타고 요한이네 마을로 왔다. 뮌헨 공항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오스트리아 북부 시골 마을에 도착한 나는 그의 가족은 물론 친구, 친척 등 그와 가까운 모두에게 나를 소개하고, 소개받느라 한동안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의 어릴 적 친구들에게 초대를 받아 다 함께

비치 발리볼을 즐기기도 하고, 이웃 어르신의 환갑잔치에 초대받아 오래전 포항에서 근무했던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던 잊지 못할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우리는 요한이네 외삼촌 소유의 빈 집에서 지내며 비엔나의 다양한 명소를 관광하고 도쿄에서 만났던 독일 출신 친구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요한이네 외삼촌, 외숙모님께서는 따로 시간을 내서 식사를 대접해 주셨는데 외숙모님의 들뜨고 즐거운 기운이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래도 내가 요한이의 첫 여자친구이기도 하고 게다가 그 여자친구가 먼 동양에서 온 외국인이라고 하니 다들 신기해했던 것 같다.



우리는 비엔나를 떠나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한 잘츠부르크도 가고, 요한이의 여동생이 있는 인스브루크도 여행했다. 이곳에서 요한이가 일본에서 만난 동향의 친구도 만나고, 오사카에서 우연히 만난 오스트리아인 커플도 다시 이곳에서 만나고, 요한이와 똑같이 생긴 여동생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나보다 요한이가 더 들떠있었던 여행. 오스트리아 출신이긴 하지만 비엔나나 잘츠부르크와 같은 관광지를 가볼 일이 없어서 그도 이번에 처음 와본다며, 나를 보며 다 내 덕이라며 고마워했다.


열심히 여행하고 돌아오니 이제 곧 헤어질 시간.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얘기했던 대로 함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자며 계획을 세웠다. 원래라면 나는 혼자 내년에 호주로 갈 생각이었지만 1년 당겨서 가버리기로 결정했다. 3개월 뒤, 호주로 함께 떠나기 전에, 요한이가 한국에 잠깐 들러 2주간 있다가 퍼스로 가는 일정으로 계획했다.



그렇게 3개월 뒤를 기약하며,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우리의 장거리 연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그와 내가 버텨야 하는 시간은 3개월. 그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오해가 생겨 싸우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화해하고 그렇게 사랑을 확인하며 지냈다.


국제커플의 숙명이자 통과의례인 장거리 연애. 이때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상당히 괴로웠어서

나와 요한이는 지금도 최대한 장거리 연애는 피하려고 한다.



괴로웠던 3개월이 지나고 그해 10월 16일.

그가 내가 사는 한국에 도착했고 우리는 찐한 입맞춤과 함께 상봉했다. 2주간 서울에 있는 내 가족과 친구를 소개해주고, 제주도도 다녀왔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사귄 지 4개월 만에 서로의 가족, 친구들을 다 만나버리는 초스피드 연애를 해온 것 같다.



그렇게 2주 후, 11월의 둘째 날에 우리는

호주에 도착했고, 같이 산 지도 벌써 6개월이나 되었다. 결혼한 신혼부부들도 살림을 합치면 처음에 많이 싸운다던데 놀랍게도 우리는 싸우거나 다투는 일 없이 상당히 잘 지내고 있다. 물론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둘 다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 요한이가 문득 이런 식으로 말했다.

'우리가 사귄 지 곧 1년, 같이 산 지는 6개월이라니,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

같이 살부대 끼며 살면서도 나와 함께 지내는 게 가끔은 꿈같다는 그이기에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또 무슨 바보 같은 소리인가 했지만 점점 그 말에 공감 간다.


곧 2년 차 국제커플, 들으면 누구나 감탄하는 인상적인 러브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비자나 금전적인 문제 등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우리의 첫 여정인 호주에서 앞으로의 일들을 고민하며 차근차근 나아가고자 한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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