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부지는 좋아하니까
경상북도 청도군 산골짜기 구석진 곳에 외가가 있었다. 깎아진 절벽을 조심스레 차를 타고 들어가면 그곳에 몇 채 되지 않는 마을이 있었다. 3G폰을 사용할 때만 해도 외가에 가면 전화도, 인터넷도 터지지 않았다. 지금은 외조부모님들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집은 처분되고 없다. 다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평생을 지어오신 과수원의 일부를 우리 집은 물려받았다. 어무니는 농협 조합원 소속의 농부가 되었다. 아부지는 직장을 다니며 주말농장을 짓는 반 직장인 반 농업인이 되었다.
전문 농업인이 아닌 내가 봐도 복숭아 농사를 짓기에 좋은 땅은 아닌 것 같다. 경사가 가파르고 멧돼지들은 수시로 나무를 부셔놓았다. 먼 놈의 새들은 수시로 복숭아를 다 파먹어버린다. 아부지는 주말마다 가서 모기장 같은 것을 과수원 전체에 두르고 나무를 보수했다. 유튜브에서 무언갈 보셨는지 이젠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 같은걸 군데군데 설치했다. 이러면 멧돼지가 도망간다나 뭐라나.
농약값이니 비료값이니, 과일마다 비닐을 씌우고, 아부지가 유지 보수하는 비용들. 몇 년간 나무가 자라기까지 복숭아가 많이 달리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서 우리집 과수원은 몇 년째 적자를 보고 있다. 들이는 노동력까지 고려하면 사서 고생도 아니다. 돈 받고 일하는 '체험 삶의 현장'이 아니다. 돈 내고 고생 중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과수원을 물려받은 어무니가 최고의 농업인이어야 맞지만 어무니는 농사일에 대해 잘 모른다. 현명하다. 농사일은 힘만 들고 남는 것도 없다. 안 배우는 게 차라리 낫겠단 생각도 든다. 외할부지는 잘만 농사지었는데, 아닌가?
고등학생 때는 학업을 핑계로 과수원일에 불참하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복숭아 농사에 대해 난 이해하고 있는 바가 크게 없기 때문에 어른들이 따놓은 복숭아를 나르는, 건설일로 비유하면 일용직 잡부가 되었다. 뙤약볕이 드는 여름이면 아, 복숭아 수확할 때가 되었구나. 타지에서 근무 중이지만 여름만 되면 과수원이 생각난다.
아부지 올해는 복숭아 많이 열렸나 우째대노
어느 해는 복숭아가 많이 열리지 않았다. 새들이 다 파먹고 없단다. 내가 도울만큼 일손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해는 어느 과수원이건 주렁주렁 열려서 수확해도 돈이 되지 않았다. 또 다른 해엔 적당히 열려서 내가 일손을 도우러 내려간다. 그래 좋다. 비록 적자만 나는 농가이지만 아부지가 농사일을 좋아하니까.
근데 나는 어울리지 않게 풀독이 있다.
풀들에 맨살이 쓸리다 보면 두드러기가 온몸에 올라온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체질이 아닌가 보다. 옻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옻을 옮은 거처럼 온몸이 가렵다. 다행인가 싶다. 나는 농사일을 못하게 태어났구나.
집에는 늘 험달이 복숭아로 가득하다. 험달이는 네이버에 검색해도 뜻이 나오지 않는다. 벌레가 먹거나 일부가 썩어 상품성이 떨어진 과일을 험달이라고 한다. 그거 하나 좋다. 온갖 방법으로 복숭아를 먹어치운다. 올해는 우째 농사가 잘 되고 있으려나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