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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제웅 Apr 02. 2022

삐둔 날 읽는 '휴남동 서점'

오늘 하루 삐뚤 하네요

 대개 읽을 책을 교보문고에서 찾는다. 베스트셀러 중 흥미가 가는 인문학, 철학, 에세이, 소설류를 살피며 앞으로 읽을 몇 권을 주문한다. 특별한 선별 기준은 없다. 요 며칠간은 소설류를 읽고 있다. 다만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영양제의 도움이 없던 나였다.


 '세인트 존스 워트', 꾸준히 먹고 있는 영양제다. 작은 우울증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플라시보인지 모르겠지만 도움을 받고 있다. 영양제를 먹지 않은 날에 나는 자주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으면서도 그러했다. 어제의 나는 '참 따뜻한 책이구나'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오늘의 나는 달랐다. 책에 전반적으로 큰 사건이 없었다. 따뜻한 서점을 배경으로 주변 인물들의 삶을 녹인 책. 그래 이런 책도 있어야지. 


 근데 소설의 전개가 엉망이다! 따뜻한 감정을 300페이지에 늘려 쓴 것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고 싶다. 이 책이 내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줄 거 같지 않다. 되려 말랑한 젤리를 과다 투여한 느낌이다. 한두 개 씹을 때나 좋았지. 거부감이 든다. 늘 이런 나랑 싸우다 보면 저녁이 된다. 카페 밖 약국을 보면서 약사와 이야기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나와 같이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도 소설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고른 책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책을 고르는데 특별한 기준이 없다. 다만 이 책만 예외이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잘 썼을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책을 열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잘 쓴 책이었는데, 오늘은 아닌 것 같다.


 과거에 에세이류 서적인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라는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마음가짐이었다. 도대체 뻔한 말을 어디까지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속으로 화를 내며 책을 덮었다. 기억나는 내용은 일단 저지르고 후에 감당해보란 이야기이다. 그땐 분명히 별 이야기 없는 책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지금 나의 태도는 바뀌어있다. 이전엔 스스로를 '한 번에 한 개 일밖에 못하는 사람.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지금은 '그냥 저지르고 나서 생각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한다. 다른 취미거리가 생각나면 기존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둘 다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다가 사내 시험일정이 다가오면 공부도 시작한다. 회사일 외에도 여러 가지를 해본다. 그냥 다 해보지 뭐.


 지금 읽고 있는 휴남동 서점! 이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느리게 사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서점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책에서 고민하는 '서점이 자리 잡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따라 생각해보았다. 서점이 자리잡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중고등학생을 위한 참고서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과연 인문학 철학 역사서적 등으로 가득 찬 서점이 유지 가능할까. 책에서 처럼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한 일일까.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들리는 세탁소 같은 서점이 있으면 어떨까.


 또한 서점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꿈꾸는 무언가가 실현되는 게 맞는 걸까. 혹자는 매슬로 욕구 단계 이론은 옛말이라고 했다. 자아실현의 5단계 욕구조차도 1~4단계와 더불어 일어나는 거라고 했다. 순차적이지 않다. 그런 까닭에 '이 서점은 훌륭하게 유지되는 게 맞구나!' 생각했다. 이 책은 꿈을 찾는 사람들의 느린 이야기였다.


 삐뚠 마음이 돌아온 지금의 나는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모든 등장인물의 입에서 조금씩 드러나게 지었을까. 주제를 감추고 녹여낸 것이 얼마나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을까 생각했다. 

'기기승승'의 소설을 만난 거 같다. 첨예한 대립, 갈등 없이 잔잔하게 써 내린 책이다. 어디 하나 마음 졸이는 구간이 없다. 말 그대로 따뜻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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