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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제웅 Apr 03. 2022

이제 곧 30살 아들의 작은 투정

산이 그리도 좋을까

 20살 대학 진학을 위해 집으로부터 나와 산 이후로 집에 들리는 것은 분기 행사가 되었다. 명절에 들리고, 집에 뭔 일이 있을만하면 들린다. 어무니 얼굴을 까먹을 때쯤이면 내려간다. 철부지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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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마다 과수원 농사를 짓는 아부지와 더불어 어무니는 매일같이 산에 간다. 자연인 부부인가 보다. 둘이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소싯적 아부지가 등산을 좋아해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청년 시절 아부지의 사진을 보면 정강이를 덮는 긴 빨간색 등산용 양말이 인상적이다. 꽤 멋지긴 하다.


그리고 이제는 어무니가 산이 좋다고 한다. 나도 바다보다 산이 좋다. 유전인가 보다.


산 경치를 자랑하는 우리 어무니


 매번 산 정상을 찍을 때면 사진을 보내온다. 산 정상 경치는 내가 볼 땐 거기서 거기인 걸로 보인다.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화창하고 어둡고의 차이지 별건가. 늘 예쁘다 해줘야 한다. 작은 투정이다.


 700미터 크기의 산. 말이 700미터지 어찌 올라갔나 싶다. 나보다 더 체력이 좋아 보인다. 교대근무에 치여 살며 눈밑에 다크서클이 그득한 나와는 다르다. 군생활도 2년간 교대근무. 20대 전체를 대학생활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규칙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대학생 때도 규칙적이진 않았다.


 최근에는 쿠팡에서 작은 아이스박스도 구매했다. 같이 가는 아줌마랑 얼음물을 넣어 먹을 모양이다. 어느 날 회사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부지 세대의 남자들은 회사가 커뮤니티의 전체라서 은퇴하고 나면 친구가 없다고. 어무니 세대의 여자는 스스로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나이를 먹고서도 친구가 남아있다고 했다. 어무니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아줌마들이랑 등산을 다니고 있다. 맞는 말 같다.


 아무래도 전국 모든 산을 다 등정할 생각인가 보다. 50대 여사님은 작은 엄홍길이 되었다. 등산스틱 두 개로 어디까지 올라가려나 궁금하다. 어무니가 이제 50대 중반이니까 평생 산을 탄다면 앞으로 30년은 더 탈 수 있다. 지구 전체의 산도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해외의 산을 같이 가보지 못했다. 나도 어무니도 모두 해외여행의 경험이 없다. 이는 아들로서 참 씁쓸한 고백이다. 내가 해외에 안나가 본 것은 그렇다 쳐도 어무니는 아직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도록 해외에 나가보지 못했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딸 같은 아들 노릇을 늘 생각한다. 쉽지 않다. 내 머릿속 구조가 아무래도 친구 같은 딸 노릇은 못할 모양이다. 아직은 친구와 여자 친구랑 노는 것이 즐겁다. 혼자 노는 건 더 좋다. 엄마랑 노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다만 어릴 적 늘 들리던 경주, 문경의 풍경이 이젠 지겹다. 집에 들를 때면 과일이나 깎아먹고 누워 쉬고 싶다. 또 미안하다. 그래도 아들만 있는 집이라 든든하다고 했으니까. 위안 삼는다.


 그러게 엄마가 엄마랑 친구 같은 딸을 낳았으면 좋았을 텐데! 또 작은 투정이다. 역할을 대신하기엔 난 너무 독립적인 기질이 강하다. 94년 개띠의 나는 들판을 쏘다니는 개마냥 허우적대며 살았다. '질투는 나의 힘'을 쓴 기형도 시인과 같은 모양이다. 늘 구름 밑을 쏘다니는 개처럼 혼자 이리저리 헤맸다. 곱게 집으로 복귀하는 기질이 없었다. 또다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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