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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제웅 Apr 23. 2022

책을 읽는다는 게 과연

회피일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사랑하고, 읽고 쓰길 좋아하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가득 채워 살고 있느냐고. 도망치지 않고 살고 있는 게 맞느냐고. 여전히 미성숙한 기질이 강한 나는 잘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도 어쩌면 지적 유희를 목적으로 한다는 생각 아래 '내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그것에서 유연함을 얻는 것은 맞다. 지적 대화를 위한 초석이 되고 공감능력도 꾸준히 올라간다. 당연하게도 문해력도 올라간다. 이점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들로 생산적인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 정신은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돼서 뭐? 하는 생각은 왜일까?


계기판을 생각했다


 지난 3년 전 독서를 취미로 하지 않을 때는 내 생각은 늘 급진적이었다. 풀 액셀을 밟아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RPM 계기판을 보는 듯했다. 그것이 유지된다는 것이 꽤나 큰 기쁨이었다. 엔진이 모두 타버리기 전까진 말이다. 다 타버린 후에 나는 멈춰 섰다. 학생스러움이었던 것 같다. 미성숙한 나는 이것저것에 가치를 부여해서 뭐든 하고 있다는 것에 초조하지 않았다.


 이 생각이 그럼 지금은 사라졌는가? 결과를 떠나서 과정을 더 사랑하게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어느 정도 급진적이다. 과정이 전압 떨어진 건전지를 단 미니카처럼 천천히 굴러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쉽사리 견디기 어렵다. 


 젊음이 좋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만 당장 내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가장 유효하지 않을까? 멀리 꿈꿀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도전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과정을 몸소 느낄 수 있기 때문 아닐까? 하루아침에 환갑의 나이와 더불어 1000억의 보상이 주어진다면 거부할 것이다. 나는 높은 확률로 환갑의 나이에 그런 보상을 얻기 어려움에도 그러하다. 입 밖으로 말하지 않지만 과정을 끔찍이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정이 기름때 묻은 다 타버린 엔진이라도 피스톤이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책에 길이 있다는 조언에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정서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목적이 있다면 수용할 수 있다. 백번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와 더불어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음에도 그것들을 내팽개쳐버린 것만 같다. 


 스타트업을 하며 일주일을 내내 불태우는 젊은 CEO를 보며 난 슬펐다. 그들이 가여운 게 아니라 내가 너무 가여웠다. 당장 내일 픽 쓰러져도 웃으면서 링거에 매달려 있을 그들이 정서적으로 더 단단한 사람이 아닐까? 카페 구석진 곳에서 아들러가 분석한 성격들을 읽으면서 괜스레 낡아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 조금은 씁쓸하다.


 질투일까 허영일까. 우월하고 싶은 목적이 내게 있는 걸까? 생각한다. 아니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나는 쉽사리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서는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을 매우 신뢰한다. 실제로 배울 점을 찾으면 어떠한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보다 훨씬 단단하고 세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그 사람도 나를 보며 배우는 바가 있을까?


 정서적으로 유연하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공유하지 않고 스스로만 알아간다면 그것은 종교인에 더 가까운 삶인 거 같다. 지적 유희를 머릿속으로 이해하되 그것을 무언가의 과정으로 바꿀 수 없다면, 허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버스 배차가 20분이 남은 시점에 이런 생각들을 했다. 그리 조급하지 않고 이런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이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느리게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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