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8월 31일은 양력 내 생일이다. 8월 마지막 날이라 대학교를 다닐 때는 늘 여름방학이 끝나는, 개강이 시작되기 직전의 날이었다. 그땐 조금 원망스러웠다. 좋은 점은 내 생일이 지나고 나면 날씨가 시원해진 다는 사실이다.
새벽 5시쯤 깨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허준이 교수님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를 듣게 되었다. 잠이 깰 듯 말듯한 몽롱한 상태에서도 감명 깊게 들은 문장이 있다. 사람은 대개 80년을 살며 일수로 환산하면 대략 3만 일을 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억나는 날은 며칠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날은 수 만일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내가 붙잡고 있는 날들은 어떤 기억으로 자리매김해 있을까? 새벽에 고민했다.
분명 파노라마처럼. 요즘은 더 적절한 표현으로 동영상을 스트리밍 하는 것처럼. 어느 한날이 기억날 줄 알았다. 특히 오늘 같은 생일이라면 무언 특별한 날이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만 내가 억지로 기억하려 했던 날들은 있다. 18년 8월 31일에는 나는 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었다. 큰 용량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나무로 된 긴 테이블이 있는 자리에 앉아 취업을 위한 입사시험을 공부했다. 나는 당시 오늘을 기억하리라 생각했었다. 조금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해 겨울 나는 취업했다.
19년 8월 31일에도 나는 내가 졸업한 학교에 있었다. 남들보다 한 학기 늦게 졸업한 나는 늦게나마 내 졸업식 사진을 챙겼다. 그때도 내 생일날이었다. 안타깝게도 20년, 21년 생일엔 무얼 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오늘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었으리라. 오늘은 내가 일부로 기억해놓고자 글을 남긴다.
비가 주룩 오다가 그친 새벽에 깼다. 허준이 교수님의 축사를 들었고. 아침 운동을 다녀왔다. 수 만일중 며칠을 되새겨보았으며, 좋았던 날들만 선택적으로 기억에 남겨놓은 것 같다. 마지막 20대의 생일을 기억해놓고자. 이번엔 기억에 새겨놓고자 한다.
축사의 내용처럼 나는 길을 잃고 싶다.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고 싶다. 하루하루 온전하게 가득 채워 살고 싶다. 내 앞 길은 사실 너무나 뚜렷하다. 눈이 부신 뚜렷함이 아니라 괜히 선명한 뚜렷함이다. 내 미래를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아니 사실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음을 안다. 남은 약 2만여 일의 삶 중에서 내가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할 날은 얼마나 될까. 더 자유롭게, 더 흩뿌려진 삶으로 뛰쳐나가야 할까? 생일날에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하다. 콜드브루를 한 잔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