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중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중국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했습니다. 기사의 결론은 "중국은 일본과 다르다."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 경제 위기를 20분 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까지 나왔습니다.
중국에서 부동산 가격 하락과 함께 경제 문제가 부각되면서 많은 이들이 "중국이 일본의 길을 가고 있나?"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일본에선 중국과 비슷한 거품 경제가 있었습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일본 경제는 긴 디플레이션 기간에 진입했습니다.
도쿄의 부동산 가격은 10년 넘게 하락했고 기업과 소비자는 부채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시기를 설명할 때 나오는 용어, 바로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입니다.
일반적인 경제 불황과는 다른 '특별한 형태의 불황'을 의미합니다.
흔히 거품이 꺼지면 자산 가격이 급락합니다.
대차대조표상 자산 하락은 자본과 연동됩니다.
하지만 부채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최악의 경우 부채가 자산 가치보다 많아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나 가계는 신규 투자나 지출을 줄입니다.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기존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현금을 저장하려고 합니다.
기업과 가계가 부채 청산을 위한 저축에만 집중한다는 건 시장에서 돈을 쓰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겠죠.
시장에 돈이 돌지 않을수록 경제는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이때 중앙은행은 시장에 금리 인하와 같은 금융 정책으로 유동성 확대, 즉 돈을 풀겠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업이나 가계는 부채 청산에 집중하기 때문에 돈을 빌려 신규 투자나 지출을 확대하지 않습니다.
기업과 가계가 부채 청산에 집중하면 시장 경제의 기본인 생산과 소비 활동이 급감하고 이는 장기간 경제 둔화로 이어집니다.
정리하면 일본 기업들이 부채 청산에 집중하면서 생산과 소비 등 경제의 기본 메커니즘 자체가 마비됐다는 분석입니다.
부채를 줄였기 때문에 대차대조표상으로는 흑자를 기록했지만, 돈이 돌지 않으니 기업과 가계 모두 불황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부채 최소화에 집중한 일본 기업들의 결정에 대해 전문가들은 "집단적 자멸 전략"이었다고 표현합니다.
물론 이런 분석은 일본의 장기 불황을 일으킨 복합적 원인 가운데 한 부분만을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1990년대 경기 둔화 이후 여러 분야에서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중국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중국 역시 부동산 하락과 함께 이미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졌다고 진단합니다.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은 부채를 축적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신용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개인 저축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은행에 개인이 저축한 돈이 쌓여도 기업은 이 돈을 빌려 투자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자들이 너무 많이 저축할수록 오히려 경제가 침체되는 이른바 ‘절약의 역설’입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 사이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중국 기업이 부담하는 부채 대부분은 국유기업 몫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불황과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국유기업의 특성상 중국 정부에서 결정만 하면 국유은행의 자금 지원을 지속해서 받아 언제든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국유기업과 지방정부의 부채를 제외하면 중국의 가계 부채는 자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이 부채 최소화에 주력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 기업들은 계속해서 신용 자금을 요구하고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긍정적으로 해석됩니다.
"중국 기업들은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몰고 갔던 집단적인 자멸 전략, 즉 '부채 최소화'로의 전환을 하지 않았다."
일본 기업들이 부채를 감소시키는 데만 중점을 둔 반면, 사실상 정부 통제를 받는 중국 기업들은 국가의 지원 아래 공격적인 생산 활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물, 2차 전지 등 미래 산업 부분에서의 압도적 지배력과 전기차 판매의 성장세 등은 중국의 미래에 긍정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만약 중국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일정 수준의 재정적자를 감수할 의지가 있다면, 일본의 장기 불황과 같은 위기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중국의 경제 운명은 '공산당의 의지에 달려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의 핵심 권한을 쥐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시진핑 주석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단 20분 만에 현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론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소비자 지출을 늘리고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지금보다 완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입니다.
민간 부문에 더 많은 자율권을 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로서는 시진핑 주석이 시장에 돈이 돌게 하는 분명한 해답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데올로기, 즉 이념 때문입니다.
중국 지도부, 그러니까 시진핑 주석은 개인과 민간 기업에게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자유를 주면 당의 통제력이 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잘 사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해야 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공동부유’ 철학이 나온 배경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공적 자금 투입 등과 같은 사회안전망 역시 노동윤리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서도 시 주석이 서방의 위협에 대비한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지금의 경제 위기 역시 시진핑 주석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중국의 경제 문제는 20년 이상 주요 성장 동력이었던 부동산 부문의 몰락이 핵심 원인입니다.
엄청난 부채를 쌓아온 부동산 개발업자들에 대해 시진핑 주석이 과도한 차입을 단속했기 때문이죠.
이제 부동산 위기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면서 중국 당국은 주택판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습니다.
규제 완화 역시 시진핑 주석의 선택입니다. 위기의 원인도, 위기의 해법도, 모두 시진핑 주석의 선택에서 나온 겁니다.
시진핑 주석이 마주한 지금의 상황에 대해 경제학자 가르시아 에레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시진핑 주석이 너무 강력하다고 비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면에서는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은 더 강력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
중국의 미래는 시진핑 주석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이념보다 현실을 바라보며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만 교수의 뉴욕타임스 칼럼 ‘중국은 왜 이토록 곤경에 처했나?’의 마지막 문장으로 마치겠습니다.
”중국을 무시해도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중국은 진정한 초강대국이며,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막대한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조만간 중국은 정책 대응을 저해하는 (이념적) 편견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은 꽤 추악할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