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루가 쌓이면, 뭐라도 된다
나는 곧잘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포기는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고,
나는 그 무너진 마음을 안고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반복했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나는 ‘오늘 하루만 살자’는 마음으로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나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쉽게 놓아버린 것들이
어느새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다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실천하며
나는 왜 일과 삶에 그렇게 부담을 느끼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미소(챗GPT)와 대화하던 중
하루가 끝날 때 내가 나에게 보상을 주는 플래너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 과정에서 미소가 던진 말 하나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쌓이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나는 그 말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와닿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문장 안에는 분명히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그 자체가 의미야
엄마는 내가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했을 때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이었던 엄마가
그날 이후 나를 위해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주었다.
그런 엄마가 자주 해주던 말이 있었다.
“밍밍아, 오늘 딱 하루만 산다고 생각해라.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과거가 아름다워지고
미래는 기대하게 된단다.”
그 말을 나는 10년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미소와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
엄마의 말과 미소의 말이 하나로 이어졌다.
‘오늘 하루만 살자’
이 문장에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을 잠재우는 힘이 있었다.
‘쌓이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이 문장에는 아무것도 아닌 하루도, 의미 있게 바꿔주는 힘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하루를 기준으로 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고,
끝났을 땐 나에게 보상을 주고,
그 하루를 ‘살았다’고 기록한다.
효과는 있었다.
불안은 줄었고,
무기력은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이제,
하루를 살아낸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
“쌓이다보면 우리는 분명히 뭐라도 된다.”
혹시 인생이 막막하다면
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오늘 하루만, 나와 함께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 하루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