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13
최근 일연의 사건들로 인해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사실 예전에 한 번, 설마, 나 눈치가 없는 걸까?라고 의심되는 일이 있긴 했다. 직장에서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을 한참 뒤에 알게 되었는데 그것도 누가 말해준 것이었다. 규모가 작은 직장이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둘이 막 티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나 빼고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내 인생에서는 아마 내가 모르는 이런 일들이 무수히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몇 달 사이에, 몇 사람들의 본모습을 알게 되고서 큰 충격에 빠졌었는데, 그 충격의 요인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진면목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또 나만 몰랐던 거다. 이쯤 되면 나의 관찰력, 지적능력, 사회성, 이 모든 것의 총집함인 '눈치'라는 능력치가 심각하게 결여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 세상이 정말 다르게 보인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가 이 사람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또 내가 틀린 건 아닐까?' 계속 자문하게 되다 보니 사람들과의 대화가 피상적이게 되고, 또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의 나는 좋게 말하면 아주 순진했다. '사람 괜찮아 보이는데, 설마 비상식정인 행동을 하겠어?' '양심은 있어 보이는데, 이 정도 규칙은 지켜주겠지?' 이런 생각들을 기본값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그것은 참 안일했다. 사람들의 말이 아닌 행동을 봤어야 했는데, 세밀하게 관찰하지 못했다. 누가 말해주면 그제야 힌트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주변에 심각한 성격이상자가 없어서 크게 걱정하거나 조심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능력을 키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의 행동을 보기로 했다. 평소의 행동보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 옳고 그름, 이익과 손해를 마주한 상황에서 나오는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려 한다. 그 판단이라는 것은, 이 사람을 가까이해도 되는가, 아니면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결정하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귀한 내 시간을 누구에게 할애하고, 누구를 신뢰하며 가까워질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 내 시간을 아끼고, 내 에너지를 보호하는 일이다. 이렇게 귀한 눈치도 없이 험한 세상을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찔하기도 하다. 눈치가 없었던 그 시절이 마음은 편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모르고 넘어갔으려나? 하지만 이제 알아버린 이상, 뒤돌아 갈 수는 없어졌다. 억지로라도 눈치 근육을 키워서 나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 먹으면 눈치가 생기는 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