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이 좋은 이유 - 새 달의 첫날

연재칼럼-29

by 오숙하
image.png 사랑스러운 검정고양이와 함께하는 새 달의 시작


옷과 가구는 중고품을 애용하기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그래도 새것이 주는 산뜻함은 여전히 좋다. 새 노트나 수첩을 손에 잡고 처음 펼치고 첫 글자를 쓰기 전의 설렘과 떨림이 좋다. 백지가 상징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또박또박 최선을 다해서 글씨를 쓰다가도 얼마 안 가서는 급하게 메모를 하느라 휘갈겨 쓰게 되어버린다. 결국 나의 급한 성격은 그대로이기에 공백은 나도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채워지기 마련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새 페이지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이번에는 다를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희망이 느껴진다. 새 해, 새 달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날짜가 달라졌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왠지 이번만큼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멋지고 근사한 일들이 생길 것 같다는 착각,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평소와는 다르게 살짝 흥분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 기분 좋게 눈이 떠졌고, 달리기로 출근하려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하루 루틴도 새롭게 정하고, 운동도 더 많이 하고, 더 부지런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의욕이 너무 앞서서일까? 퇴근을 일찍 하고 식사를 하니 꾸벅꾸벅 졸음이 온다 그럼 그렇지. 날짜가 바뀐다고 내 체력이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아무 기대 없이 매일을 똑같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인터넷에서 어느 작가가 남긴 유서를 보게 되었다. 사랑도, 노는 것도, 일적인 성취도 해볼만큼 해봤으니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담담한 문장들 사이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더 이상 해보고 싶은 것, 기대하는 것, 소망하는 것이 없는 상태는 얼마나 막막하고 우울한가. 차라리 바보 같아도 뭔가를 바라고, 궁금해하고,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똑똑해도 행복하기 힘들겠구나. 다행이다. 적당히 눈치가 없고, 기억력이 나쁘고, 머리가 안 좋아서, 내일이, 이번 달이, 올해가 기대가 된다. 이번만은 전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에 오늘도 나는 또 자신에게 한 번 더 속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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