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미련, 집착 - 왜 버리지 못할까

연재칼럼-32

by 오숙하

한 달 전쯤 소중한 친구에게 너무도 귀여운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들이 들어있던 포장지마저 마음에 쏙 들었다. 아쉽게도 포장지 한쪽이 찢어져서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기에는 어려웠다. 귀여운 캐릭터를 보면 따라서 그려보곤 하는데, 이 포장지에 있는 디자인들도 한 번씩 따라 그려볼 마음으로 책상에 올려두었다. 달빛이를 닮은 고양이 캐릭터를 하나 따라 그려보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 후로 포장지는 책상 위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한 달을 넘게 방치되어 있었다. 책상을 정리할 때마다 손에 들었다가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종이 재활용함에 넣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쓰지 않는 물건이 책상 위에 오래 머물러있으면 이상하게도 다른 물건들도 제자리를 잃고 여기저기 흩어지게 된다. 누군가가 잡동사니를 '보류된 결정'이라고 칭하는 걸 듣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은, 그것들의 제자리를 정해주는 일을 내가 미루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미뤄둔 일들은 하나둘씩 쌓여가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늘어난다. 책상이 물건으로 덮여서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귀여운 포장지의 사진을 찍은 후 곱게 접어서 재활용함에 쏙 넣었다. 이렇게 쉬운데 왜 한 달이나 걸렸을까? 이 선물을 준 친구의 그 마음에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취향을 잘 알아서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골라준 친구의 애정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귀여운 그림들을 어떻게든 소유하고 싶었던 거다. 무언가의 귀여움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게 무슨 뜻인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오랫동안 가지고 있고 자꾸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어떤 것의 귀여움은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 순간 느끼고 행복해 할 수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완전히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내가 저 귀여운 그림들을 바라보고, 따라서 그린다고 해도, 나 자신이 저렇게 귀엽게 될리는 없거든. 그 귀여움의 속성이 내 일부분이 되진 않거든. 그리고, 귀여운 것들에 둘러 쌓여서 공간을 내주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정리되고 여유가 있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 신기하게도, 포장지와 작별을 고하고 나서 책상 정리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 후에는 정돈된 책상에서 포장지 사진을 보면서 몇 가지 이미지를 따라 그렸다. 한 참을 몰두해서 그렸지만 똑같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내가 그리면 귀여움이 많이 부족한 다른 그림이 되어버린다. 역시 남의 귀여움을 내 것으로 하기엔 역부족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련과 집착을 버리기까지 한 달이나 걸렸다. 이제야 후련하다.


image.png 귀여운 선물 포장지를 재활용함에 넣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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