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연재칼럼-2

by 오숙하

작년의 마지막 날, 늘 하던 것처럼 새해 정했던 목표를 돌아보고 얼마나 실천했는지 점검을 해보려다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2025년 초에 세웠던 계획들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막연하게 말수를 줄이고, 더 강해지자는 표어를 정해두긴 했었는데 (이 표어를 자주 쓰는 패스워드로 정해두었던 덕분에 이것만은 간신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치로 전환할 수 없는 목표들이라 연말정산에 포함시킬 수가 없었다. 다른 목표들도 그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렸으니 지켰을 리 만무했다. 일 년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 같은 허무함을 느끼며 새해를 맞았는데, 우연히 'micro-experiments', 즉 '미세한 실험'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런 내용이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지 못해서 실망감을 느끼는 대신, '실험'을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 달 동안 설탕 끊기'라는 다소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10일 동안 설탕 섭취를 하지 않았을 때 건강과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관찰하기'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는 것이다. 아마도 약간의 체중감량과, 피부 개선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가설도 세워보고, 예상되는 후유증이 실제로 나타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목표 달성의 성패만을 결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동시에 피실험자와 연구자가 되는 것이다! 뼛속가지 선비이고 문과인 나에게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패턴을 관찰한다는 발상이 낯설게 다가왔는데,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과학자나 연구자들은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직업인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혹시 자신도 모르게 일상 속에서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주변에 이과인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는 게 아쉽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자가실험의 개념에 '마이크로'라는 접두사가 붙는다는 점이다. 즉 실험을 하되, 아주 아주 미세한 실험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너무 크고 원대한 목표 설정을 하기보다는, 일주일 정도의 단기간 동안 집중해서 기록하고 관찰할 수 있을 난이도의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정한 나의 실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주제 - 일주일간 아무 생각이나 목적 없이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폰게임을 하거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새 글들을 다 섭렵하는 행동을 멈춰본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가설 - 1.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조금 늘어날 것이다.


2. 눈의 피로가 조금 감소될 것이다.


3. 정신이 맑아지고 생활에 활력이 조금 늘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는 단어의 반복이 나의 아주 낮은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다.)


예상되는 후유증:


1.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늘 하던 게임을 하거나 즐겨찾기 해놓은 주소를 누르고 나서 자괴감을 느끼고 실험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2. 금단증상이 와서 실험기간이 끝나면 바로 그전처럼 돌아갈 것이다.


3. 일상에 아무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서 죄책감 없이 전에 하던 대로 돌아갈 것이다.



관찰일지- 1일차: 여러 일정이 있는 날이어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 힘들지 않았다. 평소에 안 하던 독서와 글쓰기를 오랜만에 했다. 역시 생산적인 여가 시간이 좀 더 확보되는 것 같다. 보통 자기 전에 생각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는데 피곤해서 금방 잠든 덕분에 아무 유혹도 느끼지 않았다.


2일차: 오늘도 특별히 금단증상이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시간이 남는다는 감각은 없었다. 다른 일로 엄청 바쁘기도 했다. 아마도 휴일이었다면 할 일이 없어서 괴로웠을 것 같은데 워낙 바쁘다 보니 내가 실험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이 실험을 휴가 기간에 시도하지 않는 것이 참 다행이다.


앞으로 5일의 관찰 일지도 계속 추가해 보려고 한다. 이번 실험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면 앞으로 한 달 목표대신 일주일 실험프로젝트에 도전해 볼 의향이 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어떤 현상들이 관찰될지 아주 살짝 기대가 된다. 소소해도 기대할 것이 있다는 건 아무튼 좋은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해 볼 가치가 있다.
3일차: 바쁜 일정이 있어서 무사히 넘김.
4일차: 무심결에 자주 가던 커뮤니티 주소를 누르고 화들짝 놀랐다. 집에서 늘 앉아서 인터넷 서핑을 하던 자리에 가니 반사적으로 행동이 튀어나온 듯.
5일차: 퇴근이 늦어져서 집에 와서 쉴 시간이 거의 없었다. 무사히 넘김.
6일차: 나도 모르게 자주 가던 커뮤니티 페이지를 눌러버렸다. 게임을 할 때마다 앉던 소파에 앉으니 게임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약간 금단 증상을 느꼈지만 간식을 먹는 것으로 나 자신을 달랬다. 그 소파 위치를 바꾸던지 해야겠다.
7일차: 자주 가던 커뮤니티 페이지를 눌러버렸다. 하지만 다시 뒤로 가기를 눌렀다. 유튜브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나도 모르게 쇼츠에 눈길이 갔다. 어찌어찌 버텼지만 습관이 무섭다. 계속 바쁜 일정을 만들어서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을 줄여야 금단증상을 덜 느끼는 것 같다.

관측된 변화: 생각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유튜브 쇼츠를 보는 시간이 꽤 길었던 것일까? 7일간 평소보다 더 많은 루틴을 소화할 수 있었다. 가끔 한두 시간 정도 자유롭게 인터넷 세상을 누비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크게 어렵지 않게 제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좀 더 해볼까? 이틀에 한 번 해볼까? 다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생각 없이 폰에 열중하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결론: 엄청난 변화는 없었지만 확실히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 여유 시간에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았던 것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아마 아무 할 일이 없었다면 심심해서 금단증상을 느꼈을 것 같다. 머리도 좀 더 맑아진 것 같고, 생각이 조금 더 정리된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 해보고 싶다. 이 실험 결과는 아주 긍정적이다. 나의 가설이었던 눈의 피로도의 감소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여유시간 확보와 생각이 정리되는 감각에는 효과적이었다.


앞으로: 이틀에 한 번 짝수날에만 인터넷과 게임을 참아볼까? 아니면 월-금은 참고 주말에만 할까? 근데 당장 내일은 나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밀린 커뮤니티 글이 엄청 많을 텐데 그거 다 읽으려면 하루 종일 걸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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