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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30. 2021

경건한 마감을 위하여

마감과 시작

예전에는 연말연시가 되면 술자리가 무척이나 많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나 지인과 술 한 잔을 기울이다 보면 그동안 못 했던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기분이 좋을 때 마시는 술은 달기만 하고 분위기에 취해 마시게 면 쉽게 과음을 하게 된다.

오래된 관습이지만 연말이 되면 모임이 많고 참석하기 싫은 자리도 일 때문에 얼굴도장을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연말 모임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헤어지기가 아쉬워 1차로 끝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지금도 음주운전 단속을 집중적으로 하는 시기가 연말이며 방송에서도 과음을 하지 말고 연말을 보내자는 멘트도 많이 한다. 

의학정보 프로그램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채널마다 해장에 좋은 음식을 자세히 소개하는 때가 연말이기도 하다.

2000년 전후까지 연말 한국의 전반적 분위기는 먹고 마시는 문화가 관례적으로 팽배했다.

이것은 관습이 악습으로 변한 그릇된 문화이고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창구가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잘못된 악습이 통념으로 굳어진 환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한민족은 옛날부터 음주 가무를 즐기던 민족이고 가난했던 시절 먹고 마시는 기회가 명절과 잔치에만 한정되어 있던 시대 상황과 연관 지을 수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시끌벅적한 식당에 빈자리가 없고 예약도 힘들다.

동창회를 비롯해 동문회, 직장 부서별로 송년회를 겸한 회식 손님들이 단체로 몰리고 음주로 인한 크고 작은 사건도 많았다.

한국인은 유난히 흥이 많은 민족이어서 1차가 끝나면 고조된 분위기가 유흥가로 옮겨졌고 밤을 잃은 연말은 도심 곳곳이 불야성이었으며 귀가를 하려는 사람들은 택시를 잡는 게 무척이나 힘들어 합승을 하는 손님도 많았다.

생각해 보면 한 해의 마감을 술과 함께 요란하게 보내야 할 사유는 전혀 없다.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좋아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유종의 미를 먹고 마시며 보내는 것은 당연히 그릇된 현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얽힌 사회에서 모두가 참석하는 자리를 피하기는 힘든 노릇이고 직장 상사가 주관하는 모임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관행은 지켜야 했다.

요즘이야 시대가 바뀌어서 회식이 근무의 연장이라는 개념도 없고 자기가 싫은 모임에 안 가도 뭐라 할 사람은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의 연말 풍경은 예전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았다.

종무식을 회식과 함께 하는 직장이 많고 민간단체에서도 결산 행사 모임이 연말에 집중되는 이유도 있지만 동양의 전통적인 풍습은 악귀를 쫓고 새로운 해의 복을 기원한다는 종교적 의미와 결합한 민속행사로 떠들썩하게 한 해를 마감하는 전례의식이 연말 분위기에 에 한몫을 하는 까닭도 있다.

서양에서도 광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 축제와 함께 한 해를 마감하는 행사가 많은 것을 보면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을 축제로 달래는 의례는 동서양이 동일한 것 같다.

아쉬움과 상념이 교차하는 마음이 한 해의 끝에서 밀려드는 것은 누구나 공통적이므로 여러 사람이 모여 축제와 같은 행사를 통해 연말을 장식하는 것은 결코 부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과음이 폭음을 부르는 우리네 연말 풍경은 이제는 사라져야 할 과거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종로 보신각 타종식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TV에서는 생중계를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금년을 멀리 지는 종소리에 아쉬움과 미련을 실어 보내는 것이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가까이에서는 크게 들리지만 그 소리는 여운을 싣고 멀리 간다.

어찌 보면 사람의 감정도 종소리와 같아서 가까이에서의 모든 일은 크고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여운과 함께 점차 소멸되는 일상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서양 모든 종교에서의 종소리는 경건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의미이고 그 소리는 멀리서도 들을 수 있다.

모든 종교의식이 경건한 이유는 신과의 교류를 거룩하게 행하는 의미가 크지만 영혼의 소리는 고요한 마음에서만 들을 수 있고 시간의 흐름이란 바쁘고 혼란한 상황에서는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나 시작과 끝은 경건해야 하는 것이다.


연말연시에는 항상 다사다난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던 시간이 마감된다는 의미이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새해의 시작을 나타내는 교차의 뜻이 담긴 단어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은 기대와 희망이 있는 반면 나이가 드는 것이 반가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연륜이 쌓이는 의미이지만 젊음은 조금씩 소멸되는 것이고 사람의 나이는 외모로부터 다가오까닭에 한 해가 갈 때마다 애석한 마음이 드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산다는 것은 시작과 끝의 반복이고 시작에서 끝은 멀게 느껴지지만 끝에 다다르고 나면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이며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의미 또한 부여할 수 있으므로 생명의 가치는 산다는 것에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무의미한 것은 없고 서로 다른 개체의 많고 많은 의미가 모여 세상을 만든다.

삶의 여정 속에는 숱한 사연과 과정이 많지만 복잡하고 힘겨운 일을 겪을 때마다 우리는 성장하고 경험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참으로 바쁘고 힘겨웠던 한 해였다.

혼란한 상황에 창궐한 역병도 견뎌낸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다시 갈 길이 먼 새해가 시작된다.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법은 없지만 고난의 세월이 역사를 쓰는 것이고 힘겨운 시간을 통해 모든 것은 연마되기 마련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까운 사람과 공유하는 정서도 정겨운 일이지만 우리들의 마감이 실체를 잊은 향연으로 변해서는 안된다.

결실을 받아들일 때는 누구나 겸허해야 하고 무엇이든 시작은 신성한 것이다.

해마다 겨울에 찾아오는 한 해의 마무리를 눈 내리는 낭만처럼 아름답게 보낸다면 기대와 희망은 새로운 가치를 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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