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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07. 2022

도를 넘은 종북 사제의 망발

그릇된 사상이 종교를 왜곡한다


본분을 잃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또한 보장받는 사회이며 서로 다른 의견이 모여 정책을 만드는데 민심의 목소리가 긍정적 밑거름이 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몰상식한 천박한 비방 결코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에서 대통령 당선인의 배우자를 콜걸이라 말한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대한민국에는 모독죄가 엄연히 존재하고 법을 떠나 한나라의 원수로 선출된 대통령 후보의 부인을 입에 담지 못할 단어욕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행위이며 이런 망언을 한 장본인이 사제, 종교인이라는데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서가 정치색으로 인해 양극화로 분열됐다 해도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이 존재하는 곳이 한국이며 긍정과 부정, 선과 악의 구분은 명확한 세상이다.

사제는 성경을 통해 사랑을 전파하고 올바른 교리와 진실한 신앙을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거룩한 종교 전례인 미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제사장이란 말 그대로 제사를 주관하는 인물로 가톨릭 성사만을 행하는 위치의 종교인으로 전례를 집전하는 것 외에 교회법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부터인지 편향된 사상에 물든 사제들이 자신들의 소속된 단체의 본분을 잊은 채 막말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사실은 신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랑과 신앙을 전달해야 할 그들의 사명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과거 민주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시작된 정의구현 사제단은 군사독재에 맞서 진정한 정의와 자유를 위해 노력했고 고 김수한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민주주의 시위를 하던 학생들을 체포하러 온 경찰들을 막아서고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지나가시오."라고 말하고 맨몸으로 경찰병력을 막아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지 독재 정권의 총칼 앞에 온몸으로 대항하던 성직자들은 언제부터인가 편향된 정치색으로 퇴색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사랑과 평화를 전교해야 할 사제들이 정치 집회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에서 풀려나자 노무현을 부활한 천주님으로 모시겠다는 망발을 하고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찬양하기도 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 총리는 당 대표 시절 친북을 외치며 시위 현장에서 선동하는 사제들에게

“사제들이 정말로 하느님 말씀과 정의를 위해 순교할 용기가 있다면 안방에서 활개 치듯 안전한 서울광장 촛불시위에 앞장서지 말고 북한에 가서 정의를 구현하고 순교하라. “라고 비판했다.

그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는 사제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들은 바 없다.

연평 해전에서 북한의 도발로 무고한 우리의 젊은 아들들이 사망하고 불구가 된 연평 해전을 정당하다고 어떤 사제가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여론의 목소리가 들끓어 오르자 시국 평화를 위한 행사를 한답시고 관련된 신부들이 모여 단체 미사를 집전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바빴고 거룩한 성전에서 편향된 정치 강론하다 임기 못 채우고 쫓겨나는 신부들이 늘어나도 그들의 ‘정의’를 위한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정의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라 사전에서 서술하듯 정상적이지 않은 언행과 행동을 결코 정의구현이라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진보와 보수로 분열된 사회라 해도 고 그름의 구분은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이고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가의 원수를 천박한 로 비하하는 발언은 정치인 뿐 아니라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 국민들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교회에서 신앙을 전파해야 할 종교인의 태도로 볼 수 없다.

물론 신앙인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있기 마련이고 종교 외에 사회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랑과 신앙을 위한 경건한 성전이지 사제 개인의 정치적 사상을 주장하는 곳은 결코 아니며 제단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만으로도 교회에서 강조하는 신성 모독에 해당되는 행위이다.

종파를 떠나 분열된 곳에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역할이 다름 아닌 종교인의 사명이고 모든 종교는 세속이 주지 못하는 내면의 안식과 영적인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종교인은 자신의 그릇된 말이 직접, 간접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종교를 빙자한 편견은 곧바로 신자들에게 전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요즘처럼 정치적 대립각이 날카로운 시기에는 어떤 상황이든 단체를 대표하는 사람이 다수를 상대로 편향된 사상을 이야기하면 그 단체에 소속된 여러 사람에게 악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종교단체는 신앙적 특성상 강한 전파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소수의 사제가 교회나 가톨릭 단체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그릇된 사고를 다수의 의견인 양 사람들을 호도하는 행동이며 신부나 목사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앙이라 착각하는 어리석은 신자들의 반응에 있다.

진실한 신앙은 신과 자신의 영적 교감이며 기도는 신에게 의탁하고 신께 바치는 영혼의 대화이지 교회가 만든 예식과 전례가 신앙의 전부가 아니며 사제나 목사는 신의 대리인도 될 자격도 없고 신앙의 매개체도 결코 아니다.

세계 어느 곳이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내세우는 집단이 넘쳐나지만 다수의 의견이라 해도 합리적 일수는 없으며 그 다수의 주장은 옳고 그름 보다 정의라는 명분 뒤에는 추구하는 목적이 숨어 있기 마련이고 그 목적은 대부분 이익이라는 공통분모가 단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뿐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정의를 내세운 발언 뒤에 무슨 목적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지만 모든 사회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만드는 것이며 어떤 위치에 있든 혼란을 일으키는 비상식적인 인물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공적인 발언과 행동은 책임을 져야 한다.

주목해야 할 가장 위험한 현상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편향적 사상을 전파하는 선동행위로 이러한 종교인의 행동이 다름 아닌 이단이며 개인의 영혼은 물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범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므로 그릇된 사상과 결합된 종교는 가장 위험한 사회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대부분의 테러리스트들이 사상과 결합한 종교의 희생 재물이고 어떤 내용의 사상이든 신성한 종교 공간을 통해 전파가 되면 가장 효과적으로 세뇌되기 쉽다.

찬양을 하던 비판을 하던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싶으면 교회를 떠나 정당에 가입한 후 정치활동을 하면 될 것이고 사회주의가 좋고 북한이 좋으면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친북, 종북 외치지 말고 그 나라에 가서 살면 될 것이다.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라고 교회에서 부르짖는 사제들이 마더 테레사의 뜻을 기리는 수많은 봉사 수도회의 일원으로 직접 인도주의적 사랑을 실천하면서 가난한 탈북 주민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훌륭한 사제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친북을 외치는 가톨릭 사제가 많은 것은 이미 기정된 사실이지만 진정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실체는 매일 뉴스로 보도되는 전쟁을 일으키고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하는 푸틴의 만행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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