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May 30. 2022

기다리면 얻는 것들

여유의 혜택

한국 사람만큼 빠른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 없다는 얘기는 부모님 세대부터 줄곧 듣던 말이다.

실제로 한국인은 모든 것이 빠르다는 사실을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철에서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비집고 들어가 빈자리에 앉는다.

식당에서 흔히 듣는 말이 "빨리 주세요."이고 배달의 민족답게 주문한 음식은 15분이면 벨을 누르지만 조금만 늦어도 독촉 전화를 하고 택배는 아예 배송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기계의 최신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0.1초라도 빠른 컴퓨터나 휴대폰이 출시되기가 무섭게 품절되고 해당 제품을 사려면 매장에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외국인도 "빨리빨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은 새치기도 한다.

예로부터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는 예의를 중시하고 체면을 지키는 유교 사상이 뿌리 깊은 까닭에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여유가 있던 민족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생활양식이 변하고 역사적으로 가난했던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굶주리지 않으려면 남보다 빨라야 하는 생존경쟁이 빠른 것을 선호하게 된 영향도 있지만 사는 게 여유로워진 오늘날에도 좀처럼 기다리지 못하는 성격은 여전히 대다수가 공통적이다.

게다가 현대문명의 자동화 시스템은 급한 민족의 성격에 불을 지폈고 어쩔 수 없는 현대사회의 모든 구조는 스피드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고 소요되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며 빨리해서 되는 일이 있는 반면 서둘러도 먼저 할 수 없는 일도 너무나 많다.

어찌 보면 빨리, 빨리를 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격 때문이 아니라 빠르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경쟁사회의 질주본능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빨라야 하는 근본적 사유는 다름 아닌 오랜 기간 대를 이어 몸에 밴 습관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되면 모든 생활을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야 하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부터 빨리, 빨리란 말에 세뇌되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급한 성격이 배양되는 것이고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늦지 않으려는 습관에 자연스럽게 길들여진다.

남 보다 빨라야 하고 남들보다 상위로 오르는 것이 최고라 교육을 받고 빨리 승진을 하는 게 성공이라 여기는 세상은 국적이 없다.

빨리 먹기 위한 음식이 패스트푸드이고 0.1초라도 빨라야 금메달을 따는 스포츠 경기에 세계는 열광한다.

늦는다는 것은 정체된 상태로 인식이 되고 빠르다는 것은 역동적으로 이해하는 이분법적 구분이 일반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느긋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휴가 때에나 비로소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세상은 자고 일어나면 법안이 바뀌는 조령모개(朝令暮改)가 현실이 되었고 갖다 붙이면 말이 되는 신조어들이 난무하는데 유행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는 현실이 이미 익숙해진 오늘의 문화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빨라서 얻을 수 있는 일과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일은 구분이 된다는 것이고 시간을 엄수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많다.

그러나 이미 익숙한 생활 패턴의 영향으로 그 구분이 모호하고 모든 일을 빨리해야 마음이 편한 심리가 고정되면 신속하지 못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곧 빠른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로 빠르게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급한 성격이 부정적으로 발전하면 일상에서 심하게 서두르는 강박증으로 연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OCD라 불리는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는 강박적 생각과 행동이 자신을 지배하면서 강한 집착, 규칙적인 행동이 장애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하는데 어떤 생각에 몰입되어 떨쳐지지 않고 반복적 생각이나 행동을 계속하게 되는 증상으로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자신이 정한 규칙이 무너지면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 질환이다.

물론 서두르는 게 습관이 된다고 강박증과 연결을 시킬 필요는 없지만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서두르는 습관이나 모든 행동을 빨리해야 하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는 문제가 된다.

이것은 무슨 일을 볼 때 순서를 기다리다 짜증이 나는 경우와는 다른 것으로 외부 상황 때문에 서두르는 것이 아니고 빨리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심리가 이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삶의 질과 문화 수준의 향상으로 바쁜 일과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취미도 다양하고 자신을 가꾸는 노력이 일상이 된지도 오래됐다.  

정해진 24시간을 유용하게 규칙적으로 스케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일과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는 것도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에 철저하게 배분된 시간을 지키며 사는 사람도 많고 자신이 스케줄에 변동이 생기는 상황은 무조건 피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이런 생활을 매일 반복하며 바쁘게 사는 사람들도 이론상으로는 강박적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바쁜 자신의 생활이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모든 일이 정해진 시간과 규칙적인 일정에 따라 행동하는 획일적인 생활이 대부분이다.

학교, 직장뿐 아니라 사소한 약속도 정해진 시간에 만나는 것이므로 시간을 준수해야 하고 사유 없는 지각이나 결근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의 출퇴근이나 약속 또는 시간 내에 마쳐야 하는 업무가 아니라면 꼭 빠르고 신속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때문에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고 불필요하게 기다려야 한다면 누구나 짜증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급한 상황이나 예기치 못한 일에도 침착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태를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며 기다릴 수 있는 여유는 우선 자신을 편하게 한다.

모든 일은 소요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에 여유가 없고 성급하면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심사숙고해야 할 일에서 실책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문제는 일과 업무에 대한 특징은 알고 있으면서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작용하는 습관이 해가 되는 경우가 많고 지나치게 생활의 틀에 고정이 된 사고가 무의식에서도 반복이 되는 현상이 스스로를 재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오랜 기간 습관이 되면 나쁜 줄은 알면서도 쉽게 고치기 힘든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무슨 일이든 평균적인 상식을 벗어나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며 크거나  사소하거나 개인의 행동 역시 동일한 것이므로 습관이 된 조급한 성격도 부정적이라면 바꿔야 하고 타고난 성격이라 해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개선은 가능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인식하는 변화의 필요에 있다.

그렇다면 서두르지 않는 여유의 긍정적인 장점을 짚어 보자면

첫째, 몸과 마음이 편하다.

둘째,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셋째, 일을 세심하게 처리할 수 있고 실수가 줄어든다.

넷째, 일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는다.

다섯째, 신중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일이나 상황을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경우는 반드시 있고 살다 보면 예상 못한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심하게 사물을 보고 정확하게 인지하는 능력과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습관은 차분한 마음에서 비롯되며 언제나 침착한 사고는 예기치 못한 변수를 대할 때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이란 결코 추상적이지 않은 현실에서의 공감각적 변화이므로 인간이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은 누구나 꼭 같은 시간 속에 사는 영장물(靈長物)이다.

아무리 바쁘고 냉혹한 생존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의 여유는 자신의 내면에서 갖춰지는 소양이며 우리네 인생은 목적도 중요하지만 삶의 여정에서 빨리 가거나 천천히 가거나 이미 들어선 길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남 보다 빠른 질주는 목표로 가는 시간이 단축될 수는 있겠지만 빠르게 획득한 결과가 언제나 충만하지는 않은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타이밍 좋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