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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02. 2022

나 밖에 모르는 세상

팽배한 이기주의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옛말이 있다.

좋게 말하면 인정이 많은 나눔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만 워낙 가난했던 시절에 시대적 애환이 만들어낸 가슴 아픈 속담이란 생각도 든다.

옛날에는 이웃집에서 부침개라도 갖고 오면 빈 그릇을 그냥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감자나 고구마라도 갖고 온 그릇에 담아 보냈던 인정이 있었고 70년에서 80년 대 초까지만 해도 집에 우체부나 관공서 직원이 서류를 전달하러 오면 냉수 한 사발이라도 대접하던 예절이 있었다.

그러나 소박한 나눔의 정을 논하지 않아도 예나 지금이나 유형이든 무형이든 주고받는 게 없다면 정상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해타산이 없는 막역한 친구 사이에도 친구가 한 번 사면 나도 사야 속이 편하고 내가 한 번 사면 친구도 한 번 사야 공평한 것이며 그렇게 주고받는 관계는 무언의 약속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고 가는 정은 말 그대로 정겨운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의미여야지 계산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부담이 된다.

애석한 일이지만 요즘은 가족 간에도 주고받는 정이 거래 관계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온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하면 지난번엔 형이 냈으니 이번에는 동생이 내야 하고 지난 생일에 비싼 선물을 받았으니 이번에는 내가 비싼 선물을 해야 한다는 거래 관계가 가족 간에도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오고 가는 행위를 사랑의 표현이라 이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지만 계산적으로 가격을 따져서 부담이 돼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거래가 된다.

물론 정도 사랑도 상대적이라 주고받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만 나눔과 거래는 다른 의미이다.

가족은 사랑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교감하는 관계이지만 교감은 부담이 되는 격식이 아니며 가끔 연락만 하고 명절이나 경조사에 마지못해 선물이나 현금이 오가는 관계는 교감이 아닌 그냥 교류일 뿐이다.

가족 간의 관계도 거래로 퇴색되는 사유는 진정한 사랑을 보고 배우지 못하며 성장한 까닭이고 먹고사는데 급급하다는 이유로 이기적 습관이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관계가 이처럼 변형된 시대에 친구와 친지의 관계가 계산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겠으나 사실 진정한 우정에는 정서의 교류 외에 주고받는 것은 개입되지 않는 법이다.

나는 안 그렇다고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사는 게 힘들다 보면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 모른다.

특히 자신의 이익이 눈앞에 보일 때에는 남 생각은 사라지는 법이며 이익이 금전과 연결될 경우에는 친구도 형제도 보이지 않는 상황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돈이 개입되면 달라지는  관계는 한마디로 진실하지 않은 관계이며 신의와 믿음은 애당초 없는 사이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득을 제일 먼저 따지는 사람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는 돈이 말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이해타산을 떠나 얌체 짓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꼭 있다.

공짜로 주는 사은품은 하나라도 더 받으려 고 악착같이 덤비는 사람이 자기가 돈을 낼 자리에는 종적을 감춘다.

가장 흔한 경우라면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데 술값을 내지 않는 친구가 있다.

보통 남자들 같으면 소주 값, 한두 번 내지 않는다고 흉을 보거나 눈치를 주지는 않지만 그런 경우가 세 번이 넘으면 아무리 친구 사이라 해도 괘씸한 마음이 든다.

더군다나 돈은 내지 않으면서 이 집 음식이 맛이 있느니, 없느니 음식 타박을 하면 뻔뻔한 인간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경우 하는 짓은 얄미워도 술값 얘기를 먼저 꺼내면 친구들 앞에서 쪼잔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누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술값을 안 내는 사람의 특징은 밥 값도 안 내고 어느 장소에서나 돈은 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인간이다.

상식적으로 돈을 내지 않으려면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말아야 하며 참석하더라도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용히 먹고 일찍 자리를 뜨는 게 정상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개가 냄새를 맡듯 좋은 자리에는 초대도 안 했는데 며느리에 손자, 손녀까지 다 데리고 가서 얻어먹지만 자기가 부조금을 낼 자리에는 빠졌다가 나중에 왜 연락을 안 했냐고 생쇼를 한다.

고마운 분께 인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미루다 미루다 마지못해 싼 식당 찾아서 대접을 하고 선물은 과일 한 상자만 배달 시키면 아주 큰 선물이다.

그래도 설렁탕이라도 한 끼 대접하는 사람은 최소한 양심은 있는 사람이지만 받기만 하고 언제 그랬냐는 속물도 넘쳐나는 시대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다큐멘터리나 실화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에서 아프고 병든 야생동물을 치료해 주고 정성을 다해 보살피면 회복되어 자연으로 돌아간 동물이 치료해 준 사람을 잊지 않고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TV에서 보게 되면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행위는 인간의 도리 이전에 자연의 섭리이자 우주의 원리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렇듯 주위에서 보고 듣게 되는 은혜를 모르는 족속들은 말 그대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배은망덕한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심리를 본전 생각이라는 보상심리의 발현이라 할 수 있고 보상심리(compensation)란 자신이 행동한 만큼의 대가를 받기를 원하거나 자신이 받은 만큼 갚아야 된다는 심리에 기인하는 것으로 긍정과 부정, 양면의 모든 심리를 뜻하고 심리학적으로 자아 욕구 실현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준 은혜를 외면하는 행위는 갚고 안 갚고 보상 차원을 떠나 명백한 배신이며 인간의 도리를 거부한 행위이다.

물론 사람은 힘겹고 어려웠던 과거를 잊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고 꼭 받은 만큼 돌려드려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을 감내한 은인에게 등을 돌리고 은혜를 저버리는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 가까운 친구는 물론 가족도 다시 배신할 수 있는 존재이다.

사람이 변하는 사유는 나름 원인이 있겠지만 예전에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사람이 좋지 못한 인성으로 바뀌는 원인은 성격상의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환경적 영향이 크다.

먹고사는데 힘겹고 어려운 시간이 지속되면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고 자신의 삶 이상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점차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고 소속된 주위의 환경이 각박하고 메마르다면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밖에 없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러한 이기적 심리는 진행이 되며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으로 발전하는 속성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눈앞의 좋은 것을 보게 되면 아무 생각 없이 덥석 손을 내민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덥석 손을 내미는 순간에는 옆에 있는 사람은 생각을 못 하고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조차 생각을 못 한다.

사람의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지만 덥석 손이 먼저 나가는 행동은 자동반사적이이고 사소한 일이어도 본능에 따르는 반응이다.

즉 좋은 것을 먼저 추구하는 행위는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지만 이런 행동이 성인이 된 후에도 자주 반복하게 되는 사유는 가정 교육의 부재와 미성숙한 인격이 원인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자신만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항상 주위 사람도 생각해야 하고 행동 이전에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무의식적 행동이어도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배양된 교육이 부족한 경우이며 자신이 먼저라는 사고는 매너 없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이기적 행동은 변하지 않고 사소한 것에서 큰 것으로 진행되며 이런 습관은 성인이 되어도 계속 발전하는데 이기주의는 발전할수록 양심은 고갈되는 특성이 있다.

그런 사유로 사람들은 점차 속물로 변하는 것이며 예의에 어긋나는 잘못된 행동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고 부모와 형제를 저버리는 족속들의 공통적인 습성은 바닥을 드러낸 양심이 속물에서 패륜으로 진행된 결과이다.

다시 말해 인격적 소양이 없는 사람은 부정적 양상이 여러 가지로 표출될 수 있고 옳고 그름 이전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고가 고착되는 것이다.

부정적 사고나 행동이 환경의 영향이라면 시대적 변화도 한몫을 한다.

나 홀로 가정의 증가는 공유의 개념을 다르게 만들었고 교류의 의미도 사라지고 있다.

한 가정, 한 자녀로 성장한 사람들은 가족 공동체에 익숙하지 않고 친근한 대상이라고는 컴퓨터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을 하고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하면 나 홀로 가정의 가장으로 산다.

직장에서 남들 보다 승진하려면 동료도 경쟁자이고 상사의 자리가 공석이어야 승진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공을 위한 암투는 신입 때부터 보고 배우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아날로그의 정서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스토리일 뿐이고 그릇된 개인주의 물결이 이기적 사고도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세태가 만연하지 않을까 극심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이제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명품 사고 카트 값 걱정이 많겠지만 12월 월급을 받으면 마트 가시는 엄마께는 세련된 머플러를 새벽 운동을 가시는 아빠를 위해 따뜻한 장갑이라도 사 드리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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