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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04. 2023

잘 놀아야 늙지 않는다

유희의 인간

연날리기, 썰매, 제기차기, 말타기, 자치기....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항상 하고 놀았던 추억의 놀이이다.

고무줄과 공기놀이는 교에서도 여학생들이 즐겨하는 놀이였고 두툼한 포장 박스로 만든 딱지는 무거워서 쉽게 뒤집히지 않았다.

팀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오징어 게임은 영화로 화제가 되어 잊었던 추억을 되새기게 했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진화하면서 놀이 문화도 많이 발전했 아이들이 즐기던 컴퓨터 게임은 이제 단순한 놀이가 아닌 거대한 문화 산업으로 성장했다.

동네 친구들과의 놀이가 시들해질 무렵 사춘기 시절에는 FM 라디오와 베스트셀러 소설이 젊은 문화를 시작하는 등용문이었으며 FM 라디오가 전국으로 전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로야구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 당시 대중문화의 창구가 TV와 라디오에 한정되던 때여서 문화를 주도하던 시스템은 방송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 팬덤 문화의 시초가 조용필의 오빠 부대로 시작되었고 그즈음 피자와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한국에 상륙했시기에는 신춘 가곡의 밤, 가을맞이 가곡의 밤과 오페라도 시즌별로 공연을 했고 특히 KBS 교향악단의 공연은 자주 접할 수 있었던 한국 클래식 문화의 매개체였다.

나이가 들면서 세대에 따라 놀이 문화가 변하는 것은 지당한 현상이며 인간은 교육 뿐만 아니라 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지난날 한정된 창구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문화가 다양하지 않았던 까닭에 당연히 즐길 수 있는 문화의 가치는 깊고 지적 감성이 풍부할 수밖에 없었다.

화제작 베스트셀러는 남녀노소 대화의 단골 메뉴였으며 가요계의 인기 순위는 젊은 층의 화제였고 주말마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극장의 모습도 언제나 볼 수 있는 주말 오후의 풍경이었다.

영화가 끝나면 가까운 충무로 소주집에 자리를 잡은 주당들의 대화는 영화의 스토리가 동일한 안주였고 그런 문화는 프로 레슬링이 전성기였던 시절에 장충동 족발집이 붐을 이루던 한국 문화의 단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중문화는 다양해졌고 부유층의 문화였던 고가의 레저 생활도 중산층에 이어 젊은 세대에게도 전파되기 시작했다.

한 나라의 경제 상승은 그 나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세계가 동일하고 일한 만큼 즐긴다는 선진국의 문화가 경제 성장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도 상륙했다.

그러나 어떤 분야이든 선진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데는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이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언제나 수반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문화란 시대적 변화 이전에 한 나라, 그 사회의 특징과 관습, 고유한 정서가 있는 것이고 관습과 정서가 오랜 기간을 거치며 형성되는 것이 다름 아닌 문화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는 반드시 여과 작업이 필요하고 그러한 여과장치는 경제와 산업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생활과 호흡하는 문화에 절실한 것이다.

1997년 한국에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한국의 대중문화는 퇴폐적이라고 할 만큼 사치와 먹고 마시는 문화가 극에 달했다.

술을 마시면 의당 3차까지 가야 했고 부유층의 소비성향은 중산층으로 옮겨졌다.

경제는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지만 국민들의 사치와 향락 문화는 절정에 달했으며 거리마다 사우나와 안마 시술소가 들어서더니 술집들은 유흥가를 벗어나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에도 우후죽순 자리를 잡았다.

특급 호텔 지하에는 빠징코가 성업을 했고 동네마다 헬스클럽이 들어서던 시절이 접대와 회식문화가 번창하던 시기였다.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며 낮 보다 환한 밤을 즐기던 유흥문화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때였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에 "한번 두 번 빠진 향락, 병드는 우리 사회"라는 공익 광고가 등장할 정도였다.

그 당시 정경유착(政經癒着)이란 용어가 신문을 장식했으며 줄을 잘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유행이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성행하던 때여서 룸사롱과 고급 식당의 VIP룸은 청탁과 뇌물이 오고 가는 장소였으며  부유층의 고액과외가 사교육에 불을 지폈고 해외여행이 자율화되면서 봇물 터지듯 너도 나도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무원과 대기업 사원들도 해외연수, 산업시찰이란 명분으로 보너스  해외여행을 보내주었으며 사회적 위화감 때문에 강력범죄도 심각했다.

물론 가난했던 시절의 애환과 군사 독재의 억압 속에 살아야 했던 우리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보상이라는 측면으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과유불급을 실감하게 되는 기간은 지속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5공 군사정권 보다 좋은 세상이 왔다고 자축했으며 각계각층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던 자유의 합창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어 국가 재정에 적색경보가 켜지면서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고 급기야 1997년 IMF 금융위기가 닥치고 말았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풍류와 음주가무를 즐기던 백성이었고 논다는 의미는 잘 먹고 실컷 마신다는 뜻이 강하다.

역사적으로 신분제도에 의해 억눌린 애환과 가난, 외세의 침략에 이은 일본의 식민 정책의 만행으로 명절 때나 배불리 먹었던 시대의 아픔이 놀이를 먹고 마시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 것은 사실이지만 풍류를 즐긴다는 뜻은 속세를 떠나 자연을 즐긴다는 의미로 먹고 마신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양반들이 경치 좋은 자연에서 기생 놀음을 즐겼다는 의미로 변질된 것이다.

그리고 고전에서는 장부가 산 찾고 물 찾으면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놀이를 먹고 마시는 것에 국한시키는 것은 명백히 그릇된 의미이다.

요한 하위징아(John Huizinga)가 쓴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에서는
'놀이란 원시적으로 신성한 의례였고 공동체의 안녕과 우주적 통찰, 사회적 발전에 필수적인 것이었으나 플라톤에 정의에 의해 일상생활의 필요와 진지함에서 벗어나 자신을 드러내고 성취하는 행동이라는 의미로 변모한 것이며 오늘날 현대 교양인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학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놀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원시적 종교와 고등종교의 접근 방법은 다르지만 의례적 행위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모든 의례적 행위의 범주는 놀이에 남아있다.'라고 강조했다.

놀이로 즐길 수 있는 행위는 놀이가 문화로 형성된 원초적 개념을 대중이 이해한다는 사실이며 종교적 의례 또한 놀이에서 비롯되고 변형된 것이란 의미이다.

예술 또한 놀이라는 개념으로 출발했으며 서양의 고전음악은 왕실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한국도 양반들의 잔치에서 풍악을 울렸다는 사실은 분명 놀이가 예술의 장르로 발전한 것은 동서양이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평민들도 좋은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시고 음악과 춤을 즐겼다는 역사는 놀이가 문화로 전승되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플라톤이 말한 일상의 진지함에서 벗어나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놀이라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이에 윤리와 지성이 결여되면 그것은 한낱 잡기이고 유흥 일 뿐 결코 문화와 예술로의 진화는 아니다.

놀이가 문화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함축되고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해야 하며 그 가치가 시대적으로 보편타당한 범위에서 공감된 정서가 형성되는 것이 놀이가 문화로 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경기인 스포츠도 놀이에서 발전한 것이며 즐긴다는 의미로 볼 때 아이들이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승부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하는 행위의 발전이 경기이고 스포츠라면 분명 스포츠도 놀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는 상대가 죽을 때까지 결투를 하는 종목이 있었고 로마의 검투사들을 상대를 죽여야 경기가 끝났으며 콜로세움의 관중들은 잔인한 경기를 보며 열광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경기에 형식과 규칙이 생기고 물론 폭력이지만 상대를 죽이지 않는 게임으로 발전한 것이 오늘의 UFC이고 격투기라면 스포츠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행위는 폭력적 인간의 본성이 승화된 명백한 놀이이며 관중과 시청자가 느끼는 놀이의 개념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문화라는 이름으로 계승된 놀이가 상업적 이득을 위한 기업의 마케팅이고 그에 대한 이윤을 자본가가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면 엄밀한 의미에서는 문화가 상업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며 순수한 문화적 가치는 퇴색된 것이다.

굳이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논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즐기는 자체도 현대의 문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놀이가 문화로 화된 가치란  보편타당한 긍정적인 공감이 있어야 하고 상업적 수단으로 돈을 위한 유희가 방송과 기업에 의해 조장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클래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아니며 대중예술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이 산업으로 거대해지면서 사람들은 그 산업을 문화예술이라 부른다.

어느 시대나 유행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기업이지만 그 상품을 대중이 진정 좋아하고 즐기는 것인지 단지 유행을 따르는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의 몫이다.

그러나 진정 불행한 사실은 방송과 기업이 만들어낸 문화에 대중은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원래 사람이 지적으로 성숙하면 저속한 것은 멀리하고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법이다.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문화는 질의 고하를 떠나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지만 세계 경제 11위의 선진 국민의 문화의 질은 반드시 향상돼야 한다.

1997년 이전의 먹고 마시는 퇴폐적 문화는 현재 한국의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잠시 주춤해졌을 뿐이고 한국의 문화 수준이 향상된 까닭이 절대 아니다.

음주가무를 무척이나 즐겼던 한민족의 피에는 흥과 가무의 리듬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 애환의 타령이고 흥에 겨운 춤사위의 박동이기도 하다.

가사가 애절하고 곡조 또한 서글픈 국악에는 한민족의 한이 서려있기 때문에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한민족의 음악은 영혼의 소리였고 그러한 삶의 희로애락이 숨 쉬는 음악이 바로 민요이고 국악이다.

한국인을 풍류와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 하는 연유가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의 문화는 고귀한 것이지만 우리의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소수일 뿐 국악은 대중과 멀리 있다.


생동하는 봄을 노래하는 주옥같은 우리의 가곡으로 수놓은 '신춘가곡의 밤'을 젊은 세대는 알지 못한다.

떨어지는 낙엽의 낭만을 노래한 '가을맞이 가곡의 밤'도 기억하는 기성세대는 많지 않다.

오페라 공연이 언제였는지 장년층도 기억을 못 하고 젊은이들은 '마담 버터플라이'와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뭔지도 모른다.

거리마다 있었던 서점은 사라지고 사람들을 인터넷의 짧은 정보를 지식이라고 말한다.

진정 놀이가 예술로 진화된 격조 높은 우리의  문화는 대중에게 버려졌고 인터넷과 유튜브가 오늘날의 문화를 대변하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새로운 것이 부정적인 것은 절대 아니고 인터넷과 현대문명발전과 편익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음식의 맛에도 깊이가 있듯 우리의 문화도 깊이가 있어야 하며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개체로 모여 지구촌을 형성하듯 인간의 삶과 호흡하는 문화는 조화 속에 발전해야 하며 고유한 멋과 품격 있는 문화가 획일화의 물결에 수몰되는 현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다국적 기업의 감성 마케팅에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사라져서는 안 되며 방송이 주도하는 대중문화의 목적은 곧바로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고품격의 문화를 즐기며 사는 것이고 품격 높은 문화를 즐기는 안목은 지적 성숙이 함양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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